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하이 나의 단골집
한국에서 직장생활을 2년 정도 했었다. 대학 졸업 후 한국에서 정규직으로 입사한 첫 직장이었다. 난 일에 흥미는 있었지만 일에 대한 욕심도 지나칠 때였다. 그래서 실전 경험은 많지만 전문 지식은 부족한 상사와 트러블도 잦았고, 상사를 무시하는 대범함과 무례함도 가진 삼십 대 초반이었다.
그때 나의 단골집은 동네 양꼬치집과 서면의 카레 집이었다.
동네 양꼬치집에서는 상사와 트러블이 있을 때 주로 찾았고, 그곳에서 난 맥주와 깐풍육을 먹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집은 양꼬치보단 깐풍육이 더 맛있었다. 그렇게 거하게 먹고 마시고 나서 걸어서 집에 돌아갔고, 그 길로 침대에서 뻗어 잠이 들곤 했다. 상사는 머릿속에 완전히 지운채.
서면에 있는 카레집은 일본의 좁은 골목에 있을 법한 작고 오래된 집이다. 가게가 좁아서 그렇기도 하지만 시끄러운 번화가를 지나 도착해 문을 열면 자연스럽게 조용해질 수밖에 없는 곳이었다. 그곳 분위기가 그랬다. 난 유독 목소리가 큰 중국인 고객들과 하루 종일 전화로 이야기를 하고, 직장 내에도 목소리가 큰 중국인 동료들과 싸우다시피 떠들고 나면 퇴근할 때쯤이 되면 귀가 먹먹해져 이명이 들릴 때도 있었다. 그럴 땐 조용한 곳이 너무나 필요했다. 말을 해도 소곤소곤 말할 수 있는 곳. 작게 이야기해도 잘 들릴 수 있는 그런 곳. 그런 곳에서 조용히 밥을 먹고 나면 그 자체가 나에겐 힐링이었다.
상하이 생활 5년 차가 되어가니 이곳에도 나만의 단골집이 생기기 시작한다.
비싼 음식으로 배를 채운 날에도 생각나 들리곤 하며, 때론 집에 있는 김치를 가져가면 최고의 김치볶음밥을 만들어주는 동네 작은 볶음밥 포차 ‘광원 볶음밥’.
하루 종일 있어도 집처럼 편하고, 매번 우리 반려견 하루 간식도 챙겨주는 동네 작은 카페 ‘The Room’
이 곳들은 나에게 마치 퇴근길에 사간 통닭 한 마리를 가족들과 일일 연속극을 보며 먹는 기분과 잔뜩 화가 난 날 카톡 메시지 하나에 달려와 열심히 소맥을 제조해주는 친구를 둔 것과 비슷한 느낌과 온도를 가져다준다.
원래 단골은 마을의 제를 장기적으로 담당하는 무당을 부르는 말이었다고 한다. 아무래도 잘하는 무당이 인기도 많을 테고, 그러다 보니 정해놓고 늘 불러 쓰는 무당이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단골이 늘 정해놓고 거래하는 곳, 손님 이란 뜻으로 사용되었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단골집이란 단순히 자주 간다고 해서 단골집이라고는 부를 순 없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내가 무언가를 절실하게 바랄 때 무당(단골)을 찾는 것처럼 그리고 절실할 때 찾은 무당(단골)이 나의 절실함을 해소해줄 때 그 무당(단골)을 또 찾게 되는 거니까 말이다.
삶에 절실함이 있다면 우리 모두에겐 자신의 단골이 있어야 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