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세연 Dec 01. 2020

금쪽같은 내 새끼 시절을 회상하며

이남옥 교수님의 '나의 다정하고 무례한 엄마'를 읽고

요새 ‘금쪽같은 내 새끼(이하 금쪽이)’ 를 틈날 때마다 유튜브에서 클립으로 보고 있다. 금쪽이는 아동 전문가 오은영 박사님과 패널들이 문제 행동을 하는 아이들과 그 부모님을 2~3주간 집중 치유하는 말하자면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 2탄이라고 보면 이해하기 쉽다. 나는 아이를 특별히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는 보통의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금쪽이를 보면서는 어찌나 눈물바람인지 같이 보는 친구들한테 민망할 정도다.


내 마음이 크게 요동치는 순간은 이렇다. 친구들만 보면 말이 안 나와서 자꾸 숨는 선택적 함구증을 앓는 금쪽이, 엄마의 배꼽에 집착해서 엄마를 힘들게 하는 금쪽이, 자꾸 소리 지르고  폭력적인 행동을 하는 금쪽이 등. 다양한 증상들이 있지만 증상 자체는 아이가 잘못되었다는 근거가 아니다. 결과만 보고 눈살을 찌푸리며 ‘아, 왜 저래.’라고 말하기는 얼마나 쉬운가. 그런데 하나하나 금쪽이들의 상황을 파고들고 마음을 들어보면 그게 아니다.


그냥 잘못된 아이들은 어디에도 없다. 엄마의 사랑을 조금 더 받고 싶어서, 많은 형제들 틈바구니에서 안전한 나만의 공간이 필요해서, 바깥이 아직은 조금 무서워서. 겉으로 보기에는 울퉁불퉁 모난 문제 행동 안에 연약한 마음이 숨어있다. 그런 걸 발견할 때마다 부모도 아닌데 내 마음이 무너진다. 더 알아주고 살펴봐줬음 얼마나 좋았을까 싶다. 그리고 오은영 박사님이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발견한 처방을 적용하자 훨씬 나아지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 내 마음이 다 환해진다.


사랑받고 이해받는다는 것이 한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은 얼마나 큰가. 금쪽이를 보면서 눈물 바람하고 있는 나도 한때는 금쪽같은 내 새끼였던 어린 시절을 지나왔다. 어쩌면 나는 금쪽이 프로그램을 보며 지금의 나를 보고 있는지 모른다. 많은 시간을 지나 어른이 되었지만 내 마음 한편엔 여전히 ‘사랑받고 싶은 마음’을 가진 아이가 있다. 인생이 때로 힘들 때, 관계가 어렵고, 내게 뭔가 문제가 있나 싶을 때, 금쪽이 프로그램과 더불어 내게 최근 큰 위로가 되어준 책이 있다.




바로 ‘나의 다정하고 무례한 엄마’다. 책읽아웃 팟캐스트에서 이 책의 저자 이남옥 교수님과의 인터뷰하는 편을 굉장히 인상 깊게 들어서 제목을 기억하고 있었다. 말투가 어찌나 상냥하시고 따스하신지 짧은 대담 속에서도 치유되는 듯한 기분이었다. 이런 분이 쓰신 책이라면 분명 따스할 거야, 라는 생각으로 책을 읽기 시작했고 역시 기대는 배신하지 않았다.

책은 성인이 되어서도 부모와의 잘못된 애착관계 형성 때문에 괴로워하는 사람들에 대해 다룬다. 가족은 참 어렵다. 태어나서 처음 만나는 타인. 물리적, 심리적으로 가장 가까울 수밖에 없는 필연적 관계. 사적인 공간이기에 들여다보기도 어렵고, 존재 자체가 당연했기 때문에 객관적 판단도 어렵다. 그리고 누군가는 그 안에서 상처를 안은 채로 어른이 되어간다. 그러나 내가 이 책에서 배운 건 이 가족은 이래서 잘못되었고, 저 행동은 이래서 나쁘다 라는 가치 판단이 아니었다. 어떤 상처를 받았던 당신은 당신이 받은 상처보다 큰 사람이라는 따스한 가르침이었다.

“상담을 통해 제가 발견한 저의 길은 ‘나는 상처 안에 숨겨진 아름다움을 찾는 사람’이란 것이었습니다. 가족이 가진 생명력, 생존 능력은 어마어마합니다. 어디까지 맞닿아 있는지 까마득합니다. 그 뿌리가 내게까지 올라와 면면이 이어진 것입니다. 현재 내가 가지고 있는 상처는 손톱 끝에 가시 정도입니다. 상처 입고 어쩔 줄 몰라 자신을 몰아세우고 힘들어하지만 가족으로부터 이어진 엄청난 능력을 갖고 있으면서도 그 능력을 알지 못해 상처만 보이는 것입니다.”




나의 어린 시절을 바라보는 관점에도 변화를 주었다. 나는 어렸을 적 아빠와 크게 싸운 기억, 무섭게 혼난 기억이 진하게 있어서 성인이 된 지금, 아빠와 잘 지내면서도 속으로는 거리감을 조금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아빠가 나한테 잘 못해서, 아빠가 나빠서’ 그렇다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책의 이 부분을 읽고 아빠를 이해하는 실마리의 시작을 얻었다.

“사랑이 일관적이지 않고 미성숙한 부모일지라도 대부분의 부모는 자녀에게 사랑을 줍니다. 자녀에게 주는 사랑은 본능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왜 돌아보면 이렇게 부정적인 생각만 떠오르는 걸까요? 어린아이는 아직 자신을 지킬 힘이 약합니다. 안전을 위협받으면 본능적으로 방어 기제를 만들어 경계 태세에 들어갑니다. 스스로를 지켜야 한다는 본능적인 반응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무의식적으로 우리의 뇌는 방어 기제를 만들 때 행복과 즐거움의 기억보다 불안과 두려움, 상처, 괴로움의 부정적인 기억에 더 예민한 촉수를 드리우는 것이죠.”

“방어벽을 높이 세운 무의식 아래에서는 부모에게 사랑받고 싶다는 간절한 바람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부모와의 따뜻하고 행복한 기억을 떠올리는 순간, 상처를 입고 위험에 빠진다는 두려움으로 그 마음을 쉽사리 드러낼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상처를 치유해줄 수 있는 그 소중한 기억을 무의식적으로 억누르고 억압합니다. 그렇게 우리의 마음은 부정적인 기억만을 남기고, 긍정적인 기억은 놓쳐버리고 맙니다.”

아빠와의 상처가 있었던 과거는 과거이다. 그때의 상처 받았던 어린 나도 나지만 지금 아빠와 즐겁게 잘 지내고 있는 어른의 나도 나다. 내 마음이 부정적 기억에 갇혀서 현재의 긍정적 순간들, 사랑받고 있는 순간들을 놓치지 않을 수 있도록 책은 조언해준다. 그렇다고 과거의 부정적 감정을 억누르라는 것이 아니다. 책은 나에게 떠오른 모든 감정을 존중할 것을 권한다. 서운했던 마음도, 고마운 마음도 다 존중해주어야 하는 내 소중한 감정이라는 것이다. 내 감정을 존중하다 보면 내가 소중해지며 긍정의 기억이 부정의 기억을 감싸는 날이 오고, 결국 과거의 기억이 다시 쓰이는 날도 온다고 한다.

내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때때로 눈물 글썽이며 읽은 책이다. ‘나는 사랑받을 가치가 있는 사람이다.’라는 당연하지만 소중한 진리를 우리는 종종 잊는다. 이 책은 가장 처음 맺는 관계인 가족을 통해 그 진리를 다시 한번 되새길 수 있게 도와준다. 가족과의 풀리지 않은 응어리가 있는 사람들, 내가 소중한 존재라는 걸 다시 되새기고 싶은 사람들이 꼭 이 책을 보고 소중한 자신을 한 번 더 안아줄 수 있게 되면 좋겠다.


작가의 이전글 사랑의 확장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