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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세연 Oct 03. 2020

사랑의 확장

생애 첫 유기견 보호소 봉사활동을 마치며

유기견 보호소로 첫 봉사를 다녀왔다. 과거에 임시 보호할 강아지를 데리러 가끔 방문했던 곳이지만 봉사 목적으로는 첫 방문이었다. 방문이 성사된 것은 에너지가 넘치는 동생이 새로 시작한 프로젝트 덕분이었다. 신규 런칭하는 트립 플랫폼(에어비앤비 트립, 프립 등과 결이 유사한)과 협업해 ‘유기견 보호소 봉사 다녀오기’ 모임을 주최하게 된 것인데, 동생은 기존에 이미 봉사 경험이 있었던 데다가 마침 운전 실력을 길러 기동력도 확보한 결과 가능했다.


모르는 사람들과 모여 어딘가로 향하는 경험은 꽤나 오랜만이라 걱정이 되었다. 참여자라면 가벼운 마음으로 임할 수 있었을 텐데 동생이 주최자인 만큼 나도 잘 도와야겠다고 생각하니 슬쩍 부담감이 느껴졌다. 그 전날 동생은 초코바와 생수, 목장갑 등 봉사에 필요한 물품을 미리 사두고 경험을 기록하기 위한 촬영 장비를 점검하는 등 부지런을 떨었다. 나도 휴일 전날이지만 다음날 아침에 집을 나서야 하는 만큼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늘 간직하던 목표 ‘세상에 선한 영향력 전파하기’의
싹이 작게나마 움튼 광경을 목격한 거다.


그리고 당일 아침 9시, 픽업 장소에 차를 대놓고 기다리니 하나 둘 인원이 모이기 시작했다. 참여자 분들의 연령대와 직업은 정말 다양했는데,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모두 반려 동물을 키우는 입장이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한 분은 '거누파파네'와 '건우와 아이들' 유튜브를 보고 임시보호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어 본인도 직접 임시 보호를 시작했다는 놀라운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그동안 '이 경험을 영상으로 공유하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겠지?'라는 막연한 기대만 갖고 있었는데 그 기대가 현실이 된 것이다. ‘거누 파파네 덕에 임시보호 시작했어요.’라는 말을 듣자니 생각보다 기분이 아주 좋았다. 늘 간직하던 목표 ‘세상에 선한 영향력 전파하기’의 싹이 작게나마 움튼 광경을 목격한 거다.


보호소로 가는 내내 서로의 반려 동물에 대한 소개를 빙자한 자랑 타임이 이어졌다. 반려인들의 재미있고 귀여운 특징 한 가지를  발견했는데, 자기 반려 동물 사진을 보여줄 때는 턱 하고 아무 사진이나 보여주지 않는다는 거다. ‘엇, 잠시만요’ 하며 기필코 시간을 들여 인생 샷을 찾아 내민다. 내가 우리 건우를 남들에게 소개하기 위해 특별히 즐겨 찾기 해놓은 사진 목록이 있는 것과 같은 이치다. 암, 우리 새끼 사진은 최고의 것을 보여줘야지. 그래야 예쁨이 실물의 반의 반이라도 전해 진단 말이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봉사 장소에 도착했다. 보호소에 정기적으로 방문하는 봉사 단체 소속 봉사자분들도 계셨다. 이 봉사 단체는 오픈 톡방을 기반으로 활동한다고 한다. 유기견 보호소로 봉사를 가는 것이 접근성이 좋지 않다고 생각해왔는데 나의 찾아보려고 하는 노력이 부족했던 건 아닌가 돌아봤다. 혹여 나처럼 봉사를 하고자 하는데 루트를 몰랐던 사람을 위해 앞 서 소개한 동생이 진행하는 모임 링크를 남긴다. (https://mandam.co.kr/events/52)


봉사 중 초짜 티를 팍팍 내며 재활용 쓰레기를 어디에 버려야 하는지 여기저기 물어보자, 한 봉사자 분이 나를 안내해주셨다. 쓰레기장으로 가는 길에 잠시 나눈 대화를 옮긴다.


- 봉사자 : 혹시 강아지나 고양이 키우세요?
 - 나 : 네!! 강아지 키우고 있어요. 키우고 계세요?
 - 봉사자 : 오, 저는 고양이 한 마리, 강아지 한 마리 키우고 있어요. 종류가 뭐예요?
 - 나 : 잡종이에요. 되게 똑똑해요!(혹시 잡종이라고 무시당할까 봐 덧붙임)
 - 봉사자 : 우리 집 애들도 되게 똑똑해요. 원래 애들이 주인 닮는대요. 우리가 똑똑한 거예요.


나는 유기견 보호소에서 자신의 반려 동물에 대한
애정이 더 넓은 세계로 향하는 광경을 목격했다.


짧은 대화에서 웃음이 터졌다. 예쁜 우리 집 자식 자랑하고 싶은 팔불출의 마음이 여기도 있구나. (일석이조로 자기 자랑까지 가능함) 그리고 생각했다. 어쩜 봉사 장소에서 만난 모두가 하나 같이 반려인일까. 나는 유기견 보호소에서 자신의 반려 동물에 대한 애정이 더 넓은 세계로 향하는 광경을 목격했다.


나의 경우에는 현재 함께 살고 있는 건우가 정확히 이 보호소 출신이다. 동생과 함께 추석맞이 건우 조상님과 친구들 만나서 좋은 일하러 가자고 농담까지 한 참이다. 건우를 맞이하고 그가 함께하는 일상이 당연해지고도 가끔 생각했다, 아직 가족을 만나지 못한 아이들을, 사랑받을 자격이 충분한 아이들을, 우리가 입양을 결정하지 않았더라면 건우가 있었을지도 모르는 보호소를. 그리고 그 마음이 나와 동생을 보호소로 향하게 했다.


이 곳에서 만난 봉사자 분들도 그러했겠지. 내게 기쁨을 주는 이 아이를 사랑하는 만큼, 그가 열어준 새로운 세계에 대한 감동의 크기만큼, 그를 누리고 있지 못하는 정 반대의 여건의 아이들이 눈에 밟혔을 거다. 분명 가깝고 좁은 내 것에 대한 사랑으로 시작했는데, 사랑은 전염성이 커 종종 나도 모르는 새 멀리까지 뻗어 나가곤 한다. 이런 마음들이 세상의 온도를 조금이나마 올리는 거겠지. 봉사는 무척이나 고되었고 반나절 다녀왔을 뿐이지만 하루 종일 골골댔다. 하지만 내가 건우에게 받은 사랑을, 건우로 인해 발견한 내 안의 사랑을 조금이나마 세상에게 돌려주었다는 마음의 보람은 어디서도 얻을 수 없는 것일 테다.

 

좌 : 열심히 정리한 기부 물품 창고, 우 :  끝나지 않던 재활용 박스 더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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