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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선수집가 Sep 09. 2021

상상력

집으로 돌아가는 당신의 표정을 상상하는 일


상대방에 대한 상상력을 잃지 않기 위해 애쓰는 편이다. 이는 내가 실천하는 최소한의 예의이자 존중의 기준이기도 하다. 혼자 있기를 선호하며 사람들 앞에서 나서길 꺼리는 A가 때로는 현장을 진두지휘하며 리더십을 발휘하는 인물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주변 사람들을 웃기는 재주가 탁월한 B가 홀로 있을 때는 말없이 고요한 시간을 누리지 않을까. 혹은 뾰족하고 예민한 감각을 지녀서 예술적 안목이 뛰어난 C가 본인의 성향을 누구보다 피곤해하며 가끔은 둔해지고 싶어 하지 않을까. 그렇게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그 사람이 지을 법한 표정을 떠올려 본다. 오늘은 당신의 무수한 모습 중 몇 가지만 택해서 보여준 것이겠지, 지금 눈앞에 보이는 모습이 꼭 전부는 아니겠지, 가늠할 수 없는 웅장하고도 깊은 우주를 품고 있겠지.​


180도 다른 모습으로 변신해도 놀라지 않을 수 있다. 책 읽고 글쓰기를 즐기던 당신이 문득 무대 위에서 뭔가를 전하고 싶어질 수도 있다. 노래 부르길 좋아하던 당신이 문득 텃밭을 가꾸고 농사를 짓는데 관심이 생길 수도 있다. 상대방에 대한 상상력만 잃지 않는다면 그다지 놀라운 일은 아니다. 그러니 어떤 일을 하든 간에 서로에게 너무 놀라지 않았으면 좋겠다. 비록 예상치 못한 일이더라도 크게 실망하거나 질투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꼭 한 가지 일만 죽어라 하라는 법은 없으니 서로의 시행착오에 관대해졌으면 좋겠다. 응원을 전할 마음의 여유가 없다면 적어도 비난하지 않기를 바란다.​


색다른 일에 도전한다고 선언하자 "나는 굳이 그렇게 시간 낭비하고 싶지 않아."라며 방어적인 태도를 취했던 당신, “ 친구로서는  좋은데 동료는 아닌  같다.”라며 “아이디어마다 하나같이 구리다.”라고 말했던 당신, 입사를 고민한다고 말하자 “그쪽은   번다던데 나중에 집이나   있으려나.”라며 굳이 걱정해주던 당신. 나에 대한 상상력을 빨리 잃어버린 탓에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만한 어록을 남겨준 사람들을 떠올린다. 가끔은 내가 실천하는 최소한의 예의를 상대방도 지켜주기를 바라는 욕심이 생긴다. 너무  욕심이 아니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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