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브 몬스터>를 읽고... 왕스포주의
2025년, 연애는 종교에 가깝다. 지자체가 결혼을 장려한다며 세금으로 “짝짓기 프로그램”을 열고, 수영장이나 합숙 캠프를 연다. 사람들은 끊임없이 연애 리얼리티를 소비한다. 나 역시 사랑에 미친 여자이지만, 정말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연애에 미친 것 같다는 생각을 종종한다. 컨텐츠 세상에서도 여성중심 어쩌구저쩌구 서사가 세상을 지배했다가 우리는 모두 피로해진걸까? 모두가 다 같이 약속이나 한 듯, 당연히 그 이전보다는 나아졌지만 '정상성'으로 꽉찬 플롯들로 돌아왔다. 나 역시 여성연대서사는 덮어놓고 지지하는 사람이지만 솔직히 컨텐츠 소비자로서 지치는 감이 있었다. 그런데! <러브 몬스터>는 정말 재미있게 오랜만에 앉은 자리에서 다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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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사랑을 신앙처럼 믿고 강요하는 사회를 배경으로 펼쳐진다. 전통적 종교가 쇠퇴한 자리를, 이제는 “연애 인프라”와 “짝짓기 시장”이 대신 차지한다. 지방 소도시에서는 지자체 주관 소개팅이 열리고 수영장에는 미혼반이 설립되고, 사람들은 “사랑하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다”는 전제 아래 끊임없이 그곳으로 몰려든다. 이 수영장을 배경으로 여러 인물들의 이야기가 교차한다.
허인회: 짧똥한 여성. 결혼 헬퍼를 하며 열심히 살았다. 정작 본인은 남편 오진홍의 바람으로 괴롭게 지낸다. 내연녀인 염보라를 찾기 위해 수영장에 등록. 수영강사 조우경의 팬클럽 회장 같은 역할을 한다. 평생을 가난과 폭력, 결핍 속에서 살아온 여성. 사랑을 통해 안전, 인정, 소속 같은 모든 소망을 충족시키려 하지만, 결국 사랑은 쓰레기차처럼 그녀의 욕망을 흡수해 아무것도 남기지 않는다. 평생 사랑에 배신 당한 탓에 두려움과 고통 속에서만 사랑을 느낀다.
염보라: 예쁘지만 가진 게 없는 이혼녀. 남자에 미친 여자이다. 허인회의 남편 오진홍과 결혼하고자 애쓰지만 암에 걸려 그에게 버림 받는다. 인회와 서로를 미워하고 경멸하지만, 사실은 같은 사회적 굴레 속에서 다른 얼굴로 살아가는 동전의 양면이다.
엄지민: 염보라의 딸. 엄마를 찾기 위해 수영장에 등록한다. 사람을 좋아하면서도 늘 반쯤은 마음을 닫는 인물. 태이라는 아이의 뜨거운 호의를 거부하고, 투명인간처럼 사라지기를 택한다. 그러나 동시에 그 따뜻한 자리와 노란 전기를 그리워하며, 사랑의 부재와 가능성 사이에서 흔들린다. 원하는 것은 그저 하나. 엄마와 함께 둘이서 사는 것.
조우경: 이 수영장의 수영강사. 사이비 종교의 차기 교주가 되고자 한다. 겉으로는 여자들을 조종하는 매혹적인 바람둥이지만, 내면은 끊임없이 허기져 있는 인물.
이들 곁에는 또 다른 오름교회의 여자들이 있다. 종말을 믿고 수영장에 모여든 마흔 명의 여성들. 헤엄치며 몸을 단련하고, 휴거를 기다리지만, 스스로도 “우리는 결코 선택받지 못한다”는 걸 안다. 그리고 끝내 모든 기대를 버린 순간 이들 모두는 기적을 맞이한다.
<러브몬스터> 속 세상은 블랙코미디 같지만 너무나 현실 반영을 제대로 해서 웃길 정도이다. 이 사회는 사랑을 해야만 생존이 가능하다고 믿는 거대한 교회 같다. 나 역시 이런 사회 분위기 속에서, 짝이 없으면 낙오한 것처럼 느끼고, 사랑하지 않으면 불완전한 존재가 되는 듯한 시선을 많이 받으며 살아왔다. 친구들이 "너에게도 좋은 짝이 생겼으면"이라고 말하는 게, 무슨 뜻인지 알겠어서 고맙지만 한켠으로는 어딘지 불편한 이유이다. 그래서 책이 더 웃기고, 더 무섭고, 더 섬뜩했다.
이 작가는 연애와 사랑에 대해서 죽도록 파고든다. 허인회와 염보라는 서로를 경멸하고 무시하면서도, 사실은 같은 사회 구조 속에서 살아가는 동전의 양면이었다. ‘못생긴 여자’와 ‘예쁜 여자’라는 다른 위치에서, 똑같이 사랑에 착취당하는 존재로 그려졌다. 인회는 자신의 삶이 늘 옷이 없어서 버려진 자루를 뒤집어쓰기에 급급한 삶이었다고 회상한다. 한번 옷을 잃고 나면 자신에게 맞는 옷을 되찾기가 쉽지 않아서 포대 따위에 연연하게 된다. 그저 배가 고픈 사람이 된다. 검은 산을 헤매는 사람이 된다. 사랑에, 아니 사랑의 진위에 왜 그렇게 집착하느냐고 묻는다면 사랑을 하고 사랑받는 사람은 그렇게 아무 포대나 걸치지 않아도 될 거라는 막연한 믿음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염보라는 "나같이 예쁜 여자를 주변에서 얼마나 물어뜯고 추락시키려고 하는지. 오진홍 같은 놈이라도 남자가 있어야 그나마 버틸 수 있다고 생각했어"라고 말한다. 딸 지민이 회상하는 엄마 염보라는 그냥 남자에 미친 여자였지만, 그리고 자신의 남자친구가 딸 지민을 느끼한 눈으로 쳐다보면 지민을 질투하는 그런 종류의 여자였지만, 사실은 아빠가 있는 가정이라는 정상성을 너무나도 지민에게 선물하고 싶었을 뿐이었다. 그들은 미친듯이 사랑이라는 종교를 좇는, 그렇지만 그것에 한없이 착취당하고 버려지는 여자라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었다.
오름교회 교주를 제외하고 이 책에 등장하는 전원은 사랑을 종교처럼 믿지만 모두 그 사랑에 착취당해온 사람들이다. 악역인 조우경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들의 '허기'를 계속 작가가 논하는 것이 재미있었다. 그들은 모두 절절히 굶주려있었다. 조우경이 착취당하던 연애를 서술하면서, "어쩐지 자신이 먹이사슬 피라미드에 갇힌 최하위 생명체가 된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러나 연애를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다. 행복한 연애는 아니었지만 그것을 하고 있다는 안도감을 포기할 수 없었다"라는 문장이 나오는데 이 안도감이라는 것에 나는 절절히 공감했다.
한편 인회는 사랑이라는 말에 자신이 품었던 소망들을 넣었다. 안전해지고 싶은 욕구라든가, 작고 보잘것없는 사람이고 싶지 않다는 갈망, 따뜻함을 주고받고 싶은 마음, 있는 그대로 인정받고 싶다는 내밀한 기대, 사회 체제 안으로 무사히 편입되고자 하는 욕망, 아름다운 것들을 소유하고 싶은 그런 바람들. 그녀에게 사랑은, 무언가가 되고자 몸부림쳤으나 되지 못한 채 버려진 모든 것들을 흡수하고 분쇄해서 하나의 거대한 쓰레기로 만들어버리는 쓰레기차가 되어버렸다. 두려움과 수치심과 분노와 슬픔과 한 인간으로서 성장하고 싶었던 어떤 바람들이, 무언가가 되고자 했던 소망이 사랑이라는 말에 전부 흡수되었다. 그리하여 만들어진 거대한 쓰레기 산, 모든 것을 담은 것은 결국 아무것도 아니다.
내 연애 안에도 늘 허기, 연애 중이라는 사실에서 오는 안도감, 여러 욕망이 분쇄되어 결국 사랑이란 덮개를 쓴 알수없는 어떤 덩어리가 되었던 때가 언제나 있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책 속에서 수영장이 교회가 되는 설정은 나에게 특히 진하게 다가왔다. 나의 할머니들 때문이다. 나는 독실한 천주교 신자인 친할머니와 같은 방을 쓰며 살았다. 할머니는 아무리 아파도 기도를 단 하루도 거르지 않았다. 나는 학창시절 매일을 친할머니의 기도 소리를 들으며 일어났다. 그래서 믿음이 한 사람을 살게 하는 힘이라는 걸 어릴 때부터 본능적으로 알았다. 그런 믿음은 바보 같기도 하고, 징그럽기도 하고, 한없이 깊기도 하다. 그래서 “사랑과 헌신이 희박해지고 희생은 약자가 담당해야 할 어떤 것이라는 인식이 자리 잡은 세상에서, 종교는 사양산업으로 접어든 지 오래다”라는 구절에 고개가 끄덕여지면서도 한켠으로는 마음이 무거웠다. 나의 외할머니는 일주일에 두 번 수영장을 가고, 다른 두 번은 교회에 나가는 것을 인생의 목적으로 살고 계시기 때문이다. 나는 이 두 가지가 할머니를 살게 함을 안다. 공사다망한 나는 아직 이해할 길이 없겠지만, 나는 이 사양산업에 마음의 부채가 있다. 내가 사랑하는 약한 존재에게 나보다도 더 기댈 곳을 많이 내어주고 있기 때문이다.
사이비 오름교회에는 앞, 뒤, 옆으로 갈 수 없는 여자들이 모여들었다. 교주는 그들을 착취했다. 고미선을 비롯한 마흔명의 여자들은 갈 곳이 없었다. 그들은 교주가 주장한 휴거를 가장 절실하게 믿었고 가진 것을 전부 바쳐서, 오갈 데가 없어진 사람들이었다. 분노와 슬픔이 깊어갈수록 여자들은 헤엄에 몰입했다. 수영 실력이 늘었다. 몸은 눈에 띄게 튼튼해졌다. 그들은 비애라고 해야 할지 분노라고 해야 할지, 뭐라고 하기 힘든 묘한 감정에 사로잡혀 전에 없이 탄탄해진 몸을 물끄러미 바라보곤 했다. 그런 그들은 시간이 지나, 지민에게 짖궂게 자신들의 몸에 값을 매겨보라고 말한다. (도대체 무슨 삶을 살아서 이런 질문을 하는 거예요...) 지민은 그들의 몸이 아름다워 보인다고, 거기에는 세상의 미적 기준을 부숴버리고 압도하는 무언가가 있지 않다고 느낀다. 그들은 착취를 당했다. 세상은 그런 그들을 바보 같다고 손가락질 했다. 그렇지만 스스로를 살게 하기 위해 버둥거렸던 시간은 아름답다. 그 누구도 손가락질 할 자격이 없다.
오름교회의 여자들은 다같이 집단 자살하기로 마음을 먹는다. 수영장에서. 교주와 함께 감전사 당할 셈이었다. 평생을 착취 당하면서 오지 않을 세상의 종말과 구원을 기다렸다. 그들은 알았다. 구원은 오지 않는다는 사실. 자살시도를 하려던 시점, 기적에 대한 모든 기대를 포기한 그 순간 구원은 어린 고양이의 모습으로 등장했다. 본인들을 위해 돈을 한 푼도 쓰지 않으려고 했던 교주 덕에 천장이 마침내 무너지면서 거기에 들어가있던 어린 아기 고양이가 하늘에서 떨어졌다. 그들과 함께 죽기에는 너무 어린, 너무나도 어린 아기 고양이였다. 천장이 다 무너져내리는데도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여자들은 발군의 잠수, 수영 실력으로 한 사람도 죽지 않고 모두 살아난다. 너무나 먼 길을 돌아온 그들은 가볍게 기적을 대하지 않는다. 시간이 지나면 모두가 다른 기억의 혼란한 말들을 늘어놓을 것이기 때문에 아주 잠깐만, 기적의 순간이 혼탁한 삶에 뒤섞여 희미해지기 전에 바다로 가기로 한다. 그들은 바다를 한 번도 볼 수 없을 정도로 착취를 당한다. 2주에 한 번 밤마다 수영장에 소금을 잔뜩 풀어놓고 미친듯이 수영을 하는 것밖에는 없었으므로, 기적은 바다 수영으로 기념해야 했다.
읽는 소리내서 깔깔 웃기도 했고, 숨을 참게 되는 장면도 있었고, "아이고"를 연신 내뱉게 되기도 했다. 정말로 괴상한 이야기였다. 민음사 유투브에서 한 번 나와서 아주 오래 전에 산 책이어서 아무런 배경 지식 없이 시작했는데, 처음에는 연애 이야기일 줄 알았다. 근데 정말 제대로 말아주시는 스릴러에 정신을 못차리며 읽었다. 여름 휴가지에서 읽었으면 정말 좋았을 책인데 뉴욕은 여름이 모두 끝나버리고야 말았다. 한국의 남은 더운 날이 있다면 이 책으로 함께 날리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