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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영씨 Apr 05. 2017

바다 위 떠다니는 대단지 아파트 그리고 입주민 이야기

크루즈 승무원에게 집이란?


승객의 눈으로 바라본 크루즈는 바다 위의 호텔이자, 여행지이다.

크루즈 부두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눈으로 바라본 크루즈는 일감을 주는 고객일 것이다.




그렇다면 승무원의 눈으로 바라본 크루즈는 무엇일까?



그들에게 있어서 크루즈는 바로 '일터'이자 동시에 '집'이다.




크루즈 승무원은 1년 중 4분의 3에 해당되는 시간을 크루즈라는 집에서 보내는데, 6개월이란 시간을 크루즈에서 생활하면서 가족이 보고 싶고, 친구를 만나 밤새 수다도 떨고 싶고, 고국에 있는 나의 방에서 편하게 쉬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가도, 막상 2개월의 휴가 후, 부두에서 다시 마주한 크루즈를 보면 마치 에 온 것처럼 편안해지고,  만약 새로운 크루즈 선박으로 배정받는 날이면 마치 새집으로 이사한 것 마냥 설렌다.


(태국 푸껫에서는 크루즈가 부두에 정박을 하지 않고 바다 한가운데 떠있다. 작은 보트를 타고  승, 하선을 하는데, 보트를 타고 나가 관광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저 멀리 크루즈가 보이면, 먼 여정 후 집에 돌아가는 것처럼 마음이 편안해진다. )


길이 362미터 넓이 66미터나 되는 자이언트 사이즈의 크루즈 안에서 1-2평 밖에 안 되는 두옥(斗屋)에, 어느 것 하나 본인의 취향에 맞게 꾸며진 것이 없지만, 이 곳은 어린 시절의 추억을 품은 오래된 내 방처럼 편안하다.  


크루즈 안 승무원들의 공간에는 카페테리아, 세탁실, 인터넷 카페, 보드게임룸, 바, 피트니스센터, 편의점, 미용실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이 다 갖추어져 있는데 마치 아파트 안 커뮤니티 센터 같고, 그곳에 마주치는 동료들은 마치 이웃 주민이나 다름없다. 적게는 600명, 많게는 2100명이 함께 생활하는 이 곳은 마치 바다 위 떠다니는 대단지 아파트와 같다.


바다 위의 떠다니는 아파트이다 보니, 값도 비싸고, 쉽게 입주할 수 없다는 단점이 있지만, 프리미엄은 없는 진정성 있는 아파트이긴 하다. 그러나 동호수 지정에 있어서는 이곳 역시 육지의 아파트 못지않은 경쟁이 존재한다.


가장 인기가 많은 곳은 아무래도 조망권이 있는 방인데, 크루즈 선박의 크기에 따라 방의 위치가 다르지만, 주로 Deck 1,2 바깥 라인을 에워싸고 있고 몇 개의 방들은 Deck 8,9 라인 끝에 위치해 있다.  (참고로 크루즈에선 층을 덱, Deck이라고 한다)  그러나 조망권이 있는 방은 승무원 중에서도 높은 직위에 있거나, 중요한 인사들에게 우선권이 주어지므로, 그들보다 낮은 직급에 있는 승무원들은 남아있는 방 중에서 조망권이 있는 방이거나, 조망권이 없더라도 타입이 좋은 방을 선택하고 싶어 한다. 같은 평수라도 타입에 따라 훨씬 넓게 쓸 수도 있고, 공간 활용도가 높기 때문이다.


물론 이 모든 것이 인사과의 결정이라 승무원들에게 주어진 선택권은 없다. 그러나 승무원들 사이엔 좋은 방에 묵기 위한 은밀한 대화와 거래가 이루어진다.

좋은 방에 묵는 승무원 중 근무기간이 만료되어 하선을 앞둔 승무원이 있다면 서로 상의 후 인사과에 방 교체 신청을 하는데, 인사과는 룸메이트와 문제가 없고, 서로 합의한 경우, 매니저의 판단하에 허락을 해준다. 이렇게 좋은 방은 빠른 정보력과 남다른 친화력을 가진 누군가에 의해 선점된다.


세계 어디에서도 통하는 정보력과 꽌시가 크루즈에서도 예외는 아닌가 보다 하고 생각할 수 있는 부분이다.


바다위 떠다니는 대단지 크루즈 안에 살고 있는 입주민인 승무원들은 다양한 국가에서 왔으며, 각자의 언어가 있지만 이 곳에서는 '영어'라는 공통언어를 사용해야 한다는 입주자 규정이 있다.


승무원들은 비록 피부색도, 생활방식도, 문화, 모국어도 다르지만 그들에게는 한가지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바로 아무리 대단지 아파트 크루즈가 최첨단시설을 자랑한다고 한들 승무원들은 지극히 아날로그적 삶을 살고 있다는 점이다.


크루즈 안에 승무원을 위한 인터넷 카페가 있고, 와이파이도 있으나 높은 사용요금 때문에 쉽게 이용하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한 달에 몇십 달러씩 충전해 놓고는 아껴 아껴 쓰는 편인데, 하물며 나는 캐빈에서 친구들에게 이메일 내용을 워드에 미리 작성하고, 저장해 놓은 다음 와이파이를 연결해서, 2분 안에 다 전송하기도 했다.  그래서 승무원들에게 SNS란 "시간낭비 서비스"가 아닌 "세상에서 나만 이용 못하는 서비스"이다. 이처럼 인터넷이 빵빵 터지고, 쉽게 인스타, 페북, 카스에 나의 근황을 올릴 수 있고, 친구, 가족들의 근황을 확인할 수 없기 때문에, 늘 바깥 소식에, 가족과 친구들의 근황에 목마르다.


목마른 승무원들이 찾는 건 나만의 오아시스. 그 오아시스가 바로 '사진'이다.


승무원들은 늘 사진을 지니고 다닌다. 휴대폰 속의 사진이 아닌, 인화된 사진말이다.

예전에는 지갑 속에 사진한 장 찍은 다 넣어두고 다녔었는데, 언젠가부터 지갑도 카드 지갑, 현금 클립처럼 점점 기능화가 되어 가고, 사진을 잘 넣어 두고 다니진 않는 듯하다. 사진은 전부 휴대폰 속의 앨범 속에서 찾으며, 아이클라우드가 나의 추억을 대신 기억해주는 기능을 하고 있다.


그러나 승무원들은 신기하게도 인화된 사진을 늘 지니고 다니는데, 2개월의 휴가를 마치고 크루즈란 또 다른 '집'으로 돌아온 첫날, 일종의 의식을 치르듯이 집에서 가지고 온 사진을 벽에 하나하나 붙인다. 사진들을 붙임으로써 드디어 "나의 방"으로 완성되는 것이다.


(승무원 방에 붙여있는 사진들. 이 사진들이 있는 공간이 바로 집이다.)


주로 가족, 연인, 친구, 가장 보고 싶은 사람들의 사진인데, 이 사진 속 사람들은 앞으로 6개월간의 근무 기간 동안 승무원 옆에서 그들과 함께 웃고, 그들을 위로해주고, 그들에게 힘이 되어주는 존재가 된다. 이 사진들만 있으면 2평짜리의 두옥(斗屋)은 20평이 부럽지 않은 공간이 되며, 무엇을 하든지 늘 함께 하고 있는 느낌을 준다.  


그래서 크루즈 승무원에게 있어 집이란?


비록 화려하지 않고, 작은 공간이지만 그곳에 추억이 깃들어 있고, 그곳에서 기억을 찾아낼 수 있고, 행복함을 느낄 수 있으며, 위로를 받을 수 있는 그 공간이 바로 집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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