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STR Feb 13. 2024

출산하는 날 일기

100일쯤 지나 올리는 그날 기록

9:31

병원에 도착해서 코로나 검사를 같이 하고 B는 소변 검사를 했다. 여러 설명을 듣고 동의하고 주애는 먼저 분만실에 혼자 들어갔다. 11시 수술인데 무척이나 오래 떨어져 있네.. 대기실에 혼자 남았다. 옆에 남편들이 같이 대기 중인데, “아기 잘 나왔어요 수술 잘 끝났어요” 이야기에 벌떡 일어나는 남편 모습이 남일 같지 않다. 겁 많은 우리 B. 지금 혼자 들어가서 얼마나 무서울까. 그래도 씩씩하게 잘 해낼 거야. 어제 우리 엄마아빠, 오늘 아침 일찍 오신 장모님 아버님 기도해 주시고 그래서 힘을 얻었다. 기도해야지. B와 또담이 지켜주세요


9:38

아침에 B와 나오면서 같이 한 대화를 써본다.

“아침에 나오니까 이렇게 학생들도 보네”

“그러게. 출근하는 사람도 많네”

”아침이어서 그런가. 뭔가 긴장되는 공기가 있다 “

”수능날 아침 냄새랑 비슷한 거 같아“

“맞네. 비슷해”


9:39

옆에 있던 남편이 병실에 들어갔다. 장모님으로 추정되는 사람과 통화하면서 “의사 선생님이 잘 끝났다고 나오면서 이야기 줬는데 아기는 바로 못 봤어요. 그러게요. 바로 볼 줄 알았는데. 아기 보게 되면 사진 찍어서 보내드릴게요. 생각보다 오래 걸렸어요. 무슨 일 있는 줄 알고. 네네. 다행이에요.”

대기실에는 나만 남았다. 심장이 두근댄다.


10:46

B가 이제 들어갔다. 머리에 수술실 쓰는 망 같은 거 쓰고 수액 한 팔에 끼운 채 들어가는데 뒷모습 보는데 가슴이 아렸다. 무사히.. 무사히…


10:47

그전에는 정신이 없었는지 가방을 화장실에 두고 와서 허둥지둥했다. 다행히 찾았다.


10:48

대기실에 있다가 분만실에 누워있는 B를 보러 갔다. 수술 끝나고서야 보는 줄 알았는데 다행이었다. 짐을 한쪽에 놓고 커튼이 쳐있는 자리로 갔다. 또담이 박동수 체크하는 기계를 붙여놓고 있었고, 압박스타킹 입혀달라고 하셔서 땀 흘리면서 발에 신겼다. B도 손에 땀이 흥건했다. 많이 긴장하고 있었는데 그래도 대견하게 이겨내고 있었다. 둘이 더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데 간호사 분이 제대혈 이야기를 정말 오래 하셨다. 순간 설득 당할 뻔했는데 안 한다고 하니 쿨하게 가셨다. 이후에 초음파 검사 마지막으로 한다고 엘베 타고 진료동으로 가서 의사 선생님을 만났다. 수술 부작용 등을 이야기하시는데, 순간 너무 무서웠지만 지켜주시리라 믿었다. 다시 분만실 올라와서 조금 있다가 “00님 이제 들어가실게요”라고 간호사가 들어오며 말했다. 침대 주변에 우리 짐들을 주섬주섬 챙겼다. B 가는 길에 손을 잡았다. 손에 땀이 흥건했다. 얼마나 무서울까. 지켜주세요. B는 웃으면서 들어갔다. 가슴이 울렁거리면서 눈물이 나오려고 했는데 나도 같이 웃으며 참았다.


11:4

지금쯤 수술을 시작했을까? 마취 방법은 두가지가 있었는데 하반신 마취를 선택했었다. 수면도 같이 해서 처치하는 것도 모르게 했으면 했는데 다행히도 수면 방법도 있어서 수면+하반신 마취(척추)로 갔다. 지금쯤 자고 있을까? 아까 “자고 일어나면 끝날 거야”라고 했는데. B가 잘 견뎌주길. 아직 심장이 두근댄다. 쿵쾅쿵쾅. 가끔 들리는 아기 울음소리가 또담이일까 하면서 계속 보게 된다. 문이 열리면 계속 바라보게 된다.


11:26

초조하다. 거의 30분이 다 됐다. 아기 울음소리가 계속 들리는데 또담이가 아닐까? B는 지금 후처치 중일까? 쿵쾅댄다. 1시간 소요라고 했으니 사실 시간은 더 남긴 했다. 얼른 마치고 B 얼굴을 보고 싶다. 잘했다고 어루만져주고 싶다.


11:38

아빠도 초조한 지 전화가 왔다. 아직이라고 이야기했고, 이야기해 주겠다고 했다. 장모님도 같은 마음이신 듯하다. 심장이 터질 거 같아서 가슴이 쪼일 지경이다. 일어섰다 앉았다를 반복하고 있다. + 그러더니 엄마도 문자가 왔다. 다들 각자의 자리에서 기다리는 중..


11:44

벌써 45분이나 지났다. 진짜 힘든 수술이구나.. 한 시간을 꽉 채우려나보다. 애기 소리가 들리는데 또담이일까?


11:57

또담이 태어났다. 3.5킬로. 23년 10월 23일 11시 10분. B와 또담 모두 무사하고 수술도 잘 끝났다고 한다. 의사 선생님에게 90도 감사 인사를 드리고, 장모님 엄마 아빠 순으로 연락을 드렸다. 감사 감사 감사.


그날 기록한 일기는 여기까지다. 이후에 B를 보러 갔고 수술실 옆 회복실에서 쉬고 있는 B를 만났다. 두꺼운 이불을 덮고 나를 보자마다 B는 “너무 무서웠어”라며 울었다. 입을 달달 떨며 이불을 움켜쥔다. 나는 그런 B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고생 많았어 고생 많았어“를 말할 뿐. 우리의 재회가 얼마 지나지 않아 간호사 분이 또담이를 데리고 왔다. 또담이를 보자마자 나는 “작다…” 첫마디였고 표현 못할 기분에 휩싸였다. B에게 살포시 안겼고 B는 울면서 “엄마야, 또담아”라고 말을 건넸다. 우리와 또담이의 첫 만남. 아주 작고 작은 생명. 사람의 뱃속에서 열 달 동안이나 얼굴도 모르고 그 심장소리만 듣다가 드디어 만나게 된 생명. 가족 두 명이 세 명이 된 순간.

매거진의 이전글 아내가 입원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