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합 남편 100명 정도 나오는 두 권의 책을 읽고서
거의 단 한 명의 예외도 없이 내 모든 친구들이 결혼과 정착을 원한다. 근데 나는 잘 모르겠다. 계속되는 mobility와 변화를 생존처럼 생각하는 나에게도 그런 걸 바라게 되는 날이 올까? 내 사랑하는 친구들을 아프게 하는 commitment issue가 있는 남자들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친구들을 위해 한참을 위로해주지만 사실 나는 그 남자들과 훨씬 더 비슷함을 느껴 혼자 몰래 혼란스럽고는 했다. 그러다 우연찮게 북클럽 책으로 《The Husbands》 (Holly Gramazio, 2024)를, 친구가 선물해준 《The Seven Husbands of Evelyn Hugo》 (Taylor Jenkins Reid, 2017)를 연달아 읽게 됐다. 본의 아니게 남편과 결혼에 대해서 탐구하는 시간을 가지게 됐다. 이 두 작품 모두 획기적으로 많은 숫자의 남편들을 논하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재미난 제목으로 번역되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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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Husbands (Holly Gramazio, 2024)에서, 주인공 Lauren은 어느 날 집에 돌아와 보니, 전혀 본 적 없는 남자가 “자기 남편”이라며 집 안에 있는 것을 발견한다. 더 놀라운 건, 그 남편이 사라지고 또 다른 새로운 남편이 나타나기를 반복한다는 것. 남편이 바뀔 때마다 주변의 과거와 기억도 묘하게 달라져, 마치 원래부터 그 사람이 남편이었던 것처럼 세상이 재구성된다. 한편 The Seven Husbands of Evelyn Hugo (Taylor Jenkins Reid, 2017)에서는 헐리우드의 전설적인 배우 Evelyn Hugo가 은둔 생활을 접고 한 젊은 기자, Monique Grant를 불러 자신의 회고록을 집필하자고 제안한다. Evelyn은 일곱 번의 결혼과 수많은 스캔들로 유명했지만, 대중에게 알려진 이야기 뒤에는 전혀 다른 진실이 숨어 있다.
The Husbands에서 Lauren은 끝없이 바뀌는 남편들의 회전문 속에서 결국 완벽한 짝을 찾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스스로 무엇을 원하고 어떤 삶을 선택할 것인지가 핵심임을 깨닫는다. 그녀는 불완전함을 감수하면서도 “멈추는 선택”을 하며 자기 주도권을 되찾는다. 반면 The Seven Husbands of Evelyn Hugo에서 Evelyn은 일곱 번의 결혼과 헐리우드의 전략적 생존 끝에, 이제는 자신의 진짜 사랑과 욕망을 숨김없이 고백하며 삶을 이야기로 정리하는 선택을 한다. Lauren이 미래의 무한한 가능성 대신 현재의 삶을 붙잡는 방식으로 마침표를 찍는다면, Evelyn은 과거의 수많은 가면과 비밀을 벗겨내고 진실을 남기는 것으로 자신의 서사를 마무리한다. 두 사람은 서로 다른 길 위에서 결국 같은 지점—여성의 자기 결정과 삶의 서사화—에 도달한다.
이 책들이 내게 더 공명하였던 것은 The Husbands 초반에 나오는 로렌에 대한 묘사 때문이었다. 싱글이었던 로렌은 절친 엘레노어의 결혼을 앞두고 걱정에 빠진다. 뒤처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속에서 쓸쓸함을 느낀다. 다락방에서 첫 남편이 나타나기 전까지 그녀는 오랜 독신의 무게를 지고 살았고, 싱글로 행복해야 한다는 태도가 마치 페미니즘·자율성의 선언이자 친구들의 동정을 피하기 위한 방편처럼 의무처럼 여겨졌다. 그래서 한동안 연인이었던 Amos와 함께할 때 그녀가 원했던 것도 결혼식이나 낭만이 아니라, 단지 확실성, 더 이상 선택하지 않아도 된다는 마음이 정해진 상태였다. 나 역시 그 확실성을 향한 갈망을 너무 잘 안다. 미래를 보장받았다는 안도감, 더 이상 선택하지 않아도 된다는 안정감. 로렌에 대한 이 설명은 꼬깃꼬깃 내 마음 한 켠 어딘가에 구겨서 숨겨놓은 내 진실 같다. 지금 연애를 하지 않은 기간이 아주 길지는 않지만, 내 마음 어딘가에 있는 불안이다.
이제 인상 깊었던 남편들을 살펴보겠다.
The Husbands, Zack - 로렌은 완벽하고 모두에게 사랑받는 모범적인 남편을 만나면 자기 삶이 바뀔거라고 생각한다. Zack은 사회적으로 완벽해 보이고 친구와 가족에게서 환영받는 남편이었지만, 바로 그 과잉된 사랑과 모범적인 삶 때문에 Lauren은 숨이 막혀 총으로 위협해 그를 다락방으로 보낼 수밖에 없었다. 본인이 늘 바래왔던 어떤 ‘완벽함’조차 때로는 개인을 소멸시킨다는 역설을 보여준다.
The Husbands, 마지막 남편 Sam -평범하기 짝이없다. 예전 같았으면 바로 돌려보냈을 것이다. 로렌은 과거의 자신이 그와 사랑에 빠졌던 과거의 자신을 믿기로 한다.로렌은 다락방에 불을 지르며 무한한 가능성의 회전문을 멈춘다. “더 나은 선택”을 끝없이 시도하는 대신, 불완전하지만 스스로 살기로 선택한 삶에 책임을 지는 것이야말로 진짜 확실성이라는 걸 보여준다. 여기에서는 진짜 사랑이라는 건 뭘까에 대한 힌트도 있었다. 로렌이 불타는 집에서 빠져나오면서 몇 가지 본능적으로 주워온 것들이 있는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파인애플 모양의 jug를 가지고 와야 할 것 같아서 가지고 나왔다. 알고 보니 그것은 샘이 너무나 소중히 여겼던, 집이 불에 타고 있다는 걸 알게 됐을 때 그가 로렌 다음으로 가장 걱정했던 바로 그것이었다. 그냥 몸으로 상대방에게 중요하는 것을 알게 되는 것. 그런 사랑의 모습은 어쩌면 끝도 없이 계속되는 노력 -- 자신이 물을 준 장미이기 때문에 수없이도 많은 장미 중 특별한 장미가 되는 그런 사랑인 것이다.
The Seven Husbands of Evelyn Hugo, 에블린의 남편들은 단순한 로맨스의 목록이 아니라, 그녀가 욕망과 생존, 전략과 타협 사이에서 걸어온 궤적이었다. 처음 Ernie Diaz와 결혼했을 때 그녀가 느꼈던 건 단지 누군가에게 갈망된다는 감각, 사랑이라기보다 누군가에게 선택받았다는 사실 그 자체였다. 헬스키친을 빠져나오기 위해 열네 살에 발버둥 치던 에블린에게 그 결혼은 생존의 티켓이었다. Don Adler와의 관계에서는 화려한 겉모습 뒤에 폭력과 자기 부정이 숨어 있었고, 그래서 누군가와 진정으로 친밀한 관계를 갖는다는 건 다른 그 무엇도 아니고 진실을 말할 수 있게 되는 것이라는 에블린의 깨달음과 고백이 더 뼈아프게 다가왔다. 반면 Harry와의 관계는 특별했다. 그는 에블린과 닮은 사람이었고, 그 덕에 두 사람은 서로의 고통을 이해하며 동지애와 친밀을 나눌 수 있었다. 우리 모두는 누군가에게 필요하다고 느끼고 싶어한다. 일은 그걸 아주 빠르고 명확하게 보상해준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이게 삶을 버티는 중요한 이유가 된다. 해리와 에블린에게 일이 그러했다.
The Seven Husbands of Evelyn Hugo, 모니크의 남편 - 사실 또 다른 주인공이라고도 할 수 있는 모니크와 남편의 관계도 흥미로웠다. 모니크의 남편은 사실상 이혼 도장만 안 찍은 상태인데 "아직 포기하고 싶지 않다"며 모니크와 재결합을 하고 싶다고 말한다. 그녀는 흔들리지만 헤어짐을 고한다. 그 후 데이빗이 남긴 쪽지에 “내가 할 수 없었던 걸 해줘서 고마워”라고 써져있었다. 자기 자신을 지키기 위해 익숙하고 소중한 것들을 포기해야 할 때가 있다. 그 결정은 너무 무섭다. 데이빗은 그렇게 할 용기가 없었는데, 익숙하고 소중한 것들을 뒤로하고 본인이 진짜 원하는 자신의 삶을 선택할 수 없었는데, 그걸 해내는 모니크를 보고 감사함을 느낀다.
결국 《The Husbands》와 《The Seven Husbands of Evelyn Hugo》는 모두 결혼이라는 제도를 빌려 우리는 어떻게 자기 삶을 선택하고, 어떻게 그것을 이야기로 남기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수많은 남편들이 스쳐 지나가는 동안 로렌과 에블린이 끝내 붙잡은 건 완벽한 상대가 아니라 자기 진실이었다. 나는 사시나무처럼 흔들린다. 확실성을 갈망하면서도 변화를 욕망한다. 내가 정착하고 싶은지는 여전히 모르겠다. 그리고 어쩌면 그건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내가 원하는 건 깊이와 진정성, 세심한 관심, 안정과 생기의 균형, 존중과 확장의 연결이다. 언제나 잊지마!! 내 이야기를 쓰는 건 나야. 제도가 아니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