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필요하지 않은 것을 샀다

폐점 예정 문방구에서 필요치 않은 것을 일부러 골랐다

by 루나리

신도시라 아이들이 많고, 근처에 학교도 있어서인지 동네 문방구는 늘 정겨웠다. 요즘 보기 드문 문방구라서인지, 나는 그곳에 혼자만의 애틋한 마음을 품고 있었다. 하지만 선뜻 발걸음이 가지 않았다. 알록달록한 펜이나 노트를 살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회사엔 사무용품이 차고 넘쳤고, 펜과 연필을 쓰는 것 자체가 아날로그 감성처럼 느껴졌다. 그래도 나는 여전히 종이에 프린트하고, 형광펜으로 줄을 그어야 마음이 편했다. 그게 내겐 눈에 잘 들어오는 방식이었다.


그렇다고 문방구에 자주 간 것도 아니었다. 요즘은 다이소나 인터넷에서 모든 걸 쉽게 구할 수 있으니 굳이 문방구까지 갈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마음 한편에선 그 문방구 사장님을 응원하고 있었다. 이유 없이 구경하며 쓸데없는 펜을 사는 소소한 기쁨, 그 구경의 재미가 일상의 작은 행복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가게가 오래 버텨주길 바랐다.


그러다 얼마 전, 문방구 앞에 붙은 폐점 안내문을 보고 말았다. “폐점 세일 50% 할인”이라는 문구 아래, 사람들의 발자국이 여기저기 남아 있었다. 동네 사람들이 방앗간 드나들듯 문방구 문을 열고 들어갔다.


따르릉. 정겨운 종소리가 울렸다.


사장님의 어머니로 보이는 분이 따뜻하게 우리를 맞아주셨다. 비 오는 날, 어린아이 둘을 데리고 문방구에 들어가는 사람은 흔치 않을 터였다. 나는 아이들에게 마음껏 구경하라고 한 뒤, 나 혼자 쓸쓸한 가게 안을 둘러보았다.


꽉 차 있던 펜 진열대는 텅 비어 있었다. 뭔가 필요한 물건이 있을 거라 믿고 몇 번이나 가게를 샅샅이 뒤졌다. 하지만 정말 살 게 없었다. 좋은 물건은 이미 다 팔리고 없었다. 그때 아이가 색연필과 형광펜을 꺼내 장난치기 시작했다.


“이러면 엄마가 이 펜 사야지!”

나는 펜을 손에 쥐고 속으로 웃었다. ‘아이 덕분에 뭐라도 사게 됐네.’


결국 내 손엔 펜 두 자루와 스티커 두 세트가 들려 있었다. 카드 대신 계좌이체로 계산하며 사장님께 말을 걸었다.


“사장님, 괜히 제가 안타까워요. 장사가 잘 됐으면 좋았을 텐데…”


“그러게요…”


“요즘 인터넷 주문이 많아서 힘드셨죠?”


“맞아요, 다들 인터넷에서 사니까…”


그렇게 사장님과 한참 이야기를 나눴다. 우리는 처지가 비슷했다. 먹여 살려야 할 아이들이 있고, 돈을 벌어야 하고, 세상의 빠른 변화에 두려움을 느끼며 각자의 방식으로 미래를 준비하고 있었다. 서로 다른 길을 걷지만, 살아가는 모습은 비슷했다.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를 위로했다. 무슨 말을 했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그저 이야기를 털어놓고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됐다. 나에게도, 사장님에게도.


다음 날 회사로 향하는 발걸음이 유난히 무거웠다. 이 회사를 다닐 날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안다. 하지만 다음 단계가 뭔지, 명확한 답은 없다. 그저 시간이 얼마 안 남았다는 느낌만 있을 뿐이다. 회사 밖은 위험하고 지옥 같다고들 한다. 어제 그 문방구 사장님도 호기롭게 시작했다가 이런 결말을 맞았다며 씁쓸하게 웃으셨다. 그 웃음이 내 마음에 깊이 박혔다.


그런데… 아이들이 마음에 걸린다. 복직한 지 5개월이 지났지만, 아이는 여전히 아침마다 엄마가 회사 가는 걸 싫어하며 운다. 아이와 보내는 시간은 하루 1시간도 채 되지 않는다. 아이는 맛있는 걸 사달라고 하면서 6,500원짜리 캐치티니핑 스티커를 고른다. 그래, 6,500원이면 밥 한 끼 값이다. 망설임 없이 스티커를 사고, 내 시간과 노동이 돈으로 바뀌는 것에 감사하며 출근한다.


하지만 마음 한편엔 늘 아이들이 걸린다. 돈이 전부일까? 아이들은 자란다고 하는데, 잘 클 수 있을까? 만약 잘 크지 못한다면, 그게 내 부재 때문이라면 얼마나 후회할까?


복잡한 마음을 안은 워킹맘은 오늘도 철컹철컹 서울역으로 출근한다.


3040의 세상 이야기는 뻔하다. 세상이 너무 빨리 변하고, 우리는 어떻게든 적응해야 하지만 그마저도 쉽지 않다. 그래도 아이들을 위해, 그리고 나를 위해, 오늘도 한 발짝 내딛는다.



keyword
토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