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누구인가?
나는 누구인가?
철학과 자살은 이 질문에서 시작된다고 한다.
이 질문은 내가 죽은 다음에 반드시 내가 대답해야 할 질문이다.
내가 죽은 다음에 누군가가 나에게 이렇게 물어볼 것이다.
“너는 누구인가?”
침례 요한도 이런 질문을 받았다. “당신은 누구인가?”
침례 요한은 예수님처럼 나사렛 지방에 사는 하층민 출신이 아니다.
그는 대제사장 사가랴의 아들이고, 심지어 예언으로 태어난 사람이다.
동네 사람들은 그가 누구인지를 다 알고 있다.
그러나 침례 요한이 활동하면서 사람들은 그의 실체에 관해서 물어보았다.
[요 1:19-23, 새 번역]
19 유대 사람들이 예루살렘에서 제사장들과 레위 지파 사람들을 [요한에게] 보내어서 "당신은 누구요?" 하고 물어보게 하였다. 그때에 요한의 증언은 이러하였다.
20 그는 거절하지 않고 고백하였다.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오" 하고 그는 고백하였다.
21 그들이 다시 요한에게 물었다. "그러면, 당신은 누구란 말이오? 엘리야요?" 요한은 "아니오" 하고 대답하였다. "당신은 그 예언자요?" 하고 그들이 물으니, 요한은 "아니오" 하고 대답하였다.
22 그래서 그들이 말하였다. "그러면, 당신은 누구란 말이오? 우리를 보낸 사람들에게 대답할 말을 좀 해주시오. 당신은 자신을 무엇이라고 말하시오?"
23 요한이 대답하였다. "예언자 이사야가 말한 대로, 나는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요. '너희는 주님의 길을 곧게 하여라' 하고 말이오."
유대인들의 질문은 사가랴의 아들, 요한에게 족보를 묻는 것이 아니라 정체성을 묻고 있다.
이 질문의 실체는 [누구로부터 이런 명령을 받았는가?]이다.
침례 요한은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라고 대답했다.
사탄이 광야에서 예수님에게 [하나님의 아들이거든]이라고 말하며 정체성을 확인하려고 할 때,
예수님께서 말씀으로 대답한 것처럼 침례 요한도 말씀으로 대답했다.
나의 이름은 태현(台별 태, 鉉 솥귀 현) 현자는 돌림자이고 별 태는 당시 점집에서 사주를 보고 작명했다고 한다.
이름에는 특별한 의미가 없었고 사주가 나빠서 액운을 막기 위한 이름이라고 들었다.
자녀의 이름이란 부모의 소망과 축복이 응축으로 지어진다.
나의 이름에는 그런 것들이 없었다.
그래서 나의 자녀에게는 이름 자체가 은혜로운 이름을 지어주고 싶었다.
누군가가 자녀에게 [너는 누구냐?]라고 말했을 때, 내 자녀가 자기 이름을 말하면서 그 뜻을 전할 수 있도록 …. 침례 요한처럼.
첫째 딸, 유민의 뜻은 느릅나무 楡유, 그리고 물 흐를 潣민이다.
이름의 콘셉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시편 1장)에서 가져왔다.
물가에 자라는 버드나무 [유]도 있지만, 그래도 약재로 사용하는 느릅나무가 더 좋았다.
유민에게 너는 누구냐고 물으면 유민이가 시냇가에 심어진 나무, (말씀으로 충만한 사람)이라고 대답하기를 축복하며 태어나기 전에 유민이라는 이름으로 그녀를 맞이했다.
둘째 권민이는 좀 센 이름이다. 권세 권 權과 물 흐를 潣민 이다.
에스겔서 47장에 나오는 하나님 보좌에서 흘러나오는 물로 잡았다.
[겔 47:9, 새 번역] 이 강물이 흘러가는 모든 곳에서는, 온갖 생물이 번성하며 살게 될 것이다. 이 물이 사해로 흘러 들어가면, 그 물도 깨끗하게 고쳐질 것이므로, 그곳에도 아주 많은 물고기가 살게 될 것이다. 강물이 흘러가는 곳이면 어디에서나, 모든 것이 살 것이다.
권민에게 너는 누구냐라고 말하면, 권민이가 [나는 하나님 보좌에서 흐르는 물(말씀)이다]라고 말하기를 소망하면서 이 이름을 지었다. 그런데 권민이라는 이름으로 아들 권민이가 태어나기 5년 전인 2000년도부터 내가 사용한 필명이다. 나는 5년 동안 아들을 기다렸다가 이 이름을 그에게 주었다.
유민이와 권민이를 향한 나의 기도는 그들이 이름처럼 사는 것이다,
그들의 인생에서 자신의 이름이 명사가 아니라 동사가 되기를 바랄 뿐이다.
말씀으로 살고 말씀이 되는 존재, 내가 사람의 단어로 할 수 있는 최고의 축복은 이것뿐이다.
내 자녀 이름은 이렇게 지었지만, 문제는 나 자신이다.
천사가 나에게 [너는 누구인가?]라고 말하면 뭐라고 대답할까?
조태현이라고 대답하면 알아들을까?
요한계시록에서는 신앙으로 이긴 자들에게는 새 이름을 준다고 했다.
주님이 나에게 주시는 이름은 무엇일까?
어떤 기준과 복으로 나에게 이름을 주실까?
창세 전에 준비한 나의 이름은 무엇일까?
사실, 내가 천국에서 불렸으면 하는 이름이 하나 있다.
나의 이메일 아이디이기도 하며 30년 동안 내가 나를 정의한 이름이다.
coel코엘이다. co + EL로 만든 단어인데 … 하나님 EL과 함께 co 한다는 의미다.
이 단어는 시편 37편과 잠언 3장 5절~6절 그리고 시편 131편을 압축한 이름이다.
김칫국부터 마시는 것이지만 …. 코엘이라는 이름을 영원한 내 이름으로 갖고 싶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의 의미인 [임마누엘]과 같은 의미다.
분명 예수님께서 주안에 있으면 무엇이든지 구하라고 말씀하셨다.
나의 기도는 내가 진짜 CoEL(코엘)이 되는 것을 구한다.
코엘(하나님과 함께하는 것)이 된다는 것은 하나님의 성전이 된다는 의미이며 다윗 외 수많은 신앙 선배처럼 살다가 죽는 것을 말한다.
만약에 내가 죽고 다시 눈을 떴을 때, 내 앞에서 주님께서 [수고했다, 코엘]이라고 말씀해 주신다면. 천사들이 지나가다가 [안녕하세요. 코엘]이라고 인사를 한다면 … 기분이 얼마나 짜릿할까?
이것이 나의 ‘김칫국’ 기도 제목이다.
이름으로 예언을 증명해야 한다.
아브람에서 아브라함, 야곱에서 이스라엘, 사울에서 바울까지...
나도 조태현이 아니라 CoEL이라는 이름처럼 살다가 죽고 싶다.
참고로
저는 원천침례교회 / 민트교회(담임목사 이계원)의 교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