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키는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에서 작가가 되기 위해 재능은 필수적인 전제 조건에 해당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다음에 집중력과 지속력을 이야기했지요. 단언하듯 말하는 경우가 잘 없었던, 매사에 단정적인 판단을 유보하고 이런저런 가능성을 열어두는 태도를 가졌던 그가 작가가 되기 위해 재능은 필수적인 것이라고 딱 잘라 말하는 것을 읽으며 ‘역시 그런 거였군’ 하며 마음 한편이 시렸던 기억이 명확합니다.
재능이 필수적이다, 이건 전제조건과도 같다는 말을 들으며 아무런 상처를 받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충분한 재능을 가진 사람일 겁니다. 평범한 재능을 가지고 꾸역꾸역 앞으로 걷고 있는 저 같은 사람은 다릅니다. 세상에 떠도는 토끼와 거북이 이야기 따위를 들으면서도 토끼가 낮잠을 자지 않는 날이 있을 것 같아 두렵습니다. 실제로 미친듯한 재능을 가지고도 밤새 연습하는 이들을 가끔씩 보아왔습니다. NBA의 코비 브라이언트 같은 사람이 그런 예가 되겠지요. 그런 사람들이 수도 없이 많으니, 어떤 영역이건 재능만으로 성큼 앞서나갈 수 있는 시기는 그리 길지 않습니다.
‘노력도 재능이다’ 이런 얘기들도 많이 하던데, 무슨 뜻인지는 잘 알겠지만 백 퍼센트 동의하지는 않습니다. 끈기 있게 노력하는 태도는 그 사람의 성격이나 기질 같은 것입니다. 음악적인 재능과는 관계가 없는 다른 변인입니다. '공부 잘하던 애들이 뭐든 잘하더라' 하는 어른들의 말은 그들이 가진 삶의 태도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그런 태도의 동력이 승부욕 또는 지기 싫어하는 성격이건 그저 성실함이건 말이죠. 그릿grit이라는 개념으로 그런 근성 같은 것을 개념화한 책도 있었습니다(아직 읽지는 않았습니다).
정작 재능이 넘쳐나는 이들에게 재능에 관한 이야기를 하면 언짢아하는 경우도 제법 많습니다. 그들도 재능만으로 모든 것을 이룬 건 아니고, 당연히 꽤 많은 노력을 들였기 때문입니다. 성실하게 노력한 결과가 폄하당하는 기분이 드는 것이겠지요. 하지만 '열심히 했지만 정말 안 배워지더라, 몸이 거부하는 느낌이었다' 같은 걸 제대로 겪어보지 못한 그들입니다. 노력해서 배워낸다면 이미 얼마간의 재능이 있다는 얘기입니다.
우리가 보통 '재능이 있다, 없다'와 같이 표현하고 살기 때문에 쉽게 오해에 빠지는 것은 아닌가 생각합니다. 재능은 on/off 스위치가 아니라 dimmer 스위치 같은 것이라고 봅니다. '있다, 없다'와 같이 이분법적인 게 아니라 '많고 적은 것', 다시 말해 정도의 차이겠지요.
저는 재능은 함수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투입한 노력의 양이 같다면, 재능의 크기를 만나 다른 성취를 얻게 됩니다. 조금만 노력하면 성큼성큼 앞으로 나아가는 이들의 원동력은 재능의 크기, 함수의 차이입니다. 반면 재능의 크기가 조금 차이가 난다 하더라도 투입하는 노력의 양을 압도적으로 늘리면 얼추 비슷하거나 어쩌면 더 큰 성취를 이룰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 이들의 성공신화를 세상은 찬양합니다. 노력으로 극복할 수 있는 재능의 차이, 그것이야말로 모두에게 큰 격려가 되기 때문이겠지요. 하지만 얼마간 인생을 살아내고 보면 꼭 그렇지는 않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모든 영역에서 고르게 재능을 가지고 있기보다는, 뛰어난 재능을 가진 부분과 그렇지 않은 부분이 뒤섞여 있습니다. 현명한 사람이라면,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재능의 힘을 빌어 연습할 시간을 벌 것입니다. 어떤 것들은 조금만 연습해도 바로바로 결과물이 보일 것이니까요. 그렇게 해서 남은 시간을 재능이 부족한 영역을 채워넣는데에 집중할 것입니다. 단정하고 탄탄한 연주력을 가진 이들은 아마도 이런 부류일 것입니다.
하지만 자기 자신에게 심취한 사람이라면, 자기 자신에게 주어진 것에 집중할 것입니다. 부족한 부분은 약간 흠처럼 남겨놓더라도, 자신 안에서 일어나는 놀라운 일을 마음껏 누릴 것입니다. 명확하게 오리지널 한 자기의 목소리를 찾아낸 이들은 아마 그랬을 것 같습니다. 젊은 시절에 활짝 꽃을 피운 아티스트들의 음악을 들으며 완벽하다고 느끼는 것은, 그 작품 안에 흠이 없어서가 아니라 굳이 지금 상태에서 무언가를 바꾸지 않아도 좋을 것같이 느껴지는 완결성이 있기 때문일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