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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킹맘은 돈으로 육아를 대신한다

결국 모든 건 또이또이

by 루나리

어린이집에서 천청벽력 같은 소식이 들린 지 2주가 됐다.

이제 중요한 건, 그럼 무엇을 할 것인가? 였다.


아이는 여전히 어린이집에 가는 걸 거부하고 있다. 연초생이 대부분인 어린이집에서 연말생인 아이는 치이고 있다. 그것도 열심히 치이는 중이다. 부모인 나는 이걸 바라볼 뿐.

워킹맘으로서 업무 압박은 날로 커지고 있고, 육아시간을 쓰기 시작해서 일하는 시간은 줄었지만 일은 그대로라 집에서도 일 하는 나날이 지속되고 있다.


그래도 나는 모든 게 감사하다.

일할 수 있는 날이 얼마 남지 않았기에




아이의 사회성을 끌어올리기 위한 우리 부부의 노력이 시작됐다.


어린이집, 언어치료 선생님, 부모까지. 아이를 잘 알고, 아이를 맡아주는 사람들에게 각자의 역할에서 롤을 추가하기 시작했다. 아이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대답을 받았다. 보고만 있어도 아까운 우리 첫째 딸, 겨우 세 살짜리 아이가 받은 상처는 생각보다 깊었다.


아이는 툭하면 울었다. 아이에게 조금만 뭐라고 해도 온갖 상처받은 얼굴을 하며 눈물을 뚝뚝 흘렸다. 마음속 우울이 아이를 휘감고 있다는 것을, 어미로서 본능적으로 느꼈다. 그 상처는 고스란히 내 마음속에 가라앉았다. 어떻게든 아이를 도와야한다.




1. 공주 옷을 몇 벌 샀다.

여자아이의 머리만 봐도 엄마의 성격이 드러난다. 똥손에 아이 머리를 묶어서 등원시킬 여유도 없는 나는 싹둑 머리를 잘라버린, 공주와는 거리가 먼 엄마였다.

하지만 어린이집에서는 또래 아이들처럼 공주 옷, 예쁜 머리핀부터 시작하자고 했다. 또래들이 좋아하는 거, 또래들이 원하는 것부터 파악했다. 공주원피스가 도착했고 아이는 웃었다. 공주원피스 세 벌로는 부족했다. 나는 추가로 더 주문했다. 지난 며칠간 공주원피스는 아이와 늘 함께였다. 잠잘때도 밥을 먹을 때도 언제나.


2. 캐치티니핑 노출을 시작했다.

지금까지 미디어 노출을 하지 않고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아이들에게 안 좋다고 하니까. 그리고 둘째가 만 1세라 같이 미디어를 보여주기엔 내 마음이 허락지 않았다. 하지만 아이가 다니는 어린이집은 티니핑을 이미 섭렵한 아이들이 많다고 했다. 내가 고민하자, 선생님은 노출하는 게 꺼려진다면 티니핑 책이 있으니 책부터 시작하자고 했다. 그 길로 책을 사러 갔다. 그리고 우리 아이는 티니핑 책 마니아가 됐다.


3. 축구를 시작했다.

만 3살 아이들인데, 바깥 활동을 거의 하지 않는다. 교사 수가 부족해서 일 수도 있고, 다른 이유가 있을 수도 있겠지만 대부분 교실, 이후엔 유희실에서 특별활동을 하며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안 되겠다 싶었다. 바깥놀이를 자주 하지 못하니, 어린이집의 빈자리를 부모가 채우기로 했다. 남편은 그 길로 어린이용 축구공을 하나 사서 퇴근 후에 아이들과 축구를 하기 시작했다. 골대도, 골키퍼도 없는 공 하나만 있는 축구 말이다. 다행히 아이는 즐거워했고, 즐거워하고 있다. 아이가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아파왔다. 진작 해 줄 것을


4. 어린이집 놀잇감을 집에 그대로 들여놓았다.

아이에게 최대한 익숙한 환경을 제공하기 위해 어린이집 선생님들과 상의 후 비슷한 장난감을 추천받아 그대로 구매했다. 꽃블록을 샀고, 동물 피겨를 샀다. 맥포머스도 샀고, 레고도 샀다. 그리고 대망의 종이접기 책까지. 어린이집에 있는 아이들을 대신해 아이와 이런저런 대화를 하며 아이를 교육해야 한다. 워킹맘에게 육아란 뭘까? 육아란 왜 이리 힘든 걸까? 왜 이리 할 일이 많은 걸까? 장난감이 하나 둘 집에 도착하는 데,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다. 착잡했다.


5. 문화센터 등록을 시작했다.

문화센터에 첫 등록을 했다. 그동안 문화센터에 등록하지 않았던 이유는 나 혼자서도 충분히 아이와 있는 시간이 꽉 채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문화센터 대신 재래시장을 갔고 백화점을 갔고 숲을 갔다. 아이에게 세상을 보여주고 싶었고, 일부러 지나가는 어르신들과 스몰토크를 하며 세상과 소통하는 법을 보여주고자 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내 육아법이 틀렸나 싶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남들처럼 하는 게 맞았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6. 하원 후 근처 놀이터에 가기 시작했다.

내향인인 엄마는 스몰토크가 어려워 하원하자마자 마트를 가거나 시장을 갔다. 대부분 집에서 동생과 강아지까지 가족끼리 오붓한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지금 보니 하원 후에 대부분의 아이들은 근처 놀이터에서 새로운 관계를 맺고 있었다. 나는 저번 주 어색하게 어린이집의 한 학부모와 인사를 했고 관계를 맺었다. 앞으로 하원 후 종종 근처 놀이터에 가서 엄마들과의 관계를 맺고자 한다. 아, 벌써 긴장이 된다.


7. 아이에게 공연을 보여줬다.

어린이 뮤지컬을 보러 갔다. 장화 신은 고양이는 말을 했고 살금살금 걸어 다녔다. 어린이 뮤지컬을 난생처음 본 아이들의 눈빛은 반짝반짝 빛났다. 휴직땐 금전적인 게 부담스러워 무료 공연만 찾아다녔는데, 아이가 안쓰러워 즐거움을 주고 싶었다. 영상을 보여줄 자신은 없어 선택한 게 뮤지컬이었다. 다행히 아이는 뮤지컬을 보고 ‘고양이’ 이야기를 최소 100번은 했다. 돈 쓴 보람이 있었다.


8. 놀이치료를 시작한다

언어치료를 받은 지 몇 달이 되었다. 연초생 둘째들과 격차를 줄이기엔 역부족이었다. 사회성 걱정을 하니, 어린이집과 센터, 언어치료 선생님은 놀이치료를 권유했다. 이건 불안감 조성도, 과한 권유도 아니었다. 단지 시대가 이렇게 변한 것일 뿐. 다만 1시간에 몇 만 원이라는 돈이 나의 하루 일당과 맞먹는다는 것이 가슴 아플 뿐이었다. 내가 그 자리를 메꿀 수 없으니 센터에 대신 맡기기로 했다. 놀이치료를 반대한 사람은 소아과 선생님뿐이었다.


9. 놀이책을 샀고, 정독했고, 매일 실천하기 시작했다.

소아과 선생님이 책을 한 권 소개해 주셨다. 사실 이 책은 예전부터 우리 집에 있던 책이었다. 대수롭지 않게 여겼었다. 아이의 상황을 몰랐기 때문이다. 책 속에는 무궁무진한 놀이기법이 많이 나와 있었다. 아이에게 미안해졌다. 이 모든 건 정성이 부족한 나, 즉 엄마 탓인 것만 같았다. 지금까지 아이를 지극정성으로 키웠지만, 앞으로도 갈 길이 구만리다. 더욱 더 노력해야 한다. 아이가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를 때 까지. 어쩔 수 없다. 사람을 하나 키우는 것은 나의 모든 것을 보여주는 것, 나의 모든 것을 내어주는 것.


10. 주변 친구들과 약속을 했다.

아이들과 함께 만나자며 최대한의 인맥을 끌어 들었다. 그리고 우리 첫째에게 잘해주라는 말도 덧붙였다. 이런 노력을 복직 후에 하다니, 휴직 중에 이런 일이 있었으면 여유라도 있었을 텐데 여유가 없다. 그 와중에 친구들과의 약속을 내리 잡았다. 빈틈을 메꾼다, 나는 메꾸미다.




아이는 여전히 운다. 내일은 어린이집 가는 날이냐며 재차 확인한다. 하원길에 묻는다. 내일은 토요일이냐며, 어린이지 안 가는 날 맞냐며.


그리고 대답한다.


“나 오늘 어린이집 갈 기분 아니야”


하지만 아이는 알고 있다. 내일도, 모레도, 그다음 날에도 어린이집에 가야 한다는 사실을. 그래서 아이는 어린이집에 겨우 가고, 원 앞에서 운다.


‘나, 어린이집 안 갈 줄 알았는데…’


바쁜 워킹맘은 이런 소리에 귀를 기울여 줄 여유가 없다. 어린이집 선생님께 아이를 넘기듯이 맡기고 감사 인사로 마음을 전달할 뿐이다. 모두 아이를 위해 애쓰고 있다. 하지만 결국 이 모든 것을 이겨내야 하는 것은 아이 자신이다. 나도 이 점을 알고 있다. 그래서 아이를 꽉 안고 아이에게 속삭인다. 이 세상에서 너를 가장 사랑한다고, 엄마는 네가 태어나서 너무 감사하다고.

아이가 부디 이 난관을 잘 헤쳐나가길 바란다. 그리고 아이가 너무 깊이 상처받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는 나대로 회사에서 돈을 벌고, 아이는 아이대로 세상에 나갈 준비를 해 나가는 거다. 나는 나대로 일할 수 있음에 감사하고 어떻게든 견디기로 했다. 이 시기는 오래 가지 않을 것이다.


워킹맘은 육아를 돈으로 대신한다. 엄마의 빈자리를 돈으로 해결한다. 이렇게라도 해야 내 마음이 편하다. 하지만, 죄책감이 남는다. 모든 워킹맘들이 그렇듯이. 이 모든 게 다 나 때문인 것만 같다. 자식의 고통이 이토록 크게 다가올 줄이야.


나는 아이에게 줄 수 있는 게 사랑밖에 없어서 미안하다.




그날도 아이가 격렬하게 어린이집에 가기 싫다고 한 날이었다. 대답 없는 아이들에게 몇 번이나 같이 놀자고 할까, 엄마를 몇 번이나 찾을까, 아이의 여덟 시간은 얼마나 고통스러울까. 출근길에 몇 달 만에 울었다. 상처받고 소외된 아이의 얼굴이 자꾸만 떠올라서.


언제쯤 서울역에 즐거운 마음으로 내릴 수 있을까, 제발 그때가 머지않기를, 남들처럼 회사 출근이 쉬는 거라고 말할 수 있기를, 많은 걸 바라지 않는다. 내가 원하는 건, 그저 아이의 행복.


아이는 오늘도, 지금도 운다.

어린이집에 안 가고 싶다고, 엄마 내 곁을 떠나지 마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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