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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델리보이 Feb 04. 2020

불편한 표정을 짓는 직원을 대하는 방법

당신은 아무 잘못이 없습니다.

난 3년 차 자영업자다. 3년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또라이 질량의 보존법칙'은 여전히 유효하다. 가게 문을 열고 들어오는 손님들의 걸음걸이나 눈빛만 보아도 85% 이상은 저 xx가 또라인지 아닌지 맞출 수 있을 정도의 정확도가 생겼다. 그러나 초면부터 그들에게 쌀쌀맞은 태도를 보이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일단은 그들도 고객이기 때문에.


얼마 전 시청엘 들렀다가 은행에 갈 일이 생겼다. 먼저 시청에서 잘 몰라서 얼타는 내 행동을 보고 얼굴에 짜증이 덕지덕지 붙은 공무원 아주머니가 '무신경한 태도'로 나를 응대했다. 곧 이어서 도착한 은행에서도 또 다른 '무표정의 아주머니'가 나를 반갑지 않은 표정으로 마주했다. 순간 화장실로 들어가 거울을 한번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 그렇게도 비호감처럼 보이나?'


외모는 달랐지만 그 두 분의 태도는 마치 같은 사람인 것처럼 동일했다. 몇십 년 동안 일이 손에 익은 탓인지 표정부터 손짓 눈빛 모든 게 심드렁했다. 그들에게는 일에 대한 애정도 손님에 대한 조금의 감사함도 느껴지지 않았다. 아무튼 떨떠름한 기분으로 집에 돌아왔다.


그리고 언짢은 기분을 가라앉히기 위해 한숨을 크게 몰아쉬었다.


'그래 좋은 게 좋은 거지.'


가 아니었다.


순간 이전에는 조용하던 열이 머리 끝까지 솟구침을 느꼈다. 다행히 피는 역류하지 않았다.

그 분노는 그 아줌마들이 아닌 끝까지 좋은 사람으로 보이려고 했던 나를 향한 분노였다. 



적당한 언짢음을 표출할 것.


생각해보자. 가게의 사장인 내가 만약 그 아줌마들처럼 손님들을 대했다면 어떤 일이 발생했을까? 분명 나이가 지긋한 손님들은 대놓고 면전에 불만을 표시했을 것이고,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모르는 젊은 친구들은 속으로 욕한 뒤 두 번다시 저 면상을 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결국 내가 애써 우리 가게를 찾아주는 손님들에게 그 아줌마들과 같은 태도로 접객을 했다면 시간이 지나 복리의 효과에 의해 가게 매출에 커다란 화를 입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의 생각을 나름대로 그들의 입장에서 생각해보았다. 먼저 그 두 아줌마들에게 시청이나 그 모 은행은 그들이 몸 담고 있는 회사지만 실질적으로 그분들이 운영하는 회사는 아니다. 그러므로 컴플레인이 들어와도 태도를 바꿀리는 없다. 왜냐하면 따박따박 받던 급여가 나오기 때문이다.


두 번째 그들은 왜 그러한 불편한 표정과 태도를 갖게 된 걸까? 그들의 행동을 옹호할 마음은 정말 눈곱만큼도 없지만 조금이라도 이해를 하려고 한다면 아마 수 십 년간 지속돼 온 진상들과의 신경전 때문에 이미 감정을 소모할 대로 소모해버려서가 아닐까? 그러나, 사실 내가 그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이것이다.


그래서 어쩌라고.


그래. 백번 양보해서 그들의 입장에 서보자. 진상들과의 전쟁을 치르느라 언젠가부터 더 이상 고객들을 향한 애정이나 반겨줄 마음이 사라졌다고 하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영업자인 나의 경우에는 다시 마음을 다잡고 밝은 얼굴로 다른 고객들을 반겨드려야 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재화 이외에도 좋은 서비스를 받을만한 자격이 있다. 난 그들 덕분에 먹고살기 때문이다. 반대로 이야기하면 그 아줌마들도 나 같은 고객 덕에 먹고사는 것이 아니던가.


결국 요지는 이거다. 그들이 지난날 어느 정도의 고된 감정노동을 했든 내 알바는 아니고, 나는 그곳에 즐거운 마음으로 발걸음을 옮긴 고객으로서 최상의 서비스를 받을 자격이 있다. 그들은 프로가 아니다. 내가 진상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반대로 그들의 눈치를 봐야 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여기에다가 억울함을 토로하고 있는 나는 확실히 진상은 아니다.) 그들은 회사나 집단의 암덩어리 같은 존재이다.  그런 불편한 표정을 갖고 있는 직원들 때문에 나 같은 선량한 피해자들은 회사에 등을 돌리거나 '역시 공무원 xx들은..'이라는 편견을 가지게 될 것이다.(실제로 안 그런 직원들도 많다.)


이제는 변해야 할 때다. 우리가 왜 그들의 아마추어와도 같은 피해의식 때문에 언짢은 기분을 느껴야 하는가.굳이 판을 뒤집기 위한 전투태세를 갖추고 입장할 필요는 없다. 그래도 그들이 무신경하게 던지는 태도에 대해 불만을 표시할 정도의 긴장감으로 무장한 채 입장할 필요는 있다. 분명 마음가짐만으로도 나의 대처방법이 달라질 것이다.  지난날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유야무야 넘어갔던 우리는 이제 없어야 한다. 내일은 굳이, 내 귀한 시간을 할애해서, 두 곳에 컴플레인을 넣을 생각이다.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으면 누구나 그렇듯 자신이 옳았다고 생각할 것이다. 이번만큼은 아니다. 이번에는 그들이 틀리고 내가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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