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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이 Mar 25. 2024

23살, 빚쟁이에게 쫓기다 N잡러가 되었다.

내 인생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지난 30년간 나름 열심히 살았다고 자부한다. 살면서 일을 쉬었던 적이 거의 없었다.


넉넉하지 못한 형편에도 미대를 꼭 가야겠다는 나를 뒷바라지해 주신 부모님이 있기에 대학생활도 열심히 했다. 학비를 줄이려고 장학금을 받기 위해 밤잠을 줄이며 과제하고, 주말과 방학에는 아르바이트하며 용돈을 해결했다. 그렇게 애써 높은 학점으로 졸업했지만 졸업 PT에서 나를 찾아주는 회사는 없었다.


감사하게도 교수님 추천으로 들어간 에이전시에서 내 커리어를 시작할 수 있었다. 인턴으로 일하는 동안 월급도, 퇴근도 없었다. 단 몇 개월이 지옥 같았다. 이제 막 시작한 사회생활에게 지는 기분이었지만 결국 정규직 제안을 거절했다.


이후 들어간 중소기업에서 디자이너는 야근이 훈장이고 박봉이 당연했다. 앞서가는 선배들 따라 그 말이 맞겠거니 한해를 버티고 탈모가 생겼다. 어렸을 때부터 머리숱이 너무 많아 숱을 안치면 머리카락이 무거울 정도였는데 가만히 있어도 머리가 우수수 떨어졌다. 더 있다간 크게 아플 수도 있겠다 싶어 새로운 직장을 찾아보기로 했다. 조금이라도 더 좋은 회사가 있지 않을까 싶었다.


이직을 위한 포트폴리오 작업 중, 꽤 큰 기업에서 일하던 친구에게 연락이 왔다. 디자인 알바를 구한다며 이력서와 민증사진을 요청했다. 취직경험이 적어 모르는 게 많았던 나는 의심 없이 개인정보를 전달했고 그때부터 내 인생은 크게 꼬이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내 이름으로 사채 1,800만 원이 생겼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듣지도 보지도 못한 6개의 대부업체. 대출이자는 35%. 23살의 나이에 당시 연봉 정도의 사채빚이 생겼다.


“돈 빌린 거 안 갚습니까?”


“저는 그런 대출받은 적이 없는데요. 지금 제 정보 도용한 친구 형사소송 진행 중이에요.”


“그거는 그쪽 사정이고, 본인이 직접 대출한 게 아니라도 개인정보를 전달해서 우리도 피해를 입은 거 아닙니까? 일단 쌓인 이자부터 내시죠. 책임을 지셔야지.”


눈앞이 캄캄했다. 하루아침에 죄지은 사람이 된 것 같았다. 드라마에서나 보던 빚쟁이에게 쫓기는 삶이 시작됐다. 부모님께는 말도 못하고 혼자 해결하려 갖은 애를 썼다. 걱정시키기도, 실망시키기도, 내 잘못으로 인한 짐을 지어드리는 것도 싫었다. 나는 아직 사회에 나온지 얼마 안된 어린애였지만 부모님에게 기대거나 의지하지 못하는 어른 아이였던 것 같다.

아침, 저녁 할 것 없이 사채업자들은 돈을 갚으라고 독촉전화를 하고 심지어는 집까지 찾아오곤 했다. 매일 사채업자들과 말다툼을 하고, 주기적으로 법원을 들락거려야 했다. 2년간 두려움은 익숙함으로 바뀌었다.



형사재판, 민사재판을 진행하는 동안 정상적으로 회사를 다닐 수 없었다. 그때부터 N잡이 시작됐다. 먹고살기 위해 필요한 생활비와 사채빚을 갚기 위한 돈을 벌어야 했다. 주어지는 일은 뭐라도 했다. 웹디자인, UI디자인, 패키지디자인, 편집디자인, 호프집알바, 카페알바 등. 바쁜 꿀벌은 슬퍼할 시간도 없기에 상처 입고 지친 마음을 보듬어줄 시간이 없었다. 아직 힘을 내야 했고 애를 써야 했다.


2년간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재판은 승소하지 못했고, 새로 구한 직장을 다니며 돈을 모아 사채빚을 변제했다. 속이 쓰리지만 이제 나를 끊임없이 괴롭히던 문제가 끝났으니 다행이었다. 가진 모든 걸 잃었데도 아직 어린 25살은 뭐든지 시작할 수 있는 나이였다. 이제 행복한 일만 있겠지 싶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퇴근길 집에 가는 버스에서 영문모를 눈물을 흘렸고, 주말에는 아무도 없는 밤거리를 울며 목적지 없이 계속 걸었다. 걷다 보면 언젠가 이 기나긴 터널이 끝나지 않을까 기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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