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전성배 Nov 12. 2023

언제고 나는 당신이, 당신은 내가 될 수 있다.

내가 있든 없든 돌아가는 세상의 어느 한 편에서 이 이야기를 적는다. 이건 아주 오랫동안 발음되어 온 나의 ‘이름’에 대한 이야기. 이름에게 있어선 자신의 존폐를 논하는, 아주 무서운 이야기일 것이다.


열여덟 살의 밤, 성배는 MBC 예능 프로 ‘무릎팍 도사’를 본다. 기억이 맞는다면 무릎팍 도사는 당시 ‘황금 어장’이라는 메인 프로그램에 속한 하나의 코너 같은 프로그램이다. 앞서 방영하던 라디오 스타가 끝나면 곧장 이어지는. 순서가 반대였을 수도 있다. 애당초 라디오 스타가 아니었을 수도 있고. 황금 어장에서 소개하던 프로는 라디오 스타와 무릎팍 도사가 나오기 전까지 자주 바뀌었기 때문이다. 너무 오래된 기억이라 대부분을 짐작해야만 하지만 이것만은 명료하게 기억한다. 가수 비(정지훈)가 나와 자신의 가난했던 어린 시절을 이야기했다는 것. 혹독할 시절을 지나 세상에 본때를 보여주겠다며 가수로서 또 한 번 악착같이 노력했다는 것. 이야기의 말미에는 성배의 인생을 통틀어 가장 오래 기억하게 될 문장 하나가 그의 입을 통해 나왔다는 것.


“대체될 수 없는 사람이 되자”


이 한 줄은 그로부터 십 년이 훌쩍 넘도록 나의 신조로 읽힌다. 그러나 지금에 이르러서는 과연 이게 가능한 일일까 의문을 갖는다. 아니 애당초 자신의 이름으로 사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언제든 서로를 대체할 수 있는 세상에서 그건 점점 불가능한 일처럼 보인다. 어쩌면 이름 따위 없어도 살아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근거 없는 이야기가 아니다. 나 없이는 돌아가지 않을 것 같던 회사가 내가 떠나고 불과 한두 달 만에 정상화되고, 나 없이 못 살 것 같던 연인이 다른 사람을 사랑하며 생을 지속하는 것을 보며 생각했다. 나는 언제든 대체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이직한 회사에서 전임자의 일을 이어받아 하면서, 어떤 연인에게 사랑을 받으면서 나는 동시에 누군갈 대체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 또한 깨닫는다. 나를 누군가가 대신할 수도 있고, 내가 누군가를 대신할 수도 있는. 세상은 그야말로 언제든 서로를 대체할 수 있는 곳이었다. “대체될 수 없는 사람이 되자”는 충분히 가능한 듯보였지만 결국 가능한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때부터였다. 내 이름을 아무렇지 않게 부를 수가 없다. 내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나만의 것이 아닌 것 같다. 누구든 가질 수 있고, 느낄 수 있고, 겪을 수 있는 것. 내게는 너무도 특별해 ‘특별하다’ 말해 둔 것들에서 특별하다는 말을 빼기 시작했다. 물론 그로 인해 좋은 것도 있었다. 내가 겪은 슬픔이 나만의 슬픔은 아닐 거라고. 언젠간 타인도 겪게 되거나 이미 겪었을 수도 있다. 반대로 기쁨도 그럴 거라는 생각을 했다. 타인의 행복을 나 또한 이미 겪어 보았거나 언젠간 겪게 될 수 있다. 하지만 역시 한 사람 한 사람의 존재가 모호해지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결국 나는 내 이름을 무미건조하게 발음한다.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것처럼. 정서를 나누는, 특별히 서로를 사랑하는 관계들에서나 발음되는 걸로는 이름을 갖고 살 이유를 모르겠다. 그들에게 불릴 때마다 매번 마음이 데워지면서도 말이다. 여전히 이름이 없어도 살아질 것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그래서 이 책에는 나의 지식과 경험에 대한 술회가 담겨 있으나 당신이 이미 아는 지식이고 경험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설령 지금은 몰라도 언젠간 알게 될 것이다. 그러니까 이건 우리들의 지식과 경험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끝으로 이름의 효용도 모르겠고, 나라는 존재의 모호함을 시시각각 깨달으며 몇 날 며칠을 헤매던 어느 날 한 할머니를 만난 적이 있다. 지나간 세월의 잔재가 보이는 것의 전부인 저문 세월 같은 곳. 동인천에서 그 할머니를 만났다. 그 할머니의 이야기를 에필로그에 담았다는 이야기를 꼭 하고 싶다. 이름이 없어도 살아지겠지만 그럼에도 이름을 갖고 사는 이유가 거기에 있을지도 모른다.



전성배田性培 : 1991년 여름에 태어났다. 지은 책으로는 『계절을 팔고 있습니다』 『너와 나의 야자 시간』 이  있다. 생生이 격동하는 시기에 태어나 그런지 몰라도 땅에 붙어사는 농부와 농산물에 지대한 사랑을 갖고 있다.


aq137ok@naver.com

https://litt.ly/aq137ok : 홈페이지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