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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 다니는 게 즐거워요

끝이 있거든요, 얼마 안 남았거든요

by 루나리

복직한 지 어느덧 5개월이 지났다. 처음 세웠던 계획은 6개월 동안 버티는 것이었는데, 6월은 생각보다 훨씬 빠르게 다가왔다. 일은 절정에 달하고 있고, 그에 비례해 나의 스트레스도 점점 쌓여간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일이 최고조에 이를수록 마음은 오히려 가벼워지고 있다. 회사에 출근하는 일이 즐겁기까지 하다. 이유는 단 하나, 끝이 보이는 하루를 보내고 있기 때문이다. 하루를 마무리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순간, 적어도 그날의 업무는 끝났다는 안도감이 나를 감싼다.


여전히 과제에 대한 압박과 스스로가 바라는 성과에 대한 욕심은 남아 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현실과 타협하기로 마음먹었다. MZ세대답게 '어쩌라고' 마인드로 버텨보자는 다짐도 해봤다. 그러나 소심한 밀레니얼 세대인 나는 결국 '되는 대로 해보자'는 다소 절충된 마음가짐으로 돌아가곤 한다. '어쩌라고'라는 태도는 내게 어울리지 않는 옷처럼, 도저히 내 것으로 소화되지 않는다. 회사는 나 같은 사람을 뽑길 잘했다. 돈을 받았으면 일을 해야 한다는 책임감이 내 안에서 여전히 강하게 작동한다. 그리고 사실, 나는 지금도 회사에 다니는 것이 즐겁고 감사하다.




얼마 전, 첫째 아이의 언어치료 선생님께서 걱정스러운 말씀을 하셨다. 아이가 수업 시간에 거의 말을 하지 않고, 소통을 아예 꺼린다고 했다. 아이가 어릴수록 언어치료의 효과가 크니, 가능하다면 육아휴직을 고려해 아이에게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해보라는 조언이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마음이 무거워졌다. 그런데 거짓말처럼 그날 아이가 또 아팠다. 열이 39도를 넘었고, 나는 이미 남편의 출장에 맞춰 이틀 휴가를 사용한 터라 더 이상 눈치 보이며 휴가를 낼 수도 없었다. 아이의 열이 40도에 육박할 때도, 나는 휴가를 더 낼 수 있을지 고민하며 마음이 무거웠다.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직장 생활은 유한하고 아이의 아픔은 반복되는 일상이었다. 늘 그랬듯, 아침이면 괜찮아지겠지, 하며 스스로를 다독였다.

결국 남편에게 부탁했다.


"이번 달은 도저히 휴가를 낼 수 없어. 나 대신 좀 부탁해. 이제 끝이 얼마 안 남은 것 같아."




아이를 낳고 만 1년 만에 복직한 나는, 한 달에 두세 번씩 아이가 아픈 현실과 마주해야 했다. 출근길에 걸려온 전화, "어머니, 아이를 데리러 오셔야 할 것 같아요…"라는 말은 이제 익숙할 정도였다. 지난달에만 급작스럽게 두 번이나 휴가를 냈다. 아픈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기고 출근하는 마음은 찢어질 듯 아팠다. 나도 열이 나면 회사에서 버티기 힘든데, 어린 아이는 오죽할까. 삶의 균형이란 말은 내게 사치처럼 느껴졌다. 그저 하루를 버티는 것이 전부였다. 그렇게 5개월을 버텨냈다.

5개월을 버틴 소감은 간단하다. "회사를 그만두고 싶지 않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워킹맘으로서의 삶은 '어쩔 수 없지'라는 말과 동행하는 날들이다. 회사 일과 육아를 병행한다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도전이다. 아이가 홀로서기에 익숙해지는 과정이 있을 뿐, 그 과정은 부모에게도, 아이에게도 고통스럽다. 양가 부모님의 도움을 받을 수도 없고, 사회는 모든 양육의 책임을 부모에게 전가하는 분위기다. 이런 상황에서 아이를 제대로 키운다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다. 언어치료 선생님의 말 한마디, "어릴 때 개입할수록 효과가 좋다"는 말이 내 마음을 흔들어놓는다.




사실 오늘, 나는 '엄마가 되어 좋은 점'이라는 주제로 글을 쓰려고 했다. 하지만 머리를 쥐어짜봐도 세 가지 이상을 떠올릴 수 없었다. 반면, '아이를 낳지 말아야 할 이유'는 다섯 가지를 훌쩍 넘겼다. 숫자와 객관적인 수치로 보면, 아이를 낳지 않는 편이 더 합리적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그래서 그 주제로 글을 쓰는 걸 포기했다. 아직 '아이를 낳아야 할 이유'를 다섯 가지 이상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아이가 태어난 후 내 삶은 분명 달라졌다. 삶의 깊이가 깊어지고, 행복의 밀도가 높아졌다. 이건 숫자나 객관적인 수치로 표현할 수 없는, 말로 다 담아낼 수 없는 변화다. 아이를 보며 느끼는 소중함, 나와 아이, 그리고 우리 모두의 삶이 더욱 귀하게 느껴지는 순간들이 있다. 그 순간들이 나를 버티게 한다.


오늘도 나는 회사 동료들에게 말한다. "행복하지만, 애는 낳지 마." 어제도 나는 8시 30분에 잠들어버렸다. 직장 생활과 육아는 그야말로 불안정 그 자체다. 매일이 전쟁 같고, 균형을 찾으려 애쓰지만 늘 한쪽으로 기우는 삶이다. 그래도 어제, 나는 아이들보다 먼저 잠들어버렸다. 아이의 작은 손을 잡고, 그 따뜻함을 느끼며 잠든 순간만큼은 모든 고민이 멀어졌다. 어쩌면, 이 작은 순간들이 내가 계속 버티는 이유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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