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예수다움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권민 Feb 29. 2024

교회,성전, 몸

이런? 

교회에 다니는 사람과 교회가 된 사람의 차이는 며느리와 쥐며느리(벌레)와 같습니다.

“너 교회 다녀?”와 “너 교회야?” 이 차이를 이해하고 구분할 수 있나요?

이 질문을 기독교 교리 개념으로 대답하는 것이 아니라 경험으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합니다.


[롬2:13, 새번역] 하나님 앞에서는 율법을 듣는 사람이 의로운 사람이 아닙니다. 오직 율법을 실천하는 사람이라야 의롭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예수님의 몸입니다. 주님과 연합된 성도라고 한다면 교회 출석이 아니라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나는 예수님의 몸이 되어가고 있는가?

예수님의 몸처럼 살고 있는가?

이 질문에 대답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간증으로 증언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몸으로 예수님의 말씀을 어떻게 삶을 살아냈는지가 예수님의 몸 된 교회 된 자의 실존입니다.

그렇다면 나는 그렇게 살았나?


나는 예수님의 신부(며느리)로 살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어둡고 습기 찬 곳에 숨어 있는 쥐며느리 벌레처럼 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교회가 될 수 있을까요?

방법은 아주 간단합니다. 그러나 교회가 될 수 없는 이유는 선택과 결심이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럼, 방법을 알려드리겠습니다.

먼저 응답을 구하는 기도가 아니라 선택과 결심을 올리는 기도에서 시작합니다.

이렇게 주님의 몸, 교회가 되기로 기도합니다.


[빌3:10-11, 새번역]

10 내가 바라는 것은, 그리스도를 알고, 그분의 부활의 능력을 깨닫고, 그분의 고난에 동참하여, 그분의 죽으심을 본받는 것입니다.

11 그리하여 나는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나는 부활에 이르고 싶습니다.



예수님을 알고, 예수님의 부활 능력을 깨닫는 것은 성도라면 교회에서 배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고난에 동참하고 죽으심에 본받는 것은 교회가 되어야만 감당할 수 있습니다.

스스로 고난에 뛰어들고 순교자가 되라는 것은 아닙니다.

바울 사도처럼 이렇게 결심하고 소망을 가지고 있으면 주께서 바울 사도나 베드로처럼 이끌어가시지 않을까요?

우리는 진짜 원하는 것을 기도합니다. 원하지 않는 것은 기억도 나지 않습니다.

 자기 부인과 예수님의 고난과 죽으심에 동참하기 위해서 기도할 마음이 있으신가요?

진짜 그렇게 될 것 같아서 겁이 나지 않나요? (저는 겁이 납니다.)



[골1:24, 새번역] 이제 나는 여러분을 위하여 고난을 받는 것을 기쁘게 여기고 있으며,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분의 몸 곧 교회를 위하여 내 육신으로 채워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바울 사도는 자기 몸이 예수님의 교회이며, 예수님의 몸과 자기 몸이 연합되었는지를 알 수 있었을까요? 바울 사도는 교리상으로 알고 있는 것일까요? 아니면 체험으로 알았을까요?

예수님은 바울 사도에게 성도의 몸이 자신임을 이렇게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행9:4-5, 새번역]

4 그는 땅에 엎어졌다. 그리고 그는 "사울아, 사울아, 네가 왜 나를 핍박하느냐?" 하는 음성을 들었다.

5 그래서 그가 "주님, 누구십니까?" 하고 물으니,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다.


사울은 기독교인을 체포하기 위해 이동 중이었죠.

예수님은 사울이 괴롭히는 사람이 바로 예수님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제 잔도 어떻게 안될까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