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고장 났는지 나도 몰랐다. 그리고 아무도 몰랐다.
최근 강박불안, 번아웃으로 인해 심리치료를 받으면서도 긴가 민가 했는데, 오늘은 내가 어딘가 잘못된 게 맞다는 확신이 들었다.
약 8년 전부터 우울증세가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은 했다. 병원에서 환자라고 진단받는 것이 무서워서 가지 않았고, 그래서 우울증이라는 병명을 전문가로부터 들은 적은 없지만 내내 우울한 기분이었다.
밥을 먹고, 일을 하고, 친구를 만나고. 별일 없는 일상을 보내다가도 갑자기 터져 나오는 눈물을 참지 못했고 가끔 살고 싶지 않았다.
자고 일어나면 다시 아침이 오는 것이 무서웠고 나쁜 생각을 하는 내가 무서워서 또 울었다.
‘왜 이렇게까지 사는 게 두려울까?’
‘남들도 똑같은데 다 이겨내며 살아가고 있는 걸까?’
침대에 누울 때면 생각하곤 했다.
‘이대로 눈을 감고 내일이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하지만 어김없이 눈을 감았다 뜨면 내일은 오늘로 다가왔다.
그래도 오랜 기간 동안 내가 우울에 잠식되지 않도록 도와준 것이 있었다.
“바쁜 꿀벌은 슬퍼할 겨를이 없다.”
영국의 시인이자 화가인 윌리엄 블레이크의 말처럼 슬퍼할 겨를이 없도록 바쁜 꿀벌로 살았다.
호기심이 많고 새로운 것을 시작하기 좋아하는 성격 덕분에 나름 우울을 극복해온 것 같다. 나에게 새로운 걸 시작하는 힘은 언제나 자부심이었고 회복탄력성이 돼주었다.
하지만 우울이란 완치가 없다.
바쁜 꿀벌처럼 쉴 새 없이 열심히 살면서도 지난 8년간 극복과 우울이 반복됐다.
이따금씩 우울이 덮쳐오는 날마다 나는 내 감정을 무시했다. 무엇이든 견디고 이겨낼 수 있다고 이 순간의 감정은 별 것 아니라고. 어딘가로부터 상처받은 나 자신을 돌봐주지 못했고 이겨내라고 채찍질만 할 줄만 알았다.
부모님과 함께 살 때는 집 밖에서 울고 들어왔고, 혼자 살 때는 집 안에서 언제든 울었다. 고양이와 애인과 함께 살게 되고 나서는 집에 사람이 없을 때 가끔 울었다. 그럴 때마다 고양이는 멀뚱멀뚱 나를 쳐다볼 뿐이었다.
오늘은 주말이라 늦은 아침까지 잠을 자고 점심에는 오랜만에 가족과 즐겁게 외식을 하고 영화를 보고 집에 들어왔다. 집에 와서 해야 하는 일들이 많았지만 아무것도 하고 싶지가 않아 집에 오자마자 거실소파에 누워 SNS만 3시간을 했다. 저녁도 먹지 않았다.
창밖이 깜깜해졌을 때 마침 핸드폰 배터리도 바닥이 났다. 곧 잘 시간이니 씻기라도 하자는 생각으로 안방에서 옷을 갈아입다가 문득 두려웠다.
‘이대로 누구도 만나고 싶지 않고,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하루하루가 계속되면 어떡하지?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 내 자신이 실망스럽고, 게으름과 우울을 극복하지 못하는 내가 싫었다. 결국 나에게 실망한 모두가 떠나갈 것 같아 무서워서 눈물이 나오기 시작했다. 두려움을 참을 수 없어서 엉엉 소리 내어 울었다.
그런데 가끔 내가 울 때 멀뚱히 쳐다보기만 하던 고양이가 오늘은 내 얼굴을 보고 같이 울기 시작했다. 너도 이 우울이 반복되는 것을 느낀 걸까? 나와 눈을 맞추며 불안해하고 두려워한다. 이 작은 동물도 옆에 있는 사람이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느낀다. 그래, 나는 뭔가 잘못되고 있는 것 같다.
지금까지 나는 그냥 잠깐 힘들어서 그래, 별거 아니야 지나갈 거야 하며 내 감정을 무시했는데 이제는 나에게 문제가 있음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리고 이 문제를 확실히 해결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사랑하는 이들에게서 버림받고 싶지 않다.
이 외로움과 두려움을 더 이상 느끼고 싶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