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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뮤즈 Jan 12. 2019

첫 연애는 안개꽃이야

[꽃말: 당신이 더 아름다워요]

한 철 머무는 마음에게 서로의 전부를 쥐어주던 때가 우리에게도 있었다. 
박준, 마음 한 철



내가 정말 존경하고 사랑하는, 고교 시절의 국어 선생님께서는 우리에게 대학에 가서도 공부만 하지 말고 20살, 21살, 혹은 22살까지. 나이가 많이 차기 전에 연애를 꼭 하라고 당부하셨다. 그 당시 고개를 갸우뚱했던 나는, 이제는 그 말씀의 이유를 알 것만 같다. 


"혹시 MUSIC120 수업 듣지 않으세요?"

개강 첫째 주에 도서관 옆 작은 북스토어에서 마주친 그 친구의 첫마디였다.

"아, 네 맞아요!"

"맞으시구나. 혹시 저희 다음 수업자료 때 필요한 책 찾으러 오신 건가요? 여기 책이 워낙 많아서 찾는데 한참 걸리네요. 같이 찾아보실래요?" 


그게 우리의 첫인사였다. 보물 찾기와도 같았던 책 찾기를 끝낸 후 정식으로 이름과 나이에 대해 서로 물었고 우리는 수업을 같이 듣는 동갑내기 친구가 되었다. 수업을 들으며 모르는 부분이 있으면 서로 알려주고 시험에 필요한 에세이북을 놓고 오기라도 하면 약속한 듯이 자신의 가방 속에 있던 여분의 것을 빌려주곤 했다. 그렇게 동고동락하면서 수업이 끝나면 점심시간에 맞춰 학교 카페테리아로 가서 함께 점심을 먹었다.


"나는 여동생이랑 엄청나게 친한 사이는 아닌데, 너는 한국에 있는 친오빠랑 통화도 되게 자주 하고 그러더라."

"아, 응응. 사실 나도 내가 많이 노력해. 오빠도 애교가 많고 표현을 쉽게 하는 스타일은 아니라서 내가 2배로 더 한다고 보면 돼. 근데 그만큼 우리 오빤 츤데레처럼 많이 챙겨줘, 생각도 많이 해주고. 너도 한번 여동생에게 그렇게 해봐!"


원래 따뜻하고 맛있는 음식 앞에서는 시시콜콜한 이야기들도 아주 재밌게 오고 가는 법이다. 우리는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두 달의 시간 동안에 서로의 장점을 분명하게 알아차릴 정도로 친해졌다. 나는 그 친구가 참 좋은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고 그러므로 오랫동안 아는 사람으로서, 친구로서 잘 지내면 좋겠다는 생각을 어렴풋했다. 이건 분명 맛있는 점심식사를 함께, 자주 먹었던 영향도 있다. 


그렇게 서로 가까운 친구로 지내던 어느 날, 우리를 보는 사람들에게는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을지는 모르겠으나, 네가 내게 고백을 했다. 정말 착하고 매력적이라는 사람이라는 말과 함께. 반전의 사실은, 나는 그 친구를 참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고백에 대답하지 못했다. 


무섭고 두려웠다. 나만 알고 나만 있던, 그리고 나의 가족만 있던 나의 일상에 다른 누군가가 들어온다는 게, 그리고 그 사람의 자리가 생겨야만 한다는 것이 낯설었고 그렇기에 두려움이 앞섰다. 그렇게 며칠을 고민하는 사이 - 그 친구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그렇게까지 복잡하게 생각할 거리를 네게 줘서 미안해. 그렇지만 그렇게 마음 쓰지 않아도 돼. 왜냐면 내가 되게 잘할 거거든. 

그러고선 싱긋 웃었다. 


그 수화기 너머로 따스한 마음이 너무나도 잘 느껴져서, 알겠다고 대답했다. 


그렇게 

부모님을 생각하는 모습이 예쁘면서 여동생도 참 잘 챙길 줄 알고, 예의가 바르며, 모든 사람을 차별 없이 존중할 줄 알고, 또 바른생활습관을 가진 그 친구와 연애라는 걸 시작했다. 


어떤 계산도 없이, 그냥 그 사람이라는, 그 자체의 이유만으로 나도 믿고 마음을 열었다. 


그렇게 우리는 아무 조건 없이 서로를 이해하고, 좋아하고, 안아주는 진짜 연애를 했다. 

그리고 이 경험은 내게 참 많은 교훈과 사랑을 가르쳐주었다, 나의 다이어리 2권을 꽉 채울 만큼의. 




* 안개꽃: 맑은 마음과 사랑의 성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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