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책이 없다
목이 매캐하다. 뭐지, 이 따끔거리는 느낌? 갑자기 열이 확 오르는 거 같네. 목이 잠겨서 헛기침을 몇 번 해봤지만, 그 끈적한 가래 낀 느낌은 도무지 안 가셔. 설마 아이들한테 옮은 건가? 애들이 며칠 전부터 코 맹맹이 소리 내며 기침하던 게 떠올랐다. 근데 처음엔 그냥 감기겠지,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아이들 감기야 워낙 자주 있는 거니까. 근데 남편도 털썩 쓰러지더니 “진짜 너무 힘들다”며 한숨을 푹푹 쉬었다. 며칠 동안 고생했다는 거다. 나도 몸이 점점 무거워지더니 회사 갈 기운이 뚝 떨어졌다. 설상가상으로 어린이집에서 전화가 왔다. “애들 열 났어요. 빨리 데리러 와주세요.” 그 전화를 받으며 머릿속이 하얘졌다. 그렇게 주말이 시작됐다. 우리 가족, 전부 다 아팠다. 진짜, 다 같이 뻗어버린 거다.
주말 내내 집은 병동 같았다. 아이들은 코를 훌쩍이고, 기침하고, 열에 들떠서 울다 웃다 난리였다. 남편은 소파에 널브러져서 “이거 뭐야, 너무 힘들어”라고 중얼거리고, 나도 머리가 띵하고 몸이 천근만근이었다. 그러다 문득 느낌이 이상했다. 그냥 감기가 아닌 거 같다는 불길한 예감. 그러던 중 잠깐
커피나 한 잔 하러 들른 카페에서 옆자리 모녀의 대화가 귀에 꽂혔다.
“엄마, 이거 혹시 코로나 아니야? 키트로 검사해 봐. 근데 요즘은 코로나여도 별일 없대, 그냥 감기 같대.”
그 말 한마디에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불안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설마… 진짜 코로나인가? 작년에 그 끔찍했던 기억이 주마등처럼 스쳤다. 그때도 온 가족이 다 같이 앓아누웠던 게 떠올랐다. 아니, 설마 또?
그 길로 약국으로 달려갔다. 다급하게 코로나 키트를 샀다. 집에 오자마자 작년의 악몽이 되살아났다. 콧구멍 깊숙이 그 면봉 스틱을 쑤셔 넣었다. 으, 눈물이 찔끔 났다. 진짜 아파! 아이들은 어땠냐면, 세상이 무너질 듯 울어댔다. 첫째는 “엄마, 이거 왜 해!” 하며 발버둥 치고, 둘째는 그냥 비명 수준이었다. 이해 갔다. 어른인 나도 이렇게 아픈데, 애들은 오죽할까. 그래도 꾹 참고 검체를 채취했다. 키트에 액체를 떨어뜨렸다. 똑, 똑, 똑. 보라색이 스르륵 번지더니, 순식간에 선명한 두 줄이 떴다. 두 줄. 너무 선명해서 눈을 의심할 수가 없었다. 15분 기다릴 것도 없이, 넣자마자 두 줄이 확! 이건 누가 뭐래도 코로나였다. 일요일 새벽, 그 두 줄을 멍하니 바라보다 잠이 들었다.
근데 푹 잠들 리가 있나. 머릿속이 복잡했다. 할 일이 태산 같았다. 금요일이라 회사에 가겠다고 했던 게 떠올랐다. 근데 나도 애들도 코로나라니, 이걸 어쩌지? 내가 혹시 숙주가 돼서 바이러스를 퍼뜨리는 건 아닌지, 생각만 해도 머리가 지끈거렸다. 회사엔 어린 자녀 키우는 동료들이 많았다. 같이 점심 먹고, 회의하고, 커피 마시며 수다 떨던 순간들이 주르륵 떠올랐다. 내 바이러스가 그들에게 옮겨갈 상상을 하니 소름이 끼쳤다. 끔찍했다. 진짜, 도저히 안 되겠다. 일도 중요하지만, 감염 위험을 감당할 순 없었다.
결심을 굳히고 회사에 전화했다. “팀장님, 오늘 못 갈 거 같아요. 병원 가서 상태 좀 확인하고 올게요.” 팀장님은 깜짝 놀라시면서 “어… 알았어, 몸조리 잘해”라고 하셨다. 그길로 애들 데리고 병원으로 갔다. 검사 결과는 예상대로 양성. 근데 병원에서 더 충격적인 일이 있었다. 너무 추웠다. 한여름, 땡볕 아래인데 나 혼자 겨울 한복판에 있는 기분이었다. 오한 때문에 몸이 덜덜 떨렸다. 딱따구리가 나무 쪼는 것처럼 덜덜덜. 아이들도 기운 없이 유모차에 축 늘어져 있었다. 평소처럼 까불고, 떠들고, 서로 장난치며 싸우기라도 하면 덜 걱정했을 텐데. 애들은 너무 솔직했다. 우리 가족은 전부 힘이 쭉 빠져 있었다. 열 때문에 완전히 넉다운됐다. 기침은 쉴 새 없이 나왔다. 온 집안이 기침 소리로 가득했다. 우리가 바이러스 덩어리나 다름없었다. 그렇게 월요일이 훅 갔다.
병원에서 의사 선생님이 내 상태를 보시더니 “이건 좀 심한 거 같아요” 하시며 5일 치 진단서를 써주셨다. 약도 처방받았다. 약국에서 약 받아 집으로 가는 길, 5분 거리가 5시간 같았다. 멀고, 멀고, 또 멀었다. 태양은 작열하는데, 내 얼굴은 열 때문에 더 빨갛게 타올랐다. 집에 와서 체온을 재봤다. 39.3도. 진짜 미쳤다. 이게 사람 사는 꼴인가?
어린이집에 전화했다. “코로나가 법정 감염병은 아니지만, 애들 많아서 감염 위험 있으니 최대한 집에서 돌볼게요. 음성 나오면 등원시킬게요.” 전화 끊자마자 우리 가족은 다 같이 뻗었다. 침대에 누웠는데, 머릿속엔 온갖 생각이 맴돌았다. 내 생애 두 번째 코로나라니. 작년에 그 고생하고 또 이 고생이라니. 왜 이렇게 힘들지? 나 아직 젊고 건강한데… 근데 왜 이렇게 코로나는 늘 우리를 힘들게 하는 걸까?
다음 날, 다다음 날도 상태는 나아질 기미가 없었다. 애들 돌보느라 쉴 틈이 없었다. 아이들은 열 나는데도 집 안을 펄펄 날아다녔다. 얼굴 빨개져서 울다 웃다, 장난치다 싸우다, 또 울다. 완전 롤러코스터였다. 육아 끝나고 설거지라도 하려고 하면 피곤이 쓰나미처럼 밀려왔다. 도저히 못 버티겠어서 나도 그냥 침대에 몸을 던졌다. 이런 날들이 계속됐다. 미칠 것 같았다. 밖에도 못 나가고, 누구한테 하소연할 데도 없고, 일은 못 가는데 회사 생각은 계속 났다. 동료들 얼굴, 내 책상 위 서류들, 미뤄진 메일들이 자꾸 눈앞에 어른거렸다. 그렇게 일주일이 훌쩍 갔다.
드디어 다시 키트 검사할 때가 됐다. 가족 모두 콧구멍 깊숙이 면봉 쑤셔 넣고, 떨리는 마음으로 기다렸다. 결과는 한 줄. 드디어 한 줄! 진짜 고된 시간이었다. 이제 국가는 코로나 관련 지원도, 의무도, 권고도 아무것도 안 해준다. 그래도 코로나인 걸 알면서 애들을 어린이집에 보낼 순 없었다. 회사도 이런 사정을 다 이해해 주진 않았다. 병원에선 “감염 위험 있으니 최대한 집에서 요양하세요”라고만 했다. 결국 내가 결단을 내렸다. 상사한테 전화해서 양해를 구했다. “죄송해요, 당분간 못 갈 거 같아요.” 마음은 무겁고 불편했지만, 나도 애들도 누군가에게 바이러스 옮기는 건 절대 싫었다. 이 코로나 고리를 끊고 싶었다. 내가 퍼뜨리는 마지막 숙주가 되고 싶지 않았다.
일주일 동안 진짜 죽을 고생을 했다. 몸도 마음도 지쳤다. 그래도 한 줄 나온 걸 보니 가슴이 탁 트였다. 이제 애들 어린이집 보내고, 나도 회사 간다.
회사 간다는 게 이렇게 감사할 수가 있나. 출근길 아침 공기가 이렇게 상쾌할 수가. 평소엔 귀엽게 느껴지던 애들 등원 준비도 오늘은 더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일상이 이렇게 소중할 수가.
정말, 진짜, 고맙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