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일교차를 포함한 기상 여건과 질 좋은 토양 덕에 다양한 특산품으로 유명한 거창. 그중에서 사과와 딸기, 포도는 거창의 대표 농산물로 손꼽힌다. 특히, '거창 딸기'와 '거창 사과'는 논산 딸기와 장수 사과만큼이나 소비자와 과일 장사꾼들 사이에서 꽤나 인정받는다. 2013년 무렵에는 거창 사과가 7년 연속으로 '탑푸르트'로 선정될 만큼 그 명성이 드높았으니, 전 지역 사과를 통틀어 가장 으뜸일지도 모른다. 과거 시장 과일가게에서 직원으로 일하던 시절, 사장님께서 명절이면 꼭 '거창 고랭지 사과'를 사입해 오신 덕에 거창 사과 특유의 아삭함과 선명한 깔을 강점으로 내세우며 판매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하지만 급격한 기후 변화는 거창 사과를 가만히 두지 않았다. 해를 거듭할수록 종잡을 수 없는 이상 기후와 급진적으로 상승하는 기온은 올해 겨울만 해도 이례적으로 따뜻한 겨울을 만들고, 그보다 앞서 가을과 봄은 이름만 남은 추억으로 전락시켰지만 기후 변화는 거기서 만족하지 않고 거창의 사과에 까지 영향을 미치며 생산성을 떨어뜨리고 있었다. 그리고 이는 거창만이 아니라 남부 지방의 사과 산지에 공통적으로 들이닥친 위기였으니, 농부들의 신음이 날로 깊어질 수밖에 없었다.
오늘 이야기할 <오창석 농부님> 또한 그 위기를 겪었던 농부 중 하나이면서, 동시에 위기를 타파한 선견지명의 인물이기도 하다.
은퇴 후 농부로 전업한 아버지
농부의 삶은 고되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이 가진 계절의 색을 온몸으로 부딪히며 땀을 흘려야 하는 직업이면서 허리를 피는 시간보다 굽히는 시간이 많고, 잠을 자는 시간보다 눈을 떠 작물을 돌보는 시간이 더 많다. 그러나 이만한 고난에 대한 보상은 지독히도 냉정해 어느 해는 웃기도 하지만, 어느 해는 하염없이 한숨을 뱉으며 눈물을 삼키는 직업이다.
오가네 농장의 농장주 <오창석>님은 그런 직업을 은퇴 후에 과감히 선택하셨다. 젊은 시절부터 중장비 관련 일을 하며 쉽지 않은 일로 가족을 부양해오셨던 오창석님은 은퇴 후에도 일하기를 원했고, 과감히 농부의 삶을 선택하며 <오창석 농부>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사과로 유명한 거창의 한 사과 농장을 인수하는 것을 시작으로 농부의 삶에 발걸음을 뗀 그. 하지만 곧 농부의 삶이 주는 고됨보다 더 큰 고민이 그를 찾아왔다.
당시에도 거창은 사과로 유명했지만 온난화로 인해 사과의 생산성이 지속적으로 떨어지고 있었네. 나는 이를 간과할 수 없었고 결국 찾기로 했지. 농부의 삶을 지속할 수 있는 방법과 점점 예전만치 못하는 사과의 자리를 채울 수 있는 걸.
그리고 '나디아'라고 불리면서 '체리 자두'라는 별칭을 가진 자두를 알게 되었지. 체리와 자두를 교잡한 '나디아'라면 남녀노소 누구나 좋아할 수 있는 과일이 되어 줄거라 믿었고, 2013년에 정식으로 호주에서 묘목을 들여와 식재한 뒤 정성스럽게 기르기 시작했고 어느덧 8년째 재배하고 있네.
나디아 = 체리 자두
일반적으로 우리에게 친숙한 자두는 크게 다섯 가지 정도를 들 수 있다. 자두의 시작을 알리는 <대석>을 시작으로 <후무사> <대왕> <피> 가을의 <추희> 자두에 이르기까지 이들은 여름과 함께 가을로 향하는 계절의 항해 속에서 일정한 패턴의 물살을 일으키며 우리에게 자신을 상기시킨다.
그렇기에 어느 날 갑자기 등장한 체리 자두는 그저 생경할 수밖에 없었다. 수년 전, 호주에서 처음 개량에 성공한 신품종 자두가 있다는 말과 함께 체리 자두를 접했을 때에는 검붉은 외관은 물론 붉은색의 과육까지 피자두의 그것과 다를 바 없어 피자두로 착각할 정도였다. 그러나 이내 그 눈을 조금 다르게 뜨니 피자두와 다른 걸 볼 수 있었고, 그것이 가진 맛을 음미하며 체리와 자두의 교잡종이라는 것을 들으니 <나디아>를 대석과 마찬가지로 감히 자두의 시작을 함께 할 과일이라 말할 수 있게 되었다.
내외가 모두 검붉은 체리가 가진 색과 새콤함. 자두가 가진 풍부한 과즙이 주는 부드러움과 달콤함이 하나가 된다고 생각해보게. 언뜻 거대한 체리를 먹는 듯한 만족감과 그 만족감을 능히 받쳐주는 체리 자두의 맛은 어떤 자두와 비교해도 손색없지.
거기에 더해 체리 자두는 <안토시아닌>과 <베타카로틴>이 풍부한데, 여기서 안토시아닌은 인체의 유해 활성산소를 제거하고 면역력을 높여 염증과 바이러스 차단에 도움을 주고, 베타카로틴은 체내에서 비타민A로 전화되어 야맹증, 눈 피로, 시력 개선, 혈액순환, 항노화, 피부미용에 도움을 준다네.
신념과 철학으로 맛과 가치를 함께 전하다.
농산물과 축산물, 수산물은 모두 생물이다. 그렇기에 사람이 가진 다양한 개성과 드러나지 않는 속내를 모두 가지고 있어 맛을 종잡을 수 없다. 먹어 보지 않는 이상 그 맛을 알 수 없고, 겪어 보지 않는 이상 그 사람을 알 수 없는 건 모두 매한가지다. 그래서 사람은 주변의 평판을 통해 그에 대한 윤곽을 잠시 그릴 수 있고, 과일은 파종부터 수확까지 함께한 농부의 손길을 들여다보는 것으로 그 맛을 짐작할 수 있다.
얼마 전 자두 철을 맞이하여 오창석 농부님과의 인터뷰를 진행한 뒤 수확 시기에 맞춰 체리 자두를 주문하던 날, 자두를 주문하기 전부터 체리 자두에 대해 자신에 찬 어조와 정중한 표현으로 특징과 맛있게 먹는 방법을 알려주시던 농부님의 목소리를 잊을 수 없다. 오창석 농부님의 손길은 무슨 맛일지가 궁금해졌고, 맛만큼이나 중요한 상품의 인상이 궁금해졌다.
이튿날 농부님의 체리 자두가 도착했을 때, 나는 그 맛보다 먼저 인상에 반하고 말았다. 2단으로 반듯하게 담긴 체리 자두와 여름날의 뜨거움 속에서 자두의 품질을 지키기 위한 큰 얼음 팩까지. 나는 무엇 하나 흠잡을 곳 없이 도착한 체리 자두의 모습에서 지난 인터뷰 속 농부님의 말을 떠올렸다.
모든 과일이 마찬가지지. 어떤 환경과 어떤 농법으로 재배하느냐에 따라 품질과 맛의 차이가 천차만별이야. 그리고 그 말은 곧 과일의 맛을 좌우하는 건 농부의 손길, 농부의 정신과 마음 즉, 신념과 철학이라 나는 생각한다네. 어쩌면 농산물을 구매할 때 그 외형보다도 먼저 봐야 하는 것은 농부 자부심과 재배 방법 등 농부의 자세가 아닐까?
우리 농장은 제초제와 화학비료는 사용하지 않고, 거름과 천연 액비만을 사용하기 때문에 토질이 우수하고 거기에 햇볕이 잘 드는 남향받이라네. 체리 자두 농사에 이상적인 자리이면서 관리 또한 게을리하지 않는다는 의미지.
그리고 체리 자두도 우리의 노력과 기대에 부응하듯 좋은 품질과 맛으로 성장해주고 말이야.
마지막
뜨거운 여름의 열광에 기죽지 않는 붉은 자두의 자취는 달력을 보지 않아도 날짜를 셀 수 있게 한다. 대석이 시작되는 시기에 맞춰 6월 말을 말할 수 있고, 대석이 지나 후무사가 나올 때 7월의 중간을 짚을 수 있으니까. 많은 날을 대석과 후무사, 대왕 자두로 6월과 7월을 짚었지만, 이제는 여기에 체리 자두도 두어 이정표로 삼으려고 한다. 나디아는. 체리 자두는 능히 그럴 만한 과일이다.
그 좋은 맛 때문만이 아니다. 오창석 농부님의 강직함이 서린 정직함 때문이다. 그리고 그건 오창석 농부님만의 전유물은 아닐 것이다. 다른 농부님들도 작물과 함께하는 긴 세월 동안 오창석 농부님 못지않은 마음을 담아 작물을 자식처럼 기르고 있을 것이다.
나는 이번 체리 자두 편 인터뷰에서 오창석 농부만의 곧은 마음뿐만 아니라 그 마음을 새기고 작물을 기르고 계실 수많은 농부님들을 엿볼 수 있었다. 감사할 따름이다.
그럼 끝으로 농부가 전하는 맛있는 체리 자두 먹는 법을 남기며, 체리 자두의 이야기를 매듭짓겠다.
체리 자두는 익어감에 따라 껍질이 빨간색에서 검붉은색으로 변할수록 당도는 높아지고 과즙은 풍부해집니다. 더불어 표면에 하얀 가루가 생기는 현상도 당도를 판가름할 수 있는 척도이지요. 체리 자두를 고르실 때나 드시기 전에 이 점을 참고한다면 더욱 맛있는 시간이 되실 겁니다.
전성배田性培 : 1991년에 태어났다. [격간隔刊 전성배 산문]의 발행인이며, 농산물을 이야기하고 농부를 인터뷰한다. 농업계 이슈에 관심이 많고, 여러 주제로 글을 쓰지만 대부분 삶의 테두리 안에 머문다. 지은 책으로 <계절을 팔고 있습니다>가 있다. 계속해서 우리나라 농부에게 도움이 될 글을 쓰는 것과 더불어 문학적으로 완성도 있는 글을 쓰는 것이 목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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