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세연 Jan 31. 2021

도움은 옹기종기 놓인 징검다리 같은 게 아닐까

첫 번째 임시보호, 다리가 세 개여도 문제없는 슈나우저 시리

“두 달 긴급 유기견 임시보호 구합니다! 두 달 후 캐나다 해외입양이 확정된 아이라 두 달 동안만 보호해줄 집이 필요해요. 다리 한쪽이 없어서 보호소에서 다른 친구들이랑 지내는 것이 힘듭니다. 두 달만 도와주세요”

평소와 같이 퇴근 후 침대에 누워 핸드폰을 하다가 우연히 발견한 인터넷 게시판의 글이었다. 두 달만 데리고 있으면 된다고? 강아지를? 호기심 반, 제목에 담긴 간절한 마음에 이끌리는 마음 반으로 글을 클릭했고, 그렇게 시리를 처음 보았다.

산책을 나가서 행복한 시리

많은 사람들이 그렇듯 나도 귀여운 동물들을 좋아했다. 귀염뽀짝한 아기 강아지, 고양이들의 짧은 동영상을 보며 웃기도 하고, 언젠가 나도 강아지를 키워야지 하고 지나가듯 가볍게 생각한 적도 많다. 그러나 이를 실행으로 옮기기에는 고려해야 하는 요소가 너무 많았다. 일단 함께 사는 가족의 동의가 필요했다. 어찌어찌 설득해 첫 번째 산을 넘었다고 해도, 다음은 더 근본적 문제가 기다리고 있었다. 바로 나의 ‘책임감’. 나는 누구보다 나를 믿을 수가 없었다. 인터넷에 넘쳐나는 귀여운 동물짤에서는 오줌이나 똥을 내 방 여기저기 갈기는 골칫거리도, 퇴근 후 죽을 만큼 피곤한 몸으로 나서야 하는 산책도, 현실의 문제라고는 털 끝 하나도 찾아볼 수 없었다.

나는 내가 귀여움과 사랑스러움 너머에 있는 문제들까지 책임질 수 있는 사람인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나를 책임지는 것도 간신히 하고 있는 내가 과연 다른 생명까지 책임질 수 있을까? 때문에 동생과 나눈 '강아지 데려올까?’ 하는 이야기의 결론은 매번 ‘나중에’로 끝나곤 했다. 그러나 이 게시글은 ‘입양’이 아니었다. ‘임시보호’였다. 고민의 답을 찾아볼 수 있는 좋은 기회 같았다. 강아지와 함께하는 삶이 어떤지 미리 경험해 볼 수 있고, 내가 과연 한 생명을 책임질그릇이 되는 사람인지도 짐작해 볼 수 있을 듯했다. 그리고 이렇게 머릿속의 계산기를 두드리는 내내 시리의 사연도 내 마음 한구석을 콩콩 두드렸다.

한쪽 다리가 없는 강아지라니, 어떤 사연이 있을까. 떠날 날도 얼마 안 남았는데 우리가 두 달간만 도와주면 어떨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서 이 강아지의 세상을 조금만 따스하게 바꿔주면 어떻게 될까.

잠깐의 고민 후, 결정은 순식간에 이루어졌다. 타이밍도 좋았다. 부모님이 일 때문에 집을 떠나 계신 상황이라 동생의 동의만 얻으면 되었다. 당장 동생의 침대로 달려가 ‘데리고 올까?’ 하고 물었고, 세화는 망설임 없이 ‘그래’라고 답했다. 둘 다 머리보다는 마음에 이끌려서 내린 결정이었다. 우리는 까만 눈을 하고 뭉툭한 한쪽 앞다리에 붕대를 칭칭 감은 시리가 궁금했다.
  
우리가 결정했다고 시리를 당장 데려올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시리는 ‘행동하는 동물 사랑’이라는 유기견 보호 단체에서 보호하고 있는 개였다. 도움이 필요한 강아지라고 해서 아무에게나 보내지는 않는다. 버려진 기억이 있는 강아지인 만큼 더 잘 돌봐줄 수 있는 환경을 찾기 위해 단체에서는 최선을 다한다. 자체 임시 보호 신청서에도 그러한 노력의 흔적이 드러난다. 가족 구성원, 거주지 관련 질문, 보호자가 집에 있는 평균 시간, 집을 비울 경우 반려동물을 어떻게 할 것인지 등 영역별로 꼼꼼한 질문 사항들이 있다. 이렇게 신청서를 작성하고 스텝 분과 짧은 전화 인터뷰를 거치면 신청이 완료된다.

호기롭게 신청했지만 사람만 살던 집에 반려 동물을 맞을 준비가 되어 있을 리 없었다. 당장 먹일 사료도 한 통 없었다. 두 달간의 임시 보호를 위해서는 많은 강아지 용품을 사기에는 부담이 되어 고민하던 중, 세화가 아이디어를 냈다. 살고 있는 아파트의 온라인 커뮤니티가 활성화되어 있는 편인데, 한번 거기에 도움을 청해보자는 것이었다. 설마 생판 모르는 사람을 도와줄까? 하는 반신반의하는 마음이 먼저 들었지만 지푸라기라도 잡아야 하는 상황이니 시도해 보기로 했다.

그리고 결과는? 놀라웠다. 생판 모르는 사람, 전혀 모르는 개를 위해서 이웃들은 기꺼이 자신의 물건들을 나누었다. 어떤 이웃은 기르던 강아지가 무지개다리를 건너 더 이상 쓸 수 없게 되었다며 한눈에 봐도 크고 푹신해 보이는 강아지용 마약 방석을 나누어 주셨고, 한 이웃은 자신의 강아지가 좋아하는 것인데 입에 맞을지 모르겠다며 사료와 간식을 나누어 주셨다. ‘좋은 일을 해주셔서 감사하다.’는 수많은 응원과 격려도 함께 따라왔다. 특히 기억에 남는 건 ‘용기 내서 행동해 주셔서 감사하다.’는 감사 인사였다.

나눔 받은 마약방석에 누워있는 시리

기대하지 않던 호의를 만나니 마음이 순식간에 따끈해졌다. 시리를 돕고 싶어 하는 마음은 더 이상 혼자가 아니었다. 내 뒤에는 수많은 따스한 눈길과 도움의 손길이 있었다. 연결되고 커지는 따스함. ‘도움은 어쩌면 옹기종기 놓인 징검다리 같은 게 아닐까.’ 생각했다. 길거리에 버려진 시리를 다시 험난한 강 건너 평생 가족의 품으로 돌려보내기 위해 여러 사람들이 하나하나 징검돌을 놓고 있는 거다. 첫 번째 돌은 시리를 추운 길바닥에서 구조해준 동물보호단체 행동사가, 두 번째 돌은 시리를 임시 보호하기로 결정한 나와 동생이, 세 번째 돌은 시리를 돕고 싶어 하는 수많은 랜선 이모들이. 이렇게 많은 사람들의 도움으로 징검다리가 완성되면 시리는 분명 누구보다 튼튼한 세 다리로 씩씩하게 돌다리를 건너 평생 가족을 찾아갈 수 있겠지.

시리를 만날 준비를 하며 내 세상은 벌써 5도 정도 따뜻해졌다. 앞으로 시리와 함께할 날들은 또 어떻게 내 세상을 바꿔놓을까. 나도 시리의 세상을 못지않게 따스하게 해 주어야지. 불끈 솟은 다짐과 기대를 가지고 우리는 시리와의 만남을 준비하고 있었다.

산책가면 늘 웃는 시리


작가의 이전글 금쪽같은 내 새끼 시절을 회상하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