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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선수집가 Aug 22. 2021

다정한 식탁

당신과 나의 사적이고도 충만한 식사


달궈진 프라이팬에 녹인 버터 냄새, 고기와 채소가 양껏 들어간 스튜, 쇠고기와 달달한 무가 어우러진 뭇국까지. 침이 고이는 음식 앞에서의 허기는 텅 빈 속 때문인지, 아니면 함께 먹을 식구의 부재 때문인지 알 수 없었다. 하루는 문득 식사가 상대와 나누는 대화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작고 단단한 숟가락과 젓가락이 부딪쳐 흔들릴 때마다, 연하고 싱싱한 채소를 가져다 한 입 베어 물 때마다, 알맞은 계절에 먹을 수 있는 과일 껍질을 도려낼 때마다, 그렇게 서로 머리를 맞댄 채 한 끼 식사를 해결할 때마다 우리는 분명 대화를 나누고 있는 거라고. 당신이 말없이 음식을 한 움큼 집어서 나의 접시 위로 내려놓는 건 마음을 반쪽 떼어 주는 거라고. 어떤 식으로든 용기 내어 말을 걸고 있는 거라고.


당신이 해주는 음식을 우물거리다 어느새 팔다리가 자라났다. 어릴 적 친구들을 집으로 초대하면 당신은 어깨가 으쓱해질 법한 음식을 내어주곤 했다. 걸쭉한 반죽 위로 카레 가루를 솔솔 뿌려서 튀겨냈던 치킨은 몸이 제법 자랐을 때도 친구들 사이에서 회자되었다.


또 어딘가 멀리 다녀올 때마다 한 솥 가득 끓여 둔 감자탕, 찜통더위를 못 이겨내 얼음 동동 띄워 만든 콩국수, 만두피를 구워 닭가슴살 샐러드를 싸 먹는 겨울 만두, 입맛이 없을 때마다 찾게 되는 닭볶음탕까지. 분주한 주방에서 신나 보였던 당신의 등을 기억한다. 긴 세월 동안 잠시라도 포만감을 누렸다면, 그건 당신 삶의 일부를 먹고 자랐기 때문일 것이다.


식탁 위로 오고 갔던 씹고, 뱉고, 웃고, 찡그리고, 울고, 음미했던 시간이 우리를 만들어왔다. 마음의 허기는 오로지 당신과 나의 사적이고도 충만한 식사 속에서만 채워진다. 이제 다시 식탁 앞으로 왔다. 나는 온 마음을 다해 “오늘도 잘 먹겠습니다.”라고 말을 건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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