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가 소강상태로 접어든 덕에 처음으로 ‘함께’ 떠난 해외여행이었다. 일본 후쿠오카로 여행지를 정한 후, 설레는 마음으로 꼭 할 것들, 먹어볼 것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꼭 사 올 것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분명 평소에는 물욕이 없는 편인데, 이상하게 여행만 가면 사람이 홱 바뀐 것처럼 뭐든지 사들이곤 했다. 충분히 세계화된 한국 사회를 살고 있어 웬만한 해외 브랜드들은 마트나 백화점에서 만나볼 수 있고, 혹여나 모자라면 해외직구로도 손쉽게 만나볼 수 있는데도, 나는 속절없이 00 지역에서만 파는 것, 00 지역에서 더 싼 것, 00 지역 쇼핑리스트에 무너지곤 했다.
‘이건 쓸데없는 쇼핑이 아냐, 돈 낭비도 아니지. 여행이 희미해질 때쯤, 생활에서 여행지의 흔적을 발견하는, 이를테면 보물찾기 같은 거지. 눈이 건조하면 일본에서 사 온 안약을 넣고, 추우면 이탈리아에서 사 온 가죽장갑을 끼는 거야. 이렇게 여행지를 불러오는 물건이 내 일상에 존재하는 한, 난 여전히 여행자라고.’
여행지에서만큼은 맥시멀 리스트가 되는 이유를 멋들어지게 설명할 수 있는 개똥철학도 갈고닦아 두었다.
후쿠오카를 인터넷 초록창에 검색하자, 사 와야 할 것들이 그렇게 많을 수 없었다. 화장품, 옷, 술, 과자. 쇼핑의 성지로 불리는 24시간 문을 여는 잡화점 ‘돈키호테’는 우리 숙소와 단 5분 거리. 나는 칼을 갈고 내 반신보다 큰 28인치 캐리어를 끌고 집을 나섰다. ‘이 캐리어를 전부 일본 여행의 추억으로 채워오리라.’
첫날은 괜찮았다. 백화점, 지하상가, 편의점, 쇼핑몰로 이어지는 쇼핑 강행군으로 인해 2만 보를 넘게 걸었지만, 낯선 곳을 탐방하는 흥분이 모든 것을 덮었다. 문제는 둘째 날이었다. 계속해서 이어지는 쇼핑에 남자 친구는 점점 말을 잃어갔다. 호텔로 복귀하기 전, ‘딱 한 군데만 더’라는 명목으로 들른 잡화점에서 세금을 환급받기 위해 한참 줄을 서고, 설상가상 추적추적 떨어지는 밤비를 맞으며 11시에야 방에 돌아온 후, 그는 조용히 폭발했다.
“오빠 오늘 힘들었지?” 다정하게 말을 붙여보아도 대화는 툭툭 끊겼다. 원하는 대로 두 손 무겁게 복귀했지만, 정작 내 여행 짝꿍의 입이 이렇게 무거워지길 바란 건 아니었는데, 뭔가 잘못되었다는 직감이 들었다. 일본의 밤을 즐기러 이자카야도 가고 싶었고, 쇼핑한 걸 풀어보며 찬찬히 들여다도 보고 싶었는데, 여행 짝꿍의 기분이 이래서야 모든 계획은 일단 보류다.
당황스러운 마음은 첫 번째, 조용히 있다 보니 억울한 마음도 슬며시 고개를 들었다. 그래도 내가 그렇게 잘못한 건 아닌 것 같은데, 오늘이 아니면 갈 시간이 없어서 무리하게 계획을 짠 거고, 계획 짤 때는 분명 나한테 일임한다고 했는데. 이럴 거면 왜 그렇게 말한 거야? 생각이 꼬리를 물고 미안함보다 억울함이 커질락 말락 할 때, 아주 긴 샤워를 마친 짝꿍이 돌아왔다.
뜨끈한 목욕탕에 몸을 담그고 오더니 굳은 마음이 조금은 말랑해졌는지, 먼저 다가와 말을 건넨다. 그리고서 하는 말. “앞으로는 여행에서 쇼핑보다는 경험에 초점을 맞추면 더 좋을 것 같아. 나는 오늘 너무 힘들었어.” 쇼핑을 다닐 때는 내 눈치를 보며 한 마디도 불평을 꺼내지 못하다가, 체력의 한계를 마주하고 조용히 터져버린 남자 친구. 이렇게 생각을 정리해서 말하기까지 혼자서 얼마나 고민했는지 알기 때문에 먼저 말을 붙여준 것에 고마웠다.
그런데, 돌아보니 뭘 잔뜩 사긴 했지만 나도 쇼핑이 마냥 즐겁지만은 않았다. 자고로 쇼핑이 즐거우려면 쇼핑메이트의 적절한 호들갑(어머 이거 꼭 사야 해), 같은 수준의 열정(와 이거 내가 꼭 사고 싶었던 건데!)이 필요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소울메이트로 믿었던 내 짝꿍은 알고 보니, 쇼핑에는 영 취미가 없으셨던 거다. 나는 일본에서 아기자기한 신혼살림이라던지, 커플 티를 고르는 쇼핑 데이트를 기대했지만 그건 고이 접어둘 수밖에 없게 되었다.
소울메이트여도 쇼핑메이트는 아닐 수 있지. 어쩔 수 없는 건 그대로 두는 수밖에 없다. ‘여행지의 쇼핑은 여행을 생활로 끌어들이는 효과가 있다’는 내 개똥철학이 있는 것처럼 남자 친구도 ‘쇼핑보다는 경험이 중요하다’는 그만의 철학이 있는 거다. 한차례의 쇼핑 대첩이 있고 나서 우리는 ‘결혼 후의 우리’에 대해 긴 대화를 나눴다.
결론은 ‘결혼하고서도 모든 시간을 애써 함께 보낼 필요는 없다는 것. 다만 서로가 사랑하는 영역에 대해 무한한 존중을 보내도록 노력할 것.’ 내가 열광하는 모든 것에 상대가 열광한다면 더없이 좋겠지. 하지만 상대가 열광하지 않더라도 슬퍼하지는 말자. 열광 다음으로 얻을 수 있는 최선의 것은 ‘존중’이니까. 상대의 영역을 존중하다가 어느새 스며들지도 모르는 거니 미래는 예단하지 말자. 언젠가 미래의 내 남편은 쇼핑하러 후쿠오카에 가자고 나를 졸라댈지도 모르는 거니까. 정말이지 미래의 일은 아무도 모르는 거니까. 그러니까 그날까지 우리, ‘모든 시간을 함께하지는’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