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세연 Sep 30. 2018

쇼핑이 없으면 여행이 아니다

캐리어의 무게는 곧 '욕심' 아니 '추억'의 무게이니라

내게는 어느 나라로 여행을 떠나든 변치 않는, 가장 두근대는 마음으로 초록창에 입력하는 검색어가 있다. 바로 '여행지명+쇼핑리스트'.

좌: 싱가폴 우: 몽골 쇼핑샷

경제력을 갖기 전 여행에서의 쇼핑은 사치였다. 하루에 15파운드도 안 하는 8인용 혼성 도미토리에 묵으면서 무슨 쇼핑을 한단 말인가. 고르고 골라 가장 갖고 싶은 한 장의 엽서와 기념 마그넷을 사는 게 쇼핑의 전부였지 싶다. 그때 내 가장 큰 소원은 '갖고 싶은 엽서를 마음껏 살 수 있으면...'이었던 것 같다. 이런 소박함이 한이 되어서일까,  몇 년 후 나는 여행지에서만큼은 돈을 아끼지 않는 직장인으로 성장해버렸다.


평소에는 잘 먹지도 않는 주전부리도 그 나라에서만 구할 수 있다고 하면 시간을 쪼개서라도 꼭 사러 가야 한다. 심지어 우리나라에 수입이 되어 들어오는 품목이더라도 현지 유통되는 게 분명 더 특별할 거라고 굳게 믿고 있기 때문에 부득불 캐리어 가득 쟁여온다. (평소 세계 과자점에서는 팀탐을 본 척도 안 하면서, 호주 갔을 때는 맛 별로 쓸어와 2년이 지난 아직까지도 안 뜯은 팀탐이 회사에 있다.)


간식은 시작일 뿐, 온갖 물건도 빠뜨릴 수 없다. 여행이 끝나고 영원할 것 같았던 행복과 삶에 대한 열정과 희망(!)은 출근하는 순간, 그러니까 매일 반복되는 정말의 '생활'로 돌아오는 순간 망각된다. 잊고 싶지 않아 글을 쓰고 사진을 찍지만 기록으로 남는 순간도 내가 기억하고 싶은 만큼에 비해서는 아주 일부일 뿐이다. 그래서 나는 쇼핑한다.(핑계가 좋)  


비록 여행의 추억은 기억 저편으로 멀어져 가더라도, 물건은 내 곁에 남아서 문득문득 그때 마음을 되살려준다. 때로는 '그래 이거 살 때 참 행복했지, 쓴 만큼 벌어야겠다(#피렌체에서 처음으로 지른 명품, 생 로랑 가방)' 라며 무리했던 지름을 반성하게도, '참 많이도 다녔다(#여마다 모은 마그넷들)' 하며 내 지나온 여행들을 추억하게도 만드는 것이다. 평범한 삶에 특별한 여행이 잠시나마 관여하는 기분, 재미없는 일상에 여행이 침투해 정신을 번쩍 일깨워주는 기분이 좋아 나는 오늘도 여행지에서의 쇼핑을 포기할 수가 없다.

그리하여 오늘은 그동안 내 캐리어를 무겁게 했던 내 욕심, 아니 추억의 물건들 중 이 것을 위해서라도 다시 여행을 가고 싶다! 정말 후회 없는 소비였다! 싶은 물건의 명예의 전당, BEST 5를 꼽아보고자 한다.

BEST 1. 몽골, GOBI 캐시미어 머플러, 코트
gobi의 organic라인(염색이 적게 들어감)

'기회만 되면 쓸어와야 한다'하는 마음 덕분에 물가가 저렴한 몽골에서도 돈을 쓰고 왔다. 그것도 꽤 많이. 몽골의 드넓은 땅을 여행하다 보면 유유자적 풀을 뜯고 있는 염소와 양을 쉽게 마주칠 수 있다. 유목을 주요 업으로 하는 나라다 보니 염소 털로 만든 캐시미어도 굉장히 유명한데, 그중 gobi와 goyo라는 브랜드가 디자인과 품질이 좋아 한국인들에게 인기가 많다. 나는 gobi에서 주로 탕진했는데  한국 gobi 사이트와 현지 가격 차이를 본 순간 머리 속에는 '이건 사야 해'라는 목소리가 들렸다.


한 가지 팁이 있다면 역시 어느 매장이든 마음에 드는 게 있으면 바로 사야 한다는 거다. 사이즈 맞는 코트만 한 벌 사도 몽골 비행기표값은 세이브될 정도다. (물론 안사면 0원) 첫날 몽골 국영백화점에서 맘에 쏙 드는 코트를 봤으나 투어 마지막 날 일정에 gobi 아웃렛이 있어 아웃렛이 저렴하지 않을까? 하고 참았다가 막상 아웃렛에는 해당 코트의 사이즈가 없어 다시 국영백화점에 헐레벌떡 돌아가 코트를 사 왔던 기억이 있다. 가격도 아웃렛이나 국영백화점이나 같았다.


한국에서 캐시미어 목도리 사려면 백화점 가판대에서도 6만 원 이상은 줘야 했던 걸로 기억하는데 gobi매장에서는 몽골산 100프로 캐시미어가 6+1 행사까지 하며 개별 가격도 더 저렴하니 어찌 안 살 수 있을까. 내 꺼, 엄마 꺼, 친구 꺼, 친구 남자 친구 꺼까지 야무지게 쓸어왔다.

BEST 2. 발리 우붓, 파인애플 나무 그릇
무슨 음식이든 잡지 사진처럼 세팅 가능하다

발리의 우붓은 목공 제품이 유명하다. 나무도마, 나무 그릇, 라탄 백까지 이국적인 소품들의 천국이다. 나는 시장에서 흥정하기보다 질 좋은 제품을 정가에 사고 싶어 bali teaky라는 정찰제 가게에서 나무 그릇 여러 개를 사 왔다. 인터넷을 보면 많이들 파인애플 도마를 사던데, 나는 요거트를 예쁘게 담아 먹고 싶어 그릇을 사 왔고 돌아와서 쏠쏠히 활용하고 있다. 발리에 또 가게 되면 모양별로 쟁여올 결심이다. 돼지 모양 도마, 두리안 모양 그릇 등 마음에 찜한 것들이 많다.

BEST 3. 태국 방콕, 점프 수트

방콕의 아시안 티크 뒷골목에서 무려 4년 전에 산 점프 수트는 아직도 내 동남아 여행 룩을 책임지고 있다. 쓱 하나만 주워 입으면 되니 이보다 간편할 수 없고, 입으면 '내가 바로 방콕의 힙스터'라는 근본 없는 자신감이 뿜어져 나온다. 꼭 사야 한다 싶은 유명한 아이템도 아니고 유명한 가게에서 산 것도 아닌데 이렇게 오랜 시간 애착을 갖게 되는 물건이 있는 것 같다. 어떤 물건이 이렇게 나와 깊은 인연을 맺게 될지 모르니 언제 어디서든 쇼핑을 소홀히 해서는 안된다.

BEST 4. 이탈리아 피렌체, 가죽 장갑
고급진 MADOVA

가죽이 유명한 피렌체, 그중 입소문이 가장 많이 난 MADOVA에서 첫 장갑을 샀다. 세상은 두 부류의 사람이 있다. 겨울에 장갑을 끼는 사람과 안 끼는 사람. 나는 이 장갑을 만나기 전까지 후자에 속했다. 어렸을 때 엄마가 사준 털실 장갑은 따뜻하지도 않고, 챙겨서 나가기도 귀찮고 늘 흘리고 다니기 일쑤였기 때문에 커서도 장갑을 끼자는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다. 그런데 유명하다는 MADOVA에 들러 그 부드러운 가죽에 내 손이 닿는 순간, 내 라이프 스타일은 바뀌었다. 찬 바람이 슬슬 불어오려고 하는 9월 말, 이 장갑과 겨울을 날 생각에 설렌다. 이 장갑과 함께라면 칼바람도 두렵지 않다.

BEST 5. 홍콩, 제니베이커리 쿠키
출처: 구글 이미지 검색(백화점에서도 이제 만날 수 있다)

먹거리는 정말 하나만 고르기가 어렵다. 나는 기본적으로 빵순이기 때문에 밀가루가 들어간 모든 건 시도해봐야 한다. (위에 주전부리를 잘 안 먹는다고 쓴 것 같은데 먹는 빈도가 적다고 애정이 작은 건 아닌 거다) 대만의 치더 펑리수, 홍콩의 제니베이커리 쿠키, 시드니의 pods, 이탈리아의 포켓커피, 필리핀의 오이시 스펀지 크런치, 싱가포르의 뱅가완솔로 쿠키 등 내 입을 거쳐간 수많은 스낵들이 떠오른다. 그래도 누군가 빵순이의 정성에 감읍해 평생 이 중 한 가지의 스낵을 무료로 제공한다면, 나는 장고 끝에 홍콩의 제니베이커리 쿠키를 꼽을 것이다. 부드러운 식감, 커피, 초코, 플레인 등 다양한 맛, 향수를 자극하는 귀여운 통까지 제니베이커리 쿠키는 완벽한 신의 창조물이다. 한국에서도 유사한 느낌의 수제 쿠키가 많이 나오고 있는데 내 생각에는 아직 오리지널을 따라잡은 건 없는 것 같다.


여행만큼 즐거운 게 여행지에서의 고삐 풀린 쇼핑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아니면 못 사, 사면 돈 버는 거야' 머릿속에 들리는 충동의 목소리와 못 이기는 척 그에 굴복하는 순간 역시 여행에서만 누릴 수 있는 또 다른 재미다. 카드값이 도래하는 달에는 가끔 후회하기도 하지만, 역시 지름이 있어야 벌 이유도 생기는 법, 오늘도 나는 여행지의 쇼핑리스트를 검색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고비사막에 대하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