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는 집은 프랑스 조계지에 위치해 있다. 그래서 집 주변엔 개항 당시 상하이로 넘어와 살던 프랑스, 스페인, 영국인들이 설계하고 지은 건축물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다. 짧게는 50년에서 길게는 200년이 넘은 오랜 역사를 지닌 건축물들이다. 그리고 그 집들 사이로는 긴 시간을 함께 보냈을 굵직한 플라타너스 고목들이 빼곡히 늘어서 있다. 그 거리가 나의 출퇴근길이자, 5년째 살고 있는 우리 동네이다. 내가 사는 집 주변을 글로 묘사하거나 가끔 사진으로 찍어 SNS에 올리면 사람들은 이곳이 중국인지 모를 정도로 유럽의 한 마을에 온 느낌을 받는다고 한다.
하지만 실제로 이곳에 오면 유명 건축물 앞에서 인증샷을 올리기 위해 신호등과 보행자 도로를 막고 있는 중국 각지에서 온 인파들에 발 디딜 틈조차 없는 현실을 보게 된다. 유럽을 느끼기도 전에 60억 인구의 중국의 한 부분을 보게 된다. 물론 사진에선 그 북적임이 잘 보이진 않는다. 사진을 올리는 모든 이들은 자신도 그 북적임을 제공하는 한 부분임을 알지만 북적임을 제거해야지만이 관광지가 더 아름답다는 것도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북적임 속의 고요함, 그 찰나를 찍기 위해 줄을 서고, 기다리며 한 장의 #인생 샷을 건지는 것이다. 관광객들은 한 장의 인생 샷을 건지고 나면 다음 장소로 이동하지만, 동네 주민에겐 내내 끊이지 않는 인생의 연속 샷처럼 이들과 마주친다. 동네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사람들이 길을 막고 앉아있어 강아지 산책시키는 것도 불편하고, 시끄러운 것이 불평이라지만 나는 그런 것쯤은 거뜬히 넘어갈 수 있다. 하지만 주말에 늦잠 자고 일어나서 세수도 하지 않고, 뒷머리 새둥지를 열어둔 채, 답답한 브라도 벗어두고, 잠옷인지 일상복 인지도 모를 반바지와 셔츠를 입고, 눈에 보이는 아무 신발이나 접어 신고 나가 빵집에서 빵을 사고, 커피를 마시는 것이 내가 생각하는 주말 아침의 평화와 여유인데 난 그 평화를 누릴 수 없다는 것이 불평이었다. 친구들은 '아무렴 어때. 네가 그렇게 차려입고 나가서 빵 사고 커피 마셔도 아무도 신경안 쓸걸?'이라고 하지만 한 장의 사진을 위해 화려한 옷에 풀메이크업을 하고, 휴대폰부터 대포 사진기까지 풀세팅을 하고 온 모델과 사진사 사이를 당당하게 걸어 나갈 자신이 없었다. 그렇게 나는 점점 주말의 평화와 여유를 포기하고 잊었다.
어느 주말 아침, 한 할아버지를 거리에서 만났다. 할아버지는 그 북적이는 거리의 가운데 앉아 오래된 건축물을 보며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전문가의 솜씨는 아니었지만 할아버지만의 느낌이 있는 그림이었다. 손으로 직접 손질하고 만든 것 같은 오래된 이젤, 빨주노초파람보 색깔을 더 이상 알아볼 수도 없을 정도로 섞고, 색을 찾았을 파렛트의 흔적, 손을 쥔 부분만 광이 나던 붓을 보며 할아버지와 그림이 맺은 연의 시간의 길이를 짐작할 수 있었다. 할아버지는 그림을 그리면서 붓을 살짝이 흔들기도 하고, 몸을 흔들거리기도 했는데 신기해서 더 가까이 다가가니 어디선가 음악이 흐르고 있었다. 할아버지 목에 걸린 작은 스피커에서 나는 소리였다. 그곳에선 할아버지에게 들릴 정도의 얼후 연주곡과 중국 가곡이 적절하게 섞인 할아버지만의 플레이리스트가 재생되고 있었다. 수많은 인파 속에서도 할아버지 주변만큼은 할아버지만의 세상, 할아버지만의 버블이었다. 할아버지 옆에 웅크리고 앉아 얼후 연주를 듣고 있으니 나도 마치 그 버블 안에 들어간 느낌이었다. 한 참 할아버지 버블 안에서 유영하다 일어나 가방 속의 이어폰을 꺼내 휴대폰에 꽃았다. 그리고 뮤직 앱 브라우저에 올라온 아무 노래를 재생했다. I am a Believer 가 첫 곡이었다. 약간 비틀즈스러운 음악인데 경쾌했다. 그동안 몇 년을 걸었던 같은 길인데 그날따라 다른 기분, 감정으로 걷고 있었다. 음악 하나 틀었을 뿐인데 말이다.
그제야 심장에도 박동이 있다는 걸 새삼스레 느꼈다. 맞다. 사람이 살았는지 죽었는지 확인할 때 제일 먼저 심장의 박동을 듣는 것처럼 우리의 감정이 죽었는지 살았는지 확인하려면 리듬을 확인하면 되는 것이었다.
우캉로드의 화가 할아버지는 이 진리를 잘 알고 계셨다.
삶에 리듬을 주는 방법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