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어서와, 이별선물은 처음이지?

‘이별선물’에 대한 몇 가지 이야기

이별선물. ‘이별’과 ‘선물’이라니 안 어울려도 한참 안 어울리는 단어의 조합이다. 

하지만 부정감성의 ‘이별’과 긍정감성의 ‘선물’이 만나니 역설적으로 감정이 극대화 됐다.

무난했던 이별이 더 아련해지고 슬퍼지는 느낌이다.    

     

이별선물에 대한 몇가지 이야기


1. 이별기념일

오늘부터 우리 1일♡, 100일, 200일, 1주년, 2주년, 생일.. 참 많기도 많은 기념일이다.

우리는 기념일을 기억하며 마음을 전하는 일에 익숙하다. 그러다보니 기념일은 싸우는 날이 되기도 한다. 기념일을 잊어버렸다고? 기념일인데 아무것도 준비 안했다고? 어느 순간 기념일 그 자체보다, 기념일을 위한 기념 때문에 마음보다 선물이 중요해지기도 한다. 그래서일까. 언젠가부터 연인들은 이별도 기념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생겨난 것이 이별선물이다. 이별을 기념하기 위한 선물. 다른 기념일과 다른 점이 있다면 선물을 주는 날은 이별하는 날 뿐이라는 것 정도일까. 이별한 날을 기념하며 매년 선물을 보내는 이상한 사람은 없겠지. (없길바란다)    


2. 이별선물의 의미

이별선물은 도대체 무슨 의미인가. 이 신종 합성어 자체가 풍기는 분위기는 굉장히 묘하다. 뭔가 있어 보이기도 하고, 그게 뭔가 싶어서 호기심도 생기고, 그런 게 진짜 있긴 있는 건가 팩트가 궁금해진다. 그래서 가장 많이 쓰이는 의미의 ‘이별선물’을 정리해보았다.    


1) 이별하는 날 주고받는 것 

이별을 기념(?)하며 서로 못다 챙겨준 선물을 주거나 주고받는다. 상대방이 갖고 싶었던 것을 주지 못했던 미안함을 담아 주는 경우가 흔하다. 또는 상대방에게 필요할 것 같았던 선물을 주기도 한다. 지각을 밥 먹듯이 하는 X남친에게 “이젠 내가 널 못 깨워주니까” 라고 하며 알람시계를 주는 식이다. 새 신발 신고 도망간다는 속설 때문에 연인 간 선물 금지 품목인 ‘신발’을 사주는 경우도 종종 있다. 예쁜 신발은 좋은 곳으로 데려가 준다는 말과 함께.

물론 진정한 사랑을 떠나보내며 진심을 담아 선물을 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이별 #선물 #우리의마지막 같은 헤시태그와 함께 별스타에 올릴 사진을 위한 약간의 허세쇼라고 봐도 무방할까? 이별하느라 눈물콧물 줄줄 흘리면서 저런 걸 준비하는 강철 심장이 있다면 좀 무서울 것 같기도 하다.      


선물을 준비했어 신발 가게에 들러 

니가 원했던 구두 한켤렐 사고서 

생각했던 단어들을 편지 위에 적어 

이런 말 하게 될 줄 몰랐어 미안하단 말 이제는 안 할게

더는 널 아프게 하는 일도 이젠 없을 거야 

오늘이 지나고 나면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너 살아가면 돼

-나비, 션리의 이별선물 중    


2) 상대방이 원했던 나의 모습  

그 사람이 원했던 나의 모습이 있었다. 분명한건, 나의 모습은 그가 원하던 모습과는 거리가 멀었다. 프릴이 가득한 레이스 스커트에 시폰 블라우스가 어울리는 긴 생머리. 발이 편한 단화 대신 발이 아픈 높은 하이힐을 신은 모습 같은. 네가 그토록 원했던 그 모습, 마지막이니까 까짓 거 보여준다, 이런 느낌의 이별선물이다.

주로 상대방이 꿈꿔왔던 이상형의 외적인 모습을 마지막으로 보여준다. 예쁘고 멋진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는 마음인걸까? 그 사람이 원하는 모습으로 기억되고 싶다는 마음인걸까. 이별의 마지막의 마지막 순간까지도 나의 진짜 모습이 아닌 네가 원하는 모습으로 기억되고자 했던 연애의 모습은 어땠을지... 상상하기가 무섭다.     


아침 일찍 일어나 얼마나 바빴는지

예쁘게 화장을 다 하고 머리도 만졌어

괜찮니 나 오늘 어때 어색하지만 봐 줄만 하니

늘 청바지 편하게만 입던 난데 옷장 속을 온 종일 뒤졌어

우리 이별 하는 날 보여주고 싶었어 두 번 다시 못 볼 테니까

하얀 원피스 구둘 신은 네가 바래왔던 그 모습 이게 마지막 선물

-먼데이키즈의 이별선물 중       


3) 네가 줬던 모든 것  

이 경우가 제일 가슴 아픈 선물인 경우다. 내 생일에 선물해준 가방, 함께 입었던 커플 티, 1주년에 맞춘 커플링, 갖고 싶다고 했던 말을 기억해뒀다 사주던 지갑, 그리고 내가 써준 편지며 엽서.. 그 모든 것을 챙겨 나와 이별선물이라며 내미는 경우. 이것들을 볼 때마다 네 생각이 나서 힘 들까봐 가져나왔으니 알아서 처리해 달라는 말. 주인 잃은 물건들은 결국 쓰레기통으로 가게 되고, 갈 곳 잃은 마음조차 쓰레기통에 버려야 하나 혼란스러워지는 이별선물을 가장한 유치하고 잔인한 일이다.    


4) 어른스러움 1cm  

인간은 원래 합리화 하는 동물이다. 게다가 꽃 중의 꽃은 ‘합리花’라고 했던가. “아프고 난 뒤에 성숙해진다.”며 “나 널 만나고 어른이 된 것 같다.”며 이별이 가져다준 선물도 있다고 스스로를 위로한다. 이 경우가 가장 그럴듯한 이별선물 이랄까. 사랑, 그리고 사람. 그 인연의 소중함에 대해 조금은 알게 된다는 것도 이별이 준 선물이다.      


이별이 내게 가르쳐준 건..

그대가 가장 소중한 선물이었던걸...

이제야 후회..하죠...

-V.O.S 이별이 내게 준 선물 중    


3. 이별선물, 나에게 하자

헤어지는 마당에 선물을 왜 하고 있는 걸까. 아무리 좋게 포장을 해도 본질은 이별인 것을. 이별 후 선물을 하고 싶다면 자기 자신에게 하자. 열심히 사랑한 나, 선물받자! 그동안 정말 고생했다. 넌 이 선물을 받을 자격이 충분해. 넌 소중하니까. 넌 사랑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으니까. 맛있는 것도 먹으러 가고, 가지고 싶었던 것도 사고, 예쁜 옷도 사서 입는다. 만약 그 반대의 경우엔, 이렇게 생각해보면 어떨까. 내 감정에 100% 솔직하지 못했던 연애는 아픈 선물을 남긴다. 선물이라고 받고 싶고 좋은 선물만 받는 건 아니니까. 자유라는 포장지를 뜯어보면, 상자 안에 들어있는 건 미련과 후회라는 감정의 찌꺼기들이다.     

작가의 이전글 썸을 제대로 즐기는 세 가지 방법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