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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현석 Feb 23. 2017

낙연(落戀)

로맨스_Romance


낙연(落戀)


매달렸다.

떨어지기 싫어서 
온몸으로 매달렸다.


세월은 흐르고 바람은 불어
당연한 중력의 법칙처럼 툭 떨어졌다.

 

겉으로는 젖어오고
안으로는 말라가는 그 기분.


비 맞은 낙엽처럼
바스락거리는 소리조차 내지 못했다.


그냥 발에 치이는 귀찮은 존재.

그게 첫사랑에 실패한 나였다.





'첫사랑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첫사랑에 실패한 누군가가 스스로를 위로하듯,  어쩌면 모두를 저주하듯 만들어 낸 말일 거라고 생각했다.

우리 부모님은 서로가 첫사랑이셨고,  결혼까지 골인하셨으니, 대를 이어 나도 그럴 거라고.

내게는 첫사랑 성공의 유전자가 있을 거라고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했다.

그만큼 실패하고 싶지 않았던 첫사랑이 있었다.


지금은 첫사랑의 이름도 얼굴도 가물가물하지만 실패를 직감했을 때의 그 기분만은 아직도 기억이 난다.


이별을 거부할 권리도 막아 낼 방법도 없는 듯한 무력감.

누명을 쓰고 사형선고를 받은 듯한 억울함.

동의로 시작했으나 통보로 끝나는 비참함 등등.

세상 모든 우울하고 비관적인 감정의 덩어리에 사로잡혔다.


그땐 그런 줄 알았다. 그게 맞는 줄 알았고 그게 전부인 줄 알았다.

연애를, 여자를 몰라도 너무 몰랐던 시절. 혼자서 진지하게 오바를 떨던 시절, 그 애가 물었다.


"오빠, 순수와 순진의 차이가 뭔 줄 알아?"

- 음... 순수는 원래 깨끗해야 할 게 깨끗한 거고

순진은 굳이 깨끗하지 않아도 될 게 깨끗한 거?

좀 바보 같은 거지.

"오빠는 순진한 거 같애"


창피했다. 하지만 당당했다.

좋아했다. 하지만 불안했다.

천국이었다. 하지만 지옥이었다.


내게 첫 이별은 온탕, 냉탕을 뛰어다니다 자빠져서 일어난 사고 같은 느낌이었다. 나는 처음이라 긴장되고 불안한 연애를 했고 그녀는 그게 질렸을 것이다. 그래도 심각하게 생각하지는 않았다.

어떤 사람은 지방 없는 뻑뻑살을 좋아하고 어떤 사람은 마블링이 적당한 부드러운 살을 좋아하는 것처럼 그냥 개인 취향의 차이라고 맘 편히 생각했다.


이런 자기 위안, 정신승리로 나는 이별의 충격과 슬픔에서 금세 벗어났고, 심해에 빠진 자존감을 어렵지 않게 건져 올렸다.


연애에도 복기가 중요하다. 이별 후의 자신의 감정과 자존감 수습을 위해서도 그렇고, 새로운 사랑을 위해서도 그렇다. 그러나 그 복기는 주관적이면 좋겠다. 꿈보다 해몽이면 더 좋겠다. 이별은 쌍방과실이니까 내게 유리한 %는 자신이 정하면 그만이다. 과실에 대한 %가 낮을수록 쉽게 사고 후유증에서 벗어날 것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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