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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성배 Dec 09. 2020

"당신은 알고 있었어요?" - 고태숙 농부

월말이 되면 통장에 들어오는 얼마의 돈은 '삶'이라는 장황한 트랙 위에서 한 번씩 들이키는 감수甘水다. 어느 직장인은 목을 축일 새도 없이 새는 통에 빼쭉 입을 내밀고, 또 어떤 이는 채 해소하지 못한 갈증에 입맛만 다시지만 결국, 다달이 주어지는 감수에 안심과 예정된 행복을 누린다는 것에서는 모두가 같다. 한편 여타 자영업자가 그러하듯 농부의 사정도 직장인과는 사뭇 다르다. 일정하지 못한 행복에 매달려 하루 한 달 일 년을 살아간다. 그래서 누군가가 일상적인 행복을 누리는 동안 어느 농부는 그것을 부러워했다. 


당신, 듣고 있어요? 나도 그런 삶을 살고 싶었어요. 어느 친구처럼 정기적으로 적금도 넣어보고, 다달이 받는 월급으로 일상을 계획적으로 꾸려나가고도 싶었어요. 그런데 당신의 고집 때문에 그러지 못했죠.

 당신이 없는 지금은 그 고집에 전염이 됐는지, 내가 그것을 부리고 있다고 하네요? 참 삶이 아이러니하죠?
고태숙 농부님의 '태상 농장' 전경 - 막내 따님의 촬영분

모든 감귤을 기르던 두 명의 손, 이제는 모든 감귤을 기르는 한 명의 손


작년 고태숙 농부는 남편과의 긴 인연에 큰 변화를 맞이했다. 농부로 사는 동안 그 어렵다는 친환경 농사에 목숨을 걸었던 남편이 어느 날 홀연히 먼저 떠난 것이다. 한 평생 그와 함께 농사를 지었던 그녀와 그 부모를 보며 자라온 자식들에게는 거대한 슬픔임과 동시에 농경생활의 위기였다. 


"작년 그이를 먼저 떠나보내고 슬프기도 슬펐지만 막막했습니다. 2017년에는 '농업인의 상'을 받았을 정도로 그이는 항상 새로운 품종과 새롭고 친환경적인 농법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이가 세상을 떠나니, 부부가 분업하던 농사부터 당장 막막해지더군요. 생전 그이는 농사를 담당하고, 저는 수확과 판매를 담당했었거든요."


고태숙 농부는 남편을 떠나보내고 슬픔에 잠길 겨를도 없이 그가 남긴 농사를 걱정해야 했다. 자식들은 이왕 이렇게 된 거 그만 모든 걸 내려두라 하였지만, 어디 이 귤밭이 그냥 귤밭이던가? 남편과 싸우기도 많이 싸우며, 고생이란 고생을 다하고 때론 미워하며 악착같이 일권 낸 땅이다. 다행히 남편이 남긴 영농일지가 있었고, 도와주고자 하는 인연들이 있었다. 일찍이 그의 고집으로 농사에 수고를 덜 자동화 시스템이 부부의 농장 '태상 농장'에 자리 잡혀 있었다. 그를 잃은 슬픔에 당장은 눈치 채지 못했지만, 태상 농장은 이미 홀로 서기의 준비가 끝난 상태였다.


"남편이 떠나고 일 년이 지난 지금, 생각해보면 마치 모든 게 준비되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음.. 먼저 저희 부부가 처음 친환경 농사를 짓고자 했던 건 20년 전이었습니다. 그때까지는 일반적으로 농약과 화학비료를 쓰며 농사를 지었는데, 난데없이 그이가 친환경 농사를 하겠다고 선언을 하지 뭐예요? 때문에 참 많이 싸웠습니다. 농약을 쓰던 땅에 친환경 농법을 도입하기 위해서는 최소 3년은 땅을 놔주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 말인즉슨, 3년 아니 다음 작물을 기르는 시간까지 포함한다면 최소 3~5년은 수익을 낼 수 없다는 의미였습니다. 거기에 새로운 농법을 도입한다는 시행착오까지 곁다리로 따라오니.. 자식들은 커가는데 부모로서 너무 무모한 모험이었지요. 하지만 그이의 고집을 꺾을 수 없었고, 그로부터 예상을 뛰어넘는 자그마치 10여 년이란 긴 인고의 시간을 버텨야 했습니다. 이렇게 누구에게나 인정받는 건강한 귤을 재배하기까지. 지금 생각해보면 그이는 정말 대단한 사람이었습니다.


작년에 그이가 세상을 떠난 뒤 홀로 마주한 농장을 보며 느꼈지요. 어느샌가 우리 농장은 다른 농장과는 비교할 수 없는 친환경적인 농법을 유지하고 있었고, 저 혼자도 거뜬히 해낼 수 있는 자동화 시스템, 친환경을 도입한 뒤 20여 년의 농사가 빼곡하게 기록된 그이의 일지와 그가 쌓았던 인망이 도움이라는 인연으로 되돌아와 있었습니다. 마치 일찍이 나를 위해 준비해둔 것처럼.


덕분에 레드향을 필두로 금귤(낑깡)을 포함한 다양한 감귤을 홀로 너끈히 재배하고 있습니다. 자식들도 두 팔 걷어 수확과 판매를 도와주고요."

고태숙 농부님 - 막내 따님의 촬영분

홀로 꾸려가는 농장의 주력 상품 '레드향'


2010년 서지향과 한라봉의 교접으로 탄생한 '감평'이라는 품종의 만감류에 하나의 상표명이 정식 등록된다. 바로 '레드향'이다. 진한 주황색을 띠는 감평의 과육을 고려해 빨간색을 의미하는 '레드(Red)'에 천혜향에 쓰이는 '-향香'자를 붙여 탄생시킨 이름이다. 그리고 레드향이 선정되었을 때 당시 언론은 '연인의 감귤'이라 지칭했다. 그 붉은색은 연인을 상징하기 때문이라면서.


"귤과 한라봉, 천혜향, 레몬, 금귤, 레드향 등 많은 감귤을 재배하고 있지만, 저희 농장의 주력 상품은 뭐니 뭐니 해도 '레드향'입니다. 남편과 함께 가장 힘든 노력 끝에 일궈낸 작물이기도 해 애정이 남다르지요. 레드향이 본격적으로 등장했을 때 당시, 늘 새로운 작물과 농법의 도입을 주저하지 않던 남편에게는 안성맞춤의 품종이었습니다. 귤보다 큰 크기에다 귤과 달리 붉은색을 띠는 속살. 거기에 큰 귤 답지 않게 진한 맛과 향을 발하니, 남편은 순식간에 레드향에 매료되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우리의 농장에서 기르기 위해서는, 우리만의 친환경적인 방법으로 재배하기 위해서는 많은 시행착오를 겪어야 했습니다. 말도 못 할 정도로.. 그 사이 여느 젊은 연인들 못지않게 우리 부부도 싸우고 화해하기를 반복하며 레드향을 길렀습니다. 지금처럼 이렇게 잘 자라며 인정받기까지 말이지요. 그래서 저 레드향을 보면 마음이 뿌듯하다가도 뭉클해집니다. 맛도 맛이지만, 그 시절 우리 부부의 희로애락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것 같아서."


그녀의 남편은 일찍이 레드향의 대중성을 엿보았다. 감평이 '레드향'이라는 정식 상표명을 갖고 대대적인 마케팅을 벌였을 때, 예상대로 레드향은 설날에 천혜향과 한라봉보다 더 고급 과일이란 명목으로 불티나게 팔렸다. 실제로 판매자의 입장에서 설날 과일 선물의 주력 상품인 만감류의 품종별 매출을 보았을 때, 레드향은 가장 비싼 가격임에도 불구하고 단연 큰 인기를 끌었다. 제주가 집행한 마케팅의 성과일까? 아니다. 근거가 없는 마케팅은 속 빈 강정일뿐이다. 풍부한 과즙과 짙은 귤향, 그리고 이름처럼 붉을 정도로 짙은 주황빛의 과육 색이 큰 크기의 귤은 맛이 없다는 인식을 타파하며 많은 이의 사랑을 받게 했다. 


어쩌면 그녀의 남편은 여기까지 내다본 것일지도 모르겠다. 혹은 오롯이 '연인의 감귤'이란 수식어에 아내가 떠올라 함께 기른 것일지도 모르고.

고태숙 농부님의 '레드향' - 막내 따님의 촬영분

떠난 이의 뜻은 남은 이에게 남는다


남편의 빈자리를 그리워할 새도 없이 달려온 일 년, 지금 고태숙 농부는 홀로 태상 농장을 바라보며 지난날을 떠올린다. 이 넓은 농장을 살아생전 단신으로 진두지휘하며 작물을 기르고 가족을 먹여 살렸던 남편. 어떤 농부가 와도 쉽지 않은 친환경 농사를 한사코 할 것이라며, 아내인 자신의 뜻을 거스르고 강행하던 과거의 남편이 한때는 미웠다. 아니나 다를까 10년이란 세월을 내내 시행착오만 겪는데, 어떤 아내가 마음 편히 지켜볼 수 있겠는가. 초창기에는 친환경 농법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수확한 열매를 모두 버리는 일도 있었다. 지금이야 친환경 농사에 알맞은 비료와 약이 많이 등장해 농사가 수월해졌지만, 그때만 해도 마땅히 적용시킬 농자재가 없어 직접 물고기 액비를 만들어 써보는 등 투박하기 그지없었다. 또 겨우겨우 자리를 잡을라 치면 농장의 하우스가 태풍과 눈에 번번이 무너지기까지 했으니.. 그야말로 절망적인 나날이었다.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아찔합니다. 혹 누군가 다시 과거로 돌아가 원래 하던 농법을 유지하며 조금 더 평안한 농경 생활을 하겠느냐 묻는 다면, 정말로 진지하게 고민할 정도로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은 순간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렇게 실소가 나오는 건 이미 답은 정해져 있기 때문이겠지요? 우리 부부는 다시 그 힘든 길을 갈 것 같습니다. 남편의 고집을 꺾을 재간이 있나요? 농담이고, 속마음은 그때로 돌아간다면 이번에는 한 번의 반대 없이 남편과 함께 웃기만 하며 걷고 싶습니다. 저희의 귤을 드시는 소비자 분들이 이런 귤을 생전 처음 먹어 본다며 큰 눈으로 놀라고, 우리의 귤만 먹겠다는 소비자를 만나고, 자식들은 그런 우리를 자랑스럽게 여기는 지금입니다. 이 순간의 행복과 보람을 위해 그 긴 시간을 감내해야 했지만, 결국은 탁월한 선택이었습니다. 그러니 안 할 이유가 뭐가 있겠어요.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면, 잠시 미래를 엿본 사람으로서 남편에게 말하고 싶습니다. "그까짓 거 해보지 뭐, 당신이라면 잘할 수 있어요. 내가 옆에서 힘껏 도우리다."라고"

고태숙 농부님의 '태상 농장' 전경 - 막내 따님의 촬영분

부부는 닮는다.


그녀의 말에서 나는 불현듯 그녀의 남편이 보였다. 만나 본 적 없는 남편의 고집과 강단이 마치 봄바람의 온기처럼 나의 피부를 감싸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순간 나는 '부부는 닮는다'라는 문장을 떠올렸다. 언젠가 티브이에서 오래 산 부부일수록 얼굴이 닮는다는 속설을 소재로 다룬 프로를 본 적이 있다. 그 프로에서는 결혼한 지 오래된 부부를 대상으로 각자의 사진을 찍어 닮은 정도를 수치화 해 시청자들에게 공개했다. 결과는 상상 이상이었다. 서로 다른 삶을 살던 남녀가 만나 함께 살아가니, 얼굴의 닮은 정도가 혈연관계 이상으로 높게 나온 것이었다. 그리고 이는 단순히 부부만이 아니라 이따금 연인들에게도 발견되는 특징이었다. 사랑이라는 감정이 어떠한 효력을 발휘하길래 피 하나 섞이지 않은 남녀를 닮게 하는 걸까? 또 나는 왜 고태숙 농부님의 말에서 그 문장을 떠올렸을까? 


그녀가 어느샌가 남편의 얼굴을 넘어 그의 강단과 고집을 내비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남편이 떠나고 온전히 모든 농장 일을 제 손으로 하면서 어느 순간 그이와 같은 행동을 하는 저를 발견했습니다. 생전 그이는 안주하기보단 늘 정진하기 위해 고민하던 사람이었습니다. 맛이 좋다는 말을 들으면 유지가 아니라 더 좋은 맛을 내려 고민하는 사람이었고, 당연히 특정할 수 없는 문제를 포함한 모든 농장 관리에 온 신경을 집중하며 사는 사람이기도 했지요. 그리고 그것을 한 평생 곁에서 봐왔기 때문일까요? 그이의 버릇이 제게도 남은 것 같습니다. 변화무쌍한 저 나무들을 보며 의문을 갖고, 해답을 찾고, 해결하기 위해 제가 마치 그이처럼 노력하고 있으니까요. 저의 그런 모습이 어디서 왔을까요? 그이가 남겨두고 간 것이죠.


반 평생을 이 농장에서 보내며 때론 불확실한 농부의 삶이 싫어 회의에 젖기도 했지만, 남편이 떠나고 저는 도리어 남편의 자취를 잇고 있습니다. 아니러니 하죠? 지금은 감사할 따름입니다. 자식들에게 짐이 되기 싫은 내가 그이 덕분에 누구에게도 의지 하지 않고 살아가고 있으니까요. 이제는 그 고마움에라도 최대한 그이의 뜻을 지키며, 끝까지 귤을 기르고 싶습니다."

고태숙 농부님의 '태상 농장' 전경 - 막내 따님의 촬영분

나와 다름없지만, 나와 다르다


처음 고태숙 농부님과 그녀의 자녀와 통화했을 때 나는 놀라웠다. 고된 농사일을 홀로 도맡아 하신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남자도 쉽지 않은 것이 바로 농사일이다. 그것을 중년의 여성이 전적으로 도맡아 한다고 하니 나는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많은 부분을 일찍이 자동화해둔 덕에 충분히 가능했다는 걸 인터뷰를 하면서 알게 되었지만, 후에는 고태숙 농부님의 농사에 대한 열정에 놀라움은 끝날 줄 몰랐다. 아울러 계속된 그녀와의 인터뷰를 통해 농부도 나와 다름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도 한 때 그녀가 바라던 것처럼 안정적인 삶을 꿈꾸었다. 다달이 주어지는 감수로 일상을 계획하고 삶을 꾸리는 꿈. 농부의 이야기를 전하며 글과 과일로 먹고살자 했지만, 그것이 생각처럼 쉽지 않아 나는 여전히 허우적거리며 살아가고 있다. 그러니 같은 꿈을 꾸던 사람으로서 그녀에게 잔잔한 동질감을 느낄 수밖에.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나와 나름 없는 사람이지만, 나는 그녀처럼 될 수 없다는 것을. 누군가를 잃어본 경험은 없지만 그 슬픔의 크기를 짐작해볼 수는 있다. 나는 결코 그녀가 될 수 없다. 상상만 해도 슬픔에 잠식당해 숨을 쉴 방법조차 잃어버려 생을 놓아버릴 것만 같다. 그런데 거기에 떠난 이가 남긴 모든 걸 내 생으로 다시 이어 꾸려 나간다? 지금의 나는 불가능한 일이다.


그녀는 나와 다름없지만, 나와 다르다. 그것을 '연륜'때문이라는 보기 좋은 핑계를 대고 싶지만, 역시 아니다. 홀로 부부의 농장을 지키기로 결심한 그녀만이 될 수 있는 모습이다.



전성배田性培 : 1991년에 태어났다. [격간隔刊 전성배 산문]의 발행인이며, 농산물을 이야기하고 농부를 인터뷰한다. 농업계 이슈에 관심이 많고, 여러 주제로 글을 쓰지만 대부분 삶의 테두리 안에 머문다. 지은 책으로 <계절을 팔고 있습니다>가 있다. 계속해서 우리나라 농부에게 도움이 될 글을 쓰는 것과 더불어 문학적으로 완성도 있는 글을 쓰는 것이 목표이다.


aq137ok@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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