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계기업에도 갑을관계가 있을까?
최근 모 항공사의 간부 갑질 논란으로 포털사이트마다 논란이 끊이질 않는다. 그러나 한국사회에서 심심치 않게 떠오르는 사건들이라 이번 갑질 논란도 크게 놀랍지는 않다.
갑을관계. 상하관계.
사실 전 세계 어느 회사에나 존재하는 구조다.
누가 콕 집어 ‘난 네 위고, 넌 아래야’라고 말하지 않아도 눈치껏 서열이 정해지는 세상.
각자 사는 환경이 다르고, 처한 상황이 다르다.
우린 모두가 누군가의 갑이고, 누군가의 을이 될 수밖에 없다.
동시에 영원한 갑도, 영원한 을도 없다.
그러나 다른 사회와 비교했을 때 한국사회는 유독 갑을, 상하관계의 갭이 눈에 띈다. 연봉의 격차, 대우, 조건, 삶의 질 등 그 차이가 유독 눈에 띄는 건 왜일까.
나도 하루에 수십 통의 전화, 메일을 받는다. 광고 수주 요청, 스폰서 요청, 파트너십 요청 등등.
하루에도 몇 번이고 에이전트가 방문을 하고, 회의를 연다. 우리 회사 역시 지난주 금요일 광고 에이전트와 미팅을 열었다. 올해 하반기 온에어를 목표로 광고를 논의했다.
어제 모 항공사 간부의 녹음파일을 들어보았다. 미팅 중 어떤 일이 간부의 심기를 건드렸는지, 어떤 부분이 간부가 원하는 사업의 방향과 맞지 않는지는 모르겠지만, 지난주 우리 회사에서 열렸던 광고 에이전트와의 미팅을 떠올려보면 분명 그 간부의 리액션은 뭔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되었다는 정도는 분명히 판단할 수 있었다.
“저는 이 화면에서 좀 더 가족적인 휴가를 표현하는 색채가 강한 게 있었음 해요.”
“최근 가봤던 휴양지 중에 가장 좋았던 곳 있어요? 그곳에서의 느낌이 어땠어요? “
“우리 회사 크루즈 타보셨죠? 거기서 느껴지는 에너지는 어땠어요?”
“시간이 얼마 없다는 거 알아요, 근데 우리도 완성도가 높은 광고를 내보내고 싶은 거 누구보다 잘 알잖아요. 괜찮다면 한번 더 내부 상의해보고, 필요하다면 크루즈에 한 번 더 올라타는 것도 허락할게요.”
지난주 우리의 미팅 모습이다. 우리의 미팅이 모든 회의의 스탠더드이며, 본보기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미팅 중에 고성이나, 욕설, 모욕, 격한 감정 표출은 성숙한 사회인이라면 어느 정도는 억제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게 우리 모두 다 알고 있는 기본 상식이자 매너임을 알고 있다.
난 회사에서 의전담당을 해오면서 글로벌 기업의 총수들을 만날 기회가 많았다.
코카콜라, 맥도널드, 하얏트, 윌헴슨, 타임지, 보그 등
상하관계를 따지자면 갑을도 아닌, 갑을병정무기경신임계 중 ‘계’ 위치에 있는 나도 그들 어느 누구로부터 무시당하거나 그들의 감정 받이가 된 적이 없었다.
그렇다면 한국사회는 무엇이 문제인 걸까?
비단 한국사회만 이런 문제점이 있는 걸까?
졸업 후 외국계 회사에서만 있었던 경력으로 정확히 한국 회사의 문제점을 신랄하게 지적하진 못하겠다. 그러나 외국계 회사 경험을 바탕으로 본다면 회사 구성원 각자가 주체적이고, 주제적인 활동을 할 수 있게끔 회사가 개방적이라는 점이다. 이 점이 바로 자유로운 근무환경과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준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내가 '갑'이든, '을' 이든 크게 중요치 않아지는 것 같다.
왜냐면 여기선 난 할 말 다 하는 '을' 이니깐!
물도 평지에 있음 고이고. 물도 고이면 썩는다.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흘러야 썩지 않고, 계속 깨끗한 물이 흐를 수 있듯이 사회생활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상하관계는 물을 흐르게 하기 위해 유지되어야 할 구조이지만, 자유롭게 물이 흐를 수 있는 구조가 되어야 할 것이다. 게다가 아무리 얇은 물줄기도 높은 곳에서 떨어지면 수압이 세지듯이, 물이 흐르는 높이도 중요하다.
과연 내가 지금 속한 이 환경이 자유롭게 주체적인 활동을 할 수 있는 환경인지, 받은 물을 고이 흘려보낼 수 있는 물인지, 난 이곳에서 할 말 다 하는 '을' 인지.
오늘은 지금 속한 사회와, 환경이 과연 나를 어떤 사람으로 만들어 주는 곳인지 한 번쯤 곰곰이 생각해보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