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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세연 Nov 19. 2022

[예비신부의 단상]까르띠에와 샤넬 사이에서 깨달은 것

결혼 준비 중 찾아오는 '인생에 한번뿐인데 병'을 아시나요?  

모든 예비부부가 겪고 마는 병, '인생에 한번뿐인데'병. 그 병은 한 번 걸리면 치유에 꽤나 오랜 시간이 걸린다. 주요 감염 경로는 결혼 준비 카페, 인스타 등 동년배들의 결혼 준비를 엿볼 수 있는 온라인 창구. '서프라이즈 프러포즈 선물'로 예랑이가 준비한 디올 백, 시어머니께서 '좋은 거 하나 선물 주고 싶으시다며' 턱 내미신 샤넬백 등 다양한 온라인 동년배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어느새 병의 초기 증상이 발현되기 시작한다. 마음속에 물음표가 찍히는 것이다. '나는?'


우리 커플은 분명 예물, 예단을 생략하고 우리 힘으로 결혼 준비를 하기로 했기에, 선물은 주고받지 않는 것으로 암묵적 합의를 이뤘다. 그런데 비극적 이게도 예비 신부가 '인생에 한번뿐인데 병'에 걸려버리는 바람에, 이 합의가 장렬히 결렬되고 만 것이다.'인생에 한 번뿐인 결혼인데, 나도 기념할 만한 물건을 갖고 싶어'(=샤넬백이 갖고 싶어)라는 예비 신부의 생각은 언뜻 보면 끄덕여지기도, 요모조모 뜯어보면 반박할 말이 떠오르기도 했다. 결코 남들(또는 예비 신랑)이 예비 신부의 생각에 반기를 들었다는 게 아니다. 예비 신부는 다른 누구도 아닌 자기 자신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다.


결혼 준비와 동시에 경제 공동체가 되었기에, 이 지출은 결국 '선물'의 탈을 썼지만, 함께 갚을 '빚'으로 돌아올 게 분명했다. '돈 들어갈 일이 제일 많은 지금, 인생에 한 번 뿐이라는 허울 좋은 말과 내 기분에 이끌려 명품을 사는 게 맞는가?' 질문은 던져졌고 답은 하루에도 수십 번씩 바뀌었다. '아휴 무슨 명품이야. 차라리 집에 보태', '아니 지금 못 사면, 뭐 결혼하면 하늘에서 돈이 뚝 떨어져서 살 수 있을까?' 사이를 뺑뺑이 돌며 나는 스스로를 괴롭혔다. 그리고 결과는?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라는 영화 제목이 떠오른다. 당시 나는 결국 허울 좋은 말과 내 기분에 졌다. 아니, '졌다'라는 표현에는 어폐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적어도 그때의 나에게는 그게 정답이었고, 결국 원하던 물건을 샀을 때는 무진장 행복했으니까.


이제 그다음 질문은 '그리하여 무엇을 살 것인가'. 예산만 충분하다면야 어느새 온갖 sns에서 예물의 대명사로 여겨지게 된 '샤넬백'이 그리도 갖고 싶었더랬다. 그렇지만 한 해 동안에만 200%의 가격을 인상한, 그 콧대 높은 브랜드는 어느새 과거에 알던 가격에서 0이 하나 더 붙어버렸고, 제 아무리 '인생에 한 번뿐' 병에 걸린 예비 신부도 차마 제 고집만 부릴 수는 없었다. 마음속으로 '샤넬백'을 포기하는 순간, 왠지 모를 '억울함'이 스쳐 지나갔다. 뭐가 그렇게 억울했을까. 남들은 떡하니 잘만 사는 것 같은데, 왜 나는 이 거 하나 배짱 있게 지르지 못하는지, 이런 내가 싫고, 나를 이렇게 만든 현실이 싫고. 한탄을 하자니 글은 길어만 진다. 그런데 다시 한번만 생각해보자. 이게 정말 억울할 일인가.


비슷한 고민을 나보다 조금 앞서 한 유부 친구가 해 준 이야기가 있다. 결혼을 준비 중이던 친구는 예물의 세계를 헤매며 각양각색의 고민을 거친 끝에 디올 백을 사기로 드디어 마음을 먹는다. 디올 백을 사러 위풍당당하게 백화점으로 향한 날, 합리적 소비자로서, 최저 가격에 물건을 사고자, 근방의 atm기에서 현금을 뽑아 백화점 상품권을 할인 가격으로 구매해 물건 값을 지불하기로 한다. 그런데 하필 그날따라 atm기가 말썽이었고, 돈을 인출하는데 평소에는 3분이면 될 것을, 30분이 넘게 걸린 것이다. 디올 백을 사기 위해, 퇴근 후 힘든 몸을 이끌고 30분 동안 atm기계 앞에서 가만히 기다리며, 친구는 생각했다. '이게 웬 고생이냐. 고작 10여만 원을 할인받기 위해 이게 할 짓이냐.' 생각은 좀 더 뻗어나간다. '고작 10여만 원을 할인받는데 목숨을 거는 나는, 디올 백과 어울리지 않는 게 아닌가, 내가 이걸 사는 게 맞나?' 결국 atm기는 복구되었고, 친구는 바라던 대로 최저가에 디올 백을 샀다. 그렇지만 atm기 앞에서 했던 고민은 친구에게 오래도록 기억되었고, 그 이야기를 들은 내 마음에도 파장을 일으켰다.


다시 샤넬백을 사지 못한 내 억울함을 파헤쳐 보자. 샤넬백을 사지 못해 억울한 마음이 든다면, 샤넬백과 어울리지 않는 것이다. 내가 사려고 했던 물건은 내 소비 패턴과 라이프 스타일과 맞지 않았기에 사지 못한 것이고, 거기에는 억울함이 끼어들 자리가 없다. 애초에 내가 사려고 했던 것은 '샤넬백이 아니라, 내키는 대로 샤넬백을 살 수 있는 재력'이지 않았을까? 나는 아직 그런 사람이 아니니 샤넬백을 못(안) 산 거다. 언젠가 내가 그런 사람이 된다면 한치의 억울함과 망설임 없이 깨끗한 마음으로 샤넬백을 구매하면 될 일이다.


결국, 우여곡절을 거쳐 내가 선택한 물건은 '까르띠에'의 '탱크 머스트'라는 모델명의 시계였다. 좋은 시계 하나쯤은 갖고 싶었고, 마침 그게 결혼을 기념한 선물이라니 의미가 깊어 참 마음에 든다. 자주 착용도 하고 있고 지금도 내 방 가장 좋은 자리에 고이 모셔져 있다. 시계를 볼 때마다 내 투명한 욕망을 거리낌 없이 받아들여주고, 좋은 선물을 해준 예비 신랑에게도 고마운 마음이 새록새록 솟아난다.


하지만 시계를 사기까지의 고민은 분명 내 마음속에 중요한 의문을 남겼다. '이게 정말 내가 원한 걸까?''인생에 한번뿐이니까' 해야 하는 소비는 없다. 남들이 다 사니까, 나도 사야 하는 건 아니다. 나중에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는 내 욕망이 어디서 탄생했는지 잘 관찰해야 한다. 이제 분명히 보인다. 나의 욕망은 결혼을 준비하는 동년배들과의 비교에서 탄생했다. 이 깨달음을 통해 나는 결혼 준비 과정에서 자꾸 재발하는 '인생에 한 번뿐인데' 병을 경계할 수 있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까르띠에 시계 값으로 시계는 물론이고 인생의 깨달음을 함께 얻었으니 잃은 것 보다야 얻은 게 많은 소비라고 애써 포장해 본다. 금리는 올라가고 자금 압박은 심해지는 요즘, 까르띠에 시계는 오늘도 내 손목에서 반짝반짝 복잡하게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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