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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 낳기 전엔 몰랐던 사실 5가지

애 낳기 전의 삶은 전생, 낳은 후의 삶은 전쟁.

by 루나리

육아시간을 쓴 지 벌써 몇 개월이 지났다.


일은 그대로인데 일할 수 있는 시간만 사라졌다. 하루 종일 일을 해도 끝내지 못하는 날들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퇴근시간이 되면 뛰어 나가야 한다. 10시부터 내 퇴근만을 기다리는 아이들이 있기 때문에.


출근은 9시 30분이다. 출근하자마자 일을 시작하는 데, 어느 정도 하다 보면 점심시간이다. 처음 몇 번은 점심도 거르고 일했는데, 30대 후반에겐 무리였다. 4시가 되니 세상이 빙빙 돌았다. 그리고 역사 내 매점에서 1,000원짜리 빵을 욱여넣었다. 이후 점심을 굶고 일하진 않지만 마음은 늘 불안하다. 겨우 퍼즐을 맞춰놓은 양상으로 살고 있다. 어느 하나가 삐끗하면 우르르 쏟아져버리는 그런…


그날도 가성비로 싸고 양 많은 점심밥을 먹고 왔는데 갑자기 어린이집에서 전화가 왔다.


“어머니, ㅇㅇ가 열이 많이 나서 하원을 해야 할 것 같은데, 언제쯤 오실 수 있으세요?”


순간 머릿속에 스쳐 지나가는 건, 과제, 회의, 그리고 팀장님과 부장님의 얼굴




얼마 전 발표 때 임원분이 내게 물었다. 이 인력난을 어떻게 해소할 거냐고, 나는 교육에 답이 있다고 대답했다.


부모 교육을 받았으면 좀 달랐을까?


아이를 낳기 전에 이토록 육아가 힘들고 고된 일인지 몰랐으니 말이다. 육아는 아름답고 존귀하게만 묘사됐다. 찌든 얼굴은 온데간데없고 엄마는 아이를 안고 환히 웃고 있는 사진들이 걸렸다. 아이가 하나도 아니고, 둘인 사진 속의 부모는 환히 웃고 있었다. 육아의 찌듦은 온 간데없었다. 이런 사진과 그림을 보면서 나도 군침을 삼켰다. 이 사진 속의 엄마처럼, 나도…?


임신을 확인한 날, 기분이 오묘했다. 갑자기 내 몸이 귀하게 여겨졌다. 내가 생명을 잉태했다니. 임신 사실을 알리자 회사 사람들은 축하한다고 박수를 쳐 줬다. 발걸음도 사뿐사뿐 걸으라고 했다. 마치 구름 위를 걷는 것처럼. 그렇게 나는 임신을 했다.


하지만 환상이 깨지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지독한 입덧과 함께 소양증이 찾아왔다. 임신에 대한 환상은 깨져버렸다. 그리고 아이를 낳아 속상함과 억울함에 1월 1일을 맞이했고 (내 아이는 연말생이다)

이후 미친 육아가 시작됐다. 신생아 시절을 거쳐 100일, 돌, 어린이집 적응까지, 내 인생의 시계는 아이를 위주로 돌아가기 시작했고 그 와중 헐레벌떡 태어난 둘째는 ‘와 나 진짜 미치겠다’라는 말을 종종 내뱉게 했다. 애 하나도 힘든데, 애 둘, 게다가 연년생. 나는 폭삭 늙어버렸다.


애 낳기 전엔 몰랐다, 이런 삶이 나를 기다릴줄은.




1. 애가 이렇게 자주 아플 줄 몰랐다.


어린이집을 언제 보낼 것인가는 늘 난제다. 매스컴과 교과서, 아동 전문가는 하나같이 36개월까지는 가정보육을 할 것을 권고한다. 아이의 뇌가 자라기까지 부모와의 안정적인 애착을 형성해야 한다는 게 이유다. 하지만 법적 육아휴직은 1년이다. 이건 웬만한 회사원은 아이 돌이 지나자마자 복직을 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복직 전 아이를 어린이집에 적응시켜야 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아이들은 돌전후 어린이집에 많이 입소한다.


난 최대한 정석대로 아이를 키웠다. 그래서 있는 휴직, 없는 휴직을 끌어 써서 27개월까지 가정보육을 했다. (둘째 육아휴직을 연달아 썼다) 그래서 첫째는 아픈 적이 손에 꼽는다. 항생제는 더더욱 안 썼다. 항생제 먹은 게 5회 이내이니 말 다 했다. 하지만 아이는 여전히 어린이집 적응에 많은 힘들 들이고 있고, 나 또한 아이의 성장속도에 맞춰 육아를 하느라 쉽지 않은 시간을 보냈다.


40개월인 지금 아이는 아직까지도 미디어 노출을 안 하고 있고, 아픈 적도 거의 없는 건강한 아이로 자라나고 있지만 어린이집은 여전히 가기 싫은 어려운 곳이고 나에 대한 애착이 강해 10시부터 나를 찾는다고 하니 모든 일엔 장단점이 공존하기 마련이라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다.


18개월에 입소한 둘째는 3월부터 감기를 달고 살고있다. 항생제는 언니보다 많이 먹었다. 감기가 나을 때쯤 다시 감염되고 나을 때쯤 다시 감염되고, 이 패턴의 반복이다. 첫째도 입소하자마자 아프기 시작해서 6개월 동안 감기를 달고 살았다.


2. 대충 키우는 부모는 없다.


아이를 대충 키우는 부모가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내 주변엔 없다. 단 한 명도 없다.

아이가 한둘이라 대부분 아이에게 최선을 다하고, 아이에게 불편함이 없도록 하는 게 기본 육아 방식이다. 시간이 안되면 돈을 쓴다. 예전처럼 대가족 사회도 아니기 때문에 부모는 퇴근 후의 시간과, 주말을 오롯이 육아를 위해 보낸다. 인간관계 개입은 기본이고, 친구까지 만들어 줘야 하는 게 요즘 육아이다. 예전엔 안 그랬는데 할 수도 있다. 나는 요즘 부모처럼 아이를 안 키우겠다고 마음먹을 수도 있다. 하지만, 본 게임에 들어오면 달라진다. 왜냐? 내 아이만 뒤쳐지기 때문에. 선두주자는 못 될지언정, 뒤쳐지는 건 싫은 게 부모 마음이다. 요즘은 다 손 잡고 달리는 시대라, 나 혼자 걸을 수가 없다.


10년 전 아이를 키웠던 친구가 그랬다. 요즘은 애가 뒤쳐지는 걸 가만히 지켜보는 시대가 아니라고. 10년 전엔 언어치료가 이토록 활성화되지 않았는데, 이젠 병원에서조차 치료를 권고하고 아이가 늦어지는 걸 지켜보지 않는다고. 10명 중 3명은 언어치료를 받는 시대가 되었으니 말이다. (내 주변미터 한정)


나는 서민 중의 서민이다. 고로 내 친구들도 서민인데, 서민의 육아가 이 정도니 부디 마음가짐을 단단히 하고 애를 가졌으면 좋겠다.


3. 세상은 생각보다 각박하고 따뜻하다.


아이를 데리고 나가면 셋쨰는 아들을 꼭 낳으라는 어르신부터 아이를 흘겨보는 사람까지 여러 사람을 만나게 된다. 아리를 퍽퍽 만지는 사람도 있고, 아이를 만지고 싶은데 만져도 되냐고 물어보는 어르신도 있다. 손가락질을 하는 사람도 있고 여러 사람이 많다. 그런데 이 모든 것에 너무 예민하게 받아들이지 않으려 한다.

셋째는 아들 낳으라는 어르신에게는, 아 네~ 하고 지나가면 그만이고, 만져도 되냐는 물음에는 얼굴만 빼고 만져달라는 말을 하면 되는 거고, 묻지도 않고 만지는 사람에게는 웃으며 얼굴은 만지지 말아 주세요,라고 말하면 그만이다.


100일까진 꽁꽁 싸매고 아이를 키우다가 아이를 데리고 첫 세상에 나온 날을 잊지 못한다. 사람들은 나에게 스몰톡을 쉴 새 없이 건넸고 나도 그들에게 응답하며 화답했다. 한 명의 사회인이 애엄마로 다시 재탄생하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나는 이 관심이 고맙고, 지속됐으면 좋겠다. 아이를 키우다가 이 한 마디의 안부인사가 얼마나 달았는지 모른다.


4. 애 키우는 건 돈이 많이 들어간다.


돈이 많이 들 수도 안 들 수도 있다. 이건 부모의 의지에 달렸다. 하지만 복직을 하고 보니 돈을 쓰게 된다. 왜냐? 나의 에너지가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소리 나는 장난감은 사준 적이 없다. 팝콘 브레인이라고 해서 최대한 아이를 자극 없이 키우라는 게 소아과 선생님의 설명이었다. 목재 장난감은 자극이 없는 대신 무료함이 금세 찾아와 부모의 상호작용이 필수적이다. 유명한 소꿉놀이 장난감을 사줬는데 아이는 계속 나에게 ‘기차 도시락입니다’ 하면서 찾아왔다. 나는 밀린 일을 해야 하는데 말이다. 안 되겠다 싶어 소리 나는 장난감을 찾아 사주었다. 어쩔 수가 없었다. 시간과 에너지는 한정되어 있는데 남은 시간 모두를 애를 위해 쓸 수가 없다. 정말 난제다, 난제.


아이를 위해 공연을 보여주고, 소리 나는 장난감을 사주고, 아쿠아리움을 가고 이 모든 것은 휴직땐 감히 생각지도 못했던 것들이다. 무급휴가에 아쿠아리움은 언감생심이었다. 하지만 이젠 지른다. 왜? 나를 위해. 아쿠아리움에서 아이들이 물고기에 집중하고 있는 동안엔 말을 안 해도 되니까. 돈으로 여유를 사고, 육아시간을 사는 것이다. 하지만 마음 한편엔 씁쓸함과 이래선 안된다는 마음이 있다. 결국 본질은, 중요한 건, 부모와의 상호작용이기 때문이다.


5. 육아는 생각보다 힘들다, 정말 힘들다.


나는 어쩌다 보니 자연분만을 했고, 24시간 모자동실을 했고, 조리원에 안 갔고, 모유수유를 하며 아이를 키웠다. 그리고 내 머리는 하얗게 쇠었고 허리는 고장 났다. 쉴 새 없이 아이를 안는 통에 내 팔뚝은 무쇠 팔뚝이 되어버렸고 팔자주름은 깊어졌다.


한동안 거울을 보기가 싫었다. 변해버린 내 모습이 낯설었고 싫었다. 게다가 더 싫은 건, 친정 부모님은 돈 벌며 육아하는 남편에게 늘 안부인사를 전했고, 시부모님은 당연한 거고, 내 편과 내 마음을 알아주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는 거다.

엄마라서 네가 힘든 건 당연하다는 게 사회적인 시선이었다. 커리어, 배운 거 아쉽다, 이런 얘기조차 가지 못했다. 하루를 살아내는 게 미션이었고 숙제였다. 엄마가 중간중간 와서 봐주시긴 했지만 70대 엄마에게 육아는 고된 노동이었다. 아이를 봐주겠으니 잠시 가서 밥 먹고 오라는 시부모님에겐 20분 후에 전화가 왔다.


‘데려가라, 애 울음이 안 그친다’


가장 힘든 건 외로움이다. 도와주는 이가 아무도 없다. 지금은 남편과 둘이서 육아를 해내고 있다. 아이 또래를 만나러 가려는 데도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주변 친척도 없다. 정말 고되고 외롭다. 단 한 번도 어린이집을 제외하고 아이를 맡긴 적이 없다. 40개월 동안.


그래서 마지막 본 영화는 ‘오징어게임’이다. 이것도 뱃속의 아이에게 미안해하면서 겨우 봤는데, 이후 본 프로그램도, 본 책도, 본 영화도 단 한 편도 없다. 그토록 내겐 잠시의 여유도 주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더 끔찍한 건, 이제 시작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복직하니 에너지까지 다 소진돼 이도저도 아닌 일상을 보내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난 하루만 본다. 오늘 하루만 산다. 오늘 하루 잘 보내면 끝난 것이다.


하고 싶은 거 많고, 만나면 밝고 유쾌하다던 나는 온데간데없고 하루살이의 나만 남았을 뿐이다. 언젠간 아이들이 커서 내 곁을 떠날 텐데 한편으론 이 시간이 아쉽기도 얼른 돌아왔으면 하기도 싶다.


그나저나, 아무도 도와줄 사람 없는 워킹맘에게 이번 연휴는 너무 길다. 너무너무너무 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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