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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염전씨 Jan 28. 2024

시애틀을 사랑해주세요

2024년에는 미국 서부여행에 시애틀을 1박 2일 포함해주시길 요청

살면서 처음 시애틀에 온 것이 2021년 12월이었는데, 시애틀의 겨울은 날씨가 안 좋기로 악명이 높지만 그때는 하필 또 유독 날씨가 안 좋은 12월이었어서 “나 정말 여기서 살 수 있나” 걱정했었습니다. 실제로 이사를 온 것은 2022년 2월이었으니 이제 곧 여기에서 살게 된 지도 만으로 2년이 되어갑니다. 그 누구보다도 시애틀을 좋아하고 싶었습니다. 한국에서 사랑하던 많은 것들을 뒤로하기로 결정하고 온 것이었으니, 정확히는 시애틀을 좋아하지 않으면 스스로를 용서할 수 없었다는 것이 맞는 표현입니다. 그렇지만 얄궂게도 무언가를 사랑하기를 간절히 바라면 안 좋은 점이 오히려 더 또렷하게 보이기 마련입니다. 저는 회사 덕분에/때문에 여기에 오게 되었으니 회사가 마음에 들지 않을 때마다 이 도시 역시 비례하여 싫어지기도 하였고, 시애틀을 싫어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괜히 내가 여기 말고 미국 다른 도시를 갔어야 했나 생각해 보게 되기도 하였습니다. 특히 한 동안 한국에서 알게 된 친구와 함께 살았는데, 그 친구가 시애틀을 꽤나 싫어했어서 거기에 영향을 받기도 한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다행히도 여기서 사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저는 시애틀이 더 좋아집니다. 날씨 때문에 가장 많은 오해를 받는 이 도시의 아름다운 모습들을 많은 분들과 나누고 싶습니다. 이번 편에서는 제가 시애틀에 대해서 특히 사랑하는 점을 꼽아보겠습니다.


시애틀에서는 구름이 아주 낮게 깔립니다. 여러 빛으로 층층이 덮인 것처럼 깔리는데, 미술관에서 보던 풍경화들 같습니다. 아무것도 없는 것 같은 하얀색, 그림판에 뿌려놓은 하늘색이기도, 보고 있으면 괜히 하염없이 우울해지는 물빛 같은 하늘이기도, 거짓말 같은 분홍색 하늘이기도, 탈 것 같은 빨간색 하늘이기도 합니다.


미국 북서부 지역을 PNW (Pacific North West)라고 부르는데요, 여기에 시애틀, 포틀랜드, 캐나다 밴쿠버 같은 지역들이 포함됩니다. 저는 이 지역의 침엽수림이 백미라고 생각합니다. 빌딩이 이루는 스카이라인 대신 키가 크고 뾰족한 나무들이 하늘과 땅 사이의 펜스가 되는 것이 아주 절묘하죠. 특히 여름이 되면 활엽수 잎들이 어우러져서 훨씬 더 초록의 색이 다양해져요. 늦가을에 단풍이 들 때면 늘 짙은 초록색인 침엽수들 사이로 알록달록한 색들이 더해져서 거짓말 같이 아름답습니다.

시애틀을 중간으로 가로지르는, 바다로 이어지는 큰 강 Lake Union 이 있습니다. 다운타운과 북부 동네를 잇는 4개의 작은 다리들이 있고 하나하나 다 가슴 저릿하도록 아름답습니다. 발라드 브릿지, 프리몬트 브릿지, 유니버시티 브릿지, 몬트레이크 브릿지가 있습니다. 저의 최애는 유니버시티 브릿지입니다. 보통 테니스를 치러 오갈 때 이 다리를 건넙니다. 이것이 최애인 이유는 테니스 치러 갈 때에는 앞으로 남은 멋진 트레일이 기대돼서, 돌아올 때에는 트레일이 멋지기는 하지만 30분을 내내 자전거를 타도 15분을 더 타야 한다는 사실에 지치는 시점에 입을 틀어막게 되는 광경이 펼쳐지기 때문입니다. 큰 국도로 이어지는 오로라 브릿지와 반짝이는 강을 보면 한 시간은 자전거를 더 탈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시애틀을 사진 딱 한 장으로만 소개해야 한다면 이 다리 위에서 보이는 풍경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Lake Union을 따라가는 트레일은 커피 한 잔 사서 걸으며 도시의 아름다움을 즐기기에도, 자전거를 타기에도 아주 아주 좋습니다. 특히 아마존 오피스가 있는 South Lake Union에서 이어지는 Ship Canal Trail 은 가을에 정말 맥이 탁 풀릴 정도로 아름답습니다.

자연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아니더라도 시애틀은 신기한 도시의 면모를 보여주기도 합니다. 사람들은 vandalism이라고 싫어하지만 저는 희한하게 그라피티가 좀 멋있다고 생각합니다. Capitol Hill로 걸어가면 예술 같기도 테러인 것 같기도 한 그라피티들이 모든 골목을 채우고 있습니다. 실제로 도시에서 진행하는 벽화와 그렇지 않은 것들이 섞여있을 것입니다. 진짜 돌아이 같은 가게들이 많은데요, 그 어느 곳보다 정치적으로 진보적이고 자유분방한 시애틀의 모습을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한 편으로는 시애틀 사람들의 아기자기한 면도 많이 보이는 곳입니다. 바닥을 보면 타일을 쪼개어 예쁘게 장식해 놓은 것들을 곳곳에서 볼 수 있습니다.

관광지로 유명한 Pike place market에서 좀 더 걸어서 내려오면 Pioneer square 가 있습니다. 구시가지라고 생각하시면 되는데, 1900년대부터 있었던 건물을 그대로 보존해서 외관이 상당히 독특합니다. 한 번은 1900년에 교회로 세워져서 한 때 펍이었다가 지금은 서점인 곳을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지금 서점인 채로도 정말 멋진데 여기가 교회일 때는, 펍이었을 때는 어땠을까 생각하면 재미있더라고요. 이런 곳이 한 둘이 아닙니다.

거기에서 조금 더 걸어서 내려오면 International district라고 쓰고 차이나타운이라고 부르는 곳이 나옵니다. 여기는 치안이 좋지 않은 곳이기 때문에 자전거를 타고 휘리릭 지나서 차이나타운 문이 있는 곳까지 오시기를 권합니다. 여하튼 여기에 오시면 중국인 가족들과 탁구를 칠 수 있습니다. 녹음으로 가득 찬 계절에 빨간색 차이나타운 문 옆에서 영어를 거의 못하는 중국인들과 탁구를 치는 건 꽤 재미있는 경험이었습니다.



시애틀은 모두의 눈을 사로잡는 랜드마크가 많거나 트렌드를 선도하는 도시는 아닙니다. 사실 지루하다고도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여기서 사는 저에게도 많은 경우 아마존과 마이크로소프트로 가득 찬 도시라고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오래 들여다보면 안 예쁜 구석이 없는 곳이에요. 제가 보는 시애틀의 아름다움, 하루 이틀이라도 시애틀에 오시는 분들이 참고하실 만한 제가 좋아하는 곳을 이 시리즈에서 나눠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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