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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직 6개월 차의 소회

6개월만 다니고 그만두려 했다

by 루나리

여름이 되었다. 퇴근 시간이 되었는데도 밖이 밝다. 내가 여름을 좋아하는 이유다. 해가 쨍쨍할 때 출근할 수 있고, 해가 남아있을 때 퇴근할 수 있다. 시간은 똑같은데 하루를 길게 사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다른 사람의 시간은 24시간인데, 나 혼자만 36시간을 사는 것처럼.


7월 달력 위에 조그맣게 써 놓았다

‘사후지급금 신청’


그리고 7월 1일이 되자마자 신청을 했다. 하늘이 도와 팀장님도 휴가였다. 마음 편히 신청을 했다. 그리고 다음날 사후지급금이 들어왔다. 내 월급에 비할 수가 없는 큰 돈이라 이 날만을 기다렸는데, 막상 맞이한 그 순간은 담담하기 이를 데 없었다. 내 앞에는 완성해야 할 문서만 있었을 뿐이다. 여느 날과 다름없는 수요일이었다.




1월 1일 복직, 추운 겨울날 콧김을 뿜어내며 복직을 했다. 사람들이 날 보며 오랜만이라고 인사를 했고, 돌아가며 악수를 했다. 2025년을 잘 맞이해 보자며 잔을 높이 들며 인사를 했다. 모두들 행복하고 즐거워 보였다. 직장 생활을 했으면서도 그 웃음이 진실이길 바랐고, 내 미래이길 바랐다. 직장 생활을 했는데도 말이다. 그리고 나는 그 날 다짐했다. 환한 미소만큼 진심일거라고, 가면 속의 웃음도 참이라고.


그리고 6개월을 보냈다. 주어진 일을 쳐내느라 정신이 없었다. 탄핵날에는 10시까지 야근을 했다. 길거리에는 취객이 많았다, 무서웠다. 25년의 탄핵날은 홀로 늦게까지 야근을 하고 사무실 불을 껐다. 영원히 잊을 수 없는 날이 되겠군, 생각했다.

밖은 여전히 시끄러웠다. 탄핵을 찬성하는 파와, 반대파의 소리가 한데 어우러져 서울역은 아비규환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 와중에 중심 잡고 하루를 보내야 했다.

바깥이야 어찌됐든 하루를 보내야 했다. 일을 마쳐야 했다. 나의 하루는, 나의 시간은, 나의 삶은 월급과 맞바꾸고 있으니 몫을 해내야 했지만, 결국 일을 다 쳐내지 못했다. 용두사미가 따로 없었다. 그런데 잘하고 싶어서 그랬다. 사람들은 발표를 반짝한 눈으로 듣다가 점점 지쳐갔다. 나도 얼른 이 순간을 모면하고 싶어졌다. 빠른 속도로 발표를 마무리 지었다. 그렇게 몇 달간의 준비는 끝났다. 허무하기 이를 데 없었다.


6개월이 흘러 사후지급금이 들어왔고 동시에 다음 발표자가 선정됐다. 또 나다. 회사가 작은 탓에 순서는 금방 돌아왔다. 이번엔 꼭 잘해봐야지, 처음부터 끝까지 여러 번 시뮬레이션을 돌려봐야지, 난 사람들의 반짝거림을 끝까지 볼 테다, 내 발표로, 내 피피티로, 내 지식으로. 끝까지.


그러다 문득 생각했다, 어? 6개월이 흘렀네, 내 처음 다짐은 6개월이었는데 벌써 6개월이 흘렀네.




6개월을 보내니 시간이 생각보다 빨리 흐른다는 걸 알았다. 그리고 남은 6개월을 더 버텨 1년이라는 목표를 다시 세웠고, 이를 지켜보기로 마음먹었다. 하루가 어떻게 흐르는지 기억도 안 날만큼 바쁜 하루의 연속이었다. 어쩌다 아이가 아파 24시간을 같이 보내면 그 순간이 그토록 소중할 수가 없었다. 밤이 되면 아쉬웠다, 아이의 어린 순간이 사라지는 것 같아서. 예전엔 느끼지 못했던 감정이다. 휴직 기간엔 복직을 두려워하며 하루를 살아내느라 바빴는데, 이젠 하루가 아쉽고 시간 가는 게 두렵다. 내 머릿속은 두 가지로 나뉘었다. 육아와 일, 더 이상은 없다. 그래서 더 단순하게 살게 됐다. 사사로운 일은 머릿속에서 잊혔다. 밀도 있게 살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래서 아이를 문화센터에 넣어놓고, 키보드를 가져와 글을 쓴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붙잡을 수가 없다, 나의 시간과 나의 하루와 나의 삶을.


남은 6개월은 또 어떻게 펼쳐질까 기대가 된다. 남은 6개월 동안의 목표를 세웠다, 문서 잘 쓰기라는 거창하지 않은 목표를. 매일 ‘까까, 맘마, 빠방이’ 이런 단어를 쓰다가 ‘발굴, 호소, 정합성’ 격조 있는 단어를 갑자기 쓰려니 두뇌가 정지됐다. 표현하고자 하는 느낌은 있는데 단어 생각이 안 난다. 그래서 나는 AI와 함께 문서를 쓴다. AI는 내게 최고의 스승이오, 동료이자, 후배였다. 나는 이제 AI 없이는 살 수 없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남은 6개월의 목표는 아이러니하게도 챗 없이 나 혼자 끝까지 보고서를 완성하는 것이다. 수많은 단어 중에서 격식 있고 책임감 있는 단어를 고르는 것, 상황을 표현하는 것, 누가 봐도 이 글 안에 무슨 뜻이 내포되어 있는지 알 수 있는 간결한 문서를 작성하는 것. 이게 내 목표이다.


하지만 알고 있다. 남은 6개월도 나는 죽을힘을 다해가며 하루를 버텨낼 것이다. 겨울부터 여름까지 수많은 눈물을 지하철에 뿌리며 출근을 했다. 아직도 아이는 ‘맛있는 거 안 사줘도 되니, 엄마 회사 가지 마’라는 말을 반복한다. 아이의 이 순간은 잠시고, 돈을 벌 수 있는 날은 아직 남았지만 매스컴에서는 돈을 벌 수 있는 날이 더 짧다고, 지금 잘 붙잡고 있어야 한다고들 얘기한다. 어느 것 하나 틀린 말이 없다. 하나를 잡으면 하나를 포기해야 한다. 나는 어떤 것을 포기하게 될 것인가, 일단 6개월 더 버텨보자.


6개월 후의 나는 어떤 소회를 할지,

부디 그때에도 지금처럼 가벼운 마음으로 토로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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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