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의 잔재가 세상을 겉도는 3월. 벚꽃을 닮아 잠시 봄임을 착각하게 하는 매화가 피면 농부는 매실의 수확 날을 세기 시작한다. 매화의 개화는 그 자리에 매실이 열릴 것임을 암시하기 때문이다. 매실은 매화가 피고 난 뒤 약 90일이 지난 5월 말에서 6월 초면 수확에 들어간다. 산지마다 그 시기가 조금씩 다르긴 하나 매실의 주산지인 광양의 경우 현재 본격적인 수확에 들어갔다. 현시점은 단단하고 푸른 자태를 자랑하며 바람에 기댄 채 청명한 마찰음을 내는 청매실의 수확기이며, 동시에 여름 더위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직전의 문턱이다. 이 시기를 변곡점 삼아 여름 더위가 시작될 것이다. 이는 매실을 가운데 두고 맺은 우리와 여름 사이의 암묵적인 약속. 매실을 수확하는 이맘때 가장 실한 녀석들로 청과 장아찌를 담가두면, 그것은 여름철에 식욕을 잃는 우리의 입맛에 생기를 주는 약이 되어준다.
매실은 청으로 소비되는 비율이 압도적이다. 매년 이맘때가 되면 인터넷의 인기 게시물은 매실청을 담그는 방법에 대한 내용으로 주를 이루고, 해당 레시피들 대부분은 단단하고 초록빛이 선명한 청매실을 메인 재료로 내걸고 있다. 매실의 종류도 세분화하자면 타 작물처럼 그 품종을 수 십수 백 개로 짚을 수 있지만,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매실은 품종으로 나뉘는 것이 아닌 익은 정도로 나뉜다. 즉, 우리가 부르는 청매, 황매, 홍매는 같은 매실을 두고 익은 정도에 따라 달리 부르는 것이다. 덜 익은 매실을 청매실, 익은 매실을 황매실, 그보다 더 익어 붉은 빛깔이 도는 매실을 홍매실이라 부른다. 청매실을 수확하지 않고 나무에 그대로 두면 점점 익어가면서 황매실이 되고, 거기서 며칠이 더 지나면 붉은 빛깔을 발하는 홍매실이 된다. 청매실로 수확한 뒤에도 온도와 기간에 따라 황매실로 익기는 하지만, 홍매실이라 불릴 만큼 선명한 붉은색을 발하며 익는 경우는 드물며 대부분 황매실에 그친다. 진정 탐스러운 황색과 홍색을 즐기기 위해선 느긋한 마음으로 나무에서 익기를 기다려야 한다.
자 그럼, 이만하면 매실청이나 장아찌 모두 무엇으로 담그든 같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되려 매실 또한 과일(핵과에 속하는 열매 과일)인 만큼 익을수록 맛과 향은 진해지고 영양 성분은 더 올라가니, 덜 익은 청매실보다 익은 황매실과 홍매실을 선택하는 것이 매실을 완벽하게 즐길 수 있는 방법이다. 그러나 소비자 대부분이 청매실을 찾으니 대체 이유가 무엇일까?
처음 매실을 재배할 당시 농민이나 상인, 소비자 모두 '매실'이라는 생경한 작물을 어떻게 먹어야 할지 고민하다, 푸른색과 단단한 과육을 가진 청매실이 보기 좋아 그것으로 소비하게 된 것이 시발점이 아닐까 생각한다. 익히 우리가 신선한 과일을 떠올릴 때 단단하고 푸른 것을 연상하기 때문에. 이외에도 용도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청맥실은 익은 황매나 홍매보다 과육이 더 단단해, 청이나 장아찌를 담가도 그 형태가 보존된다는 점도 크게 작용해 청매실을 선호하게 된 것으로 생각된다.
시발점을 특정하기는 어렵지만 분명한 것은 이 같은 인식을 사람들에게 각인시킨 건 방송의 역할이 가장 크다는 것이다.
내가 이토록 황매와 홍매를 알리려 하는 이유는 청매에만 편중된 관심으로 인해, 불과 익은 정도라는 차이에 가격이 하늘과 땅 차이로 갈리기 때문이다. 소비자의 주된 관심이 청매로 가 있는 만큼, 산지와 유통 업자는 매실 철이 되면 하루라도 빨리 출하하기 위해 분주해진다. 대부분 일회성 구매로 그치는 매실의 특성상 최대한 빨리 출하하여 최대한 많은 소비자에게 판매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매실은 보통 5,10, 20kg으로 나눠 박스 혹은 망에 담겨 유통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망도 마찬가지지만 특히 망에 비해 숨 쉬는 것이 더 제한되는 박스 포장의 경우, 밀폐된 박스 내의 온도에 의해 쉽게 익어버릴 만큼 청매는 며칠 차이로 익은 정도가 극명하게 갈리는 작물이다. 그래서 요즘과 같은 시기는 농가와 유통 업자 모두에게 예민한 시기이다. 자칫 때를 놓쳐 청매실이 익기라도 하면 농부는 소비자도 놓치고 제값도 받지 못하게 되어 한 해의 매실 농사를 실패하게 된다. 그리고 불행히도 이 같은 일은 해가 갈수록 일손이 부족해지는 농가의 입장에서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특히, 올해 매실 농사는 유난히 더 농부의 근심이 큰데 이유는 매실이 지난 3월 저온 피해와 강풍 피해를 연달아 겪은 탓에 예년에 비해 생산량이 20~30%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생산량이 적어지는 만큼 가격이 받쳐 준다면 감소한 생산량에서 오는 리스크를 커버할 수 있겠지만 매실의 소비는 주로 중장년 층에 한정되어 있고, 이마저도 점점 완제품을 사 먹는 추세로 넘어가기에 생과를 구매하는 소비력이 받쳐 주지 못하는 실정이다. 결국 생산량 감소로 인한 피해는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일손이 부족해 그나마 수확 가능한 청매실을 100% 거둬드리기도 힘드니 올해 매실 농가는 대부분 미소 짓기 힘들 것이다.
그러니 더더욱 우리가 청매와 황매, 홍매에 고루 관심을 두어야 한다. 그렇다면 보다 진한 향과 맛을 더 많은 사람이 알 수 있게 되고 가격은 안정을 찾아, 종국에는 일손 부족으로 인한 수확 지연에 따른 농부의 손실은 줄고 안정적인 수익을 기대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지금도 티브이를 틀면 매실청을 담그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여전히 청매실이 필요하다는 이야기. 익은 과일이 맛과 영양, 향이 더 좋다는 말은 들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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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삶과 농산물 사이의 교점을 말하다"
농산물 에세이 《계절을 팔고 있습니다》 전성배 지음
전성배 田性培
aq137ok@naver.com
《계절을 팔고 있습니다》 에세이 / 2021 .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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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이면》 : 전자 수필집 / 2020 . 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