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도권이라고 부르는 circle of 5th는 실용음악 혹은 재즈를 전공하는 이들에게 아주 친숙한 개념인데, 살짝 패러디 비슷하게 제목을 붙여보았습니다.
학생들과 수업을 하다 보면 종종 “어렵네요.”하는 대답을 듣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근데 내 수업은 대부분 어렵고 고차원적인 이론을 다루지 않고(나도 잘 모른다), 엄청난 기술적인 숙련도를 요구하지도 않습니다(나도 못 치니까). 곡도 대체로 평이한 스탠다드 곡들을 선택해서 연주하거나, 학생의 발달단계에 따라 적당한 난이도로 맞춰가다 보니 도무지 알 길이 없는 미궁과도 같은 곡은 할 일이 없습니다(내가 적당히 연습해서 소화할 수 있는 수준으로 고른다). 그러니 어렵다는 말을 들으면 잘 납득이 가지 않곤 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일을 여러 번, 자주 겪다 보니 최근에 들어서 어떤 상황을 학생들이 어렵다고 느끼는지 대충 알 것 같습니다. 음악적으로 불확실한 상황, 여러 갈래의 선택이 눈앞에 놓여있을 때 자신의 직감을 믿고 그냥 가보는 것을 어려워한다고 할까요?
아무리 기술적으로 어려운 곡이라도 따라 해야 할 대상이 있으면 고민의 여지가 사라집니다. 그저 성실하게, 듣고 또 들은 다음 반복해서 연습을 쌓아가다 보면 지난주에는 절대 쳐낼 수 없던 구간이 갑자기 해결되곤 합니다. 그러면 이건 어려운 일이 아닌 게 됩니다. 꾹 참고 열심히 해내는 인내심의 싸움인 거고 그것에는 다들 익숙합니다. 경쟁사회니까, 노력해서 성장해야 한다는 세상이니까요.
하지만 지금 여기에서 너는 어떤 느낌인가, 뭘 치고 싶은지 마음껏 상상해 보고 표현하라는 주문을 하는 순간 그들은 갑자기 막막해지는 경험을 하는 모양입니다. 이건 입시에서도 그렇고 수업 시간에서도 그렇습니다. 머릿속에 들려오는 희미한 소리를 꼭 붙잡고 쫓아가보라는 주문은 막연하기에 어려운 질문이 됩니다. 사실 가장 쉬운 질문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지만요.
귀 기울여 듣고 느끼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어떤 것이 느껴질 때까지 자신에게 시간을 충분히 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마음속에 아주 작은 진동이 생길 때 그걸 마음껏 누리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게 기쁨이건 슬픔이건 불편한 긴장감이건 무엇이 되었건 말입니다. 그러고 나서 이 음악에 담긴 그 어떤 것이 나를 이런 감정에 빠져들게 만들었는지 돌이켜 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음악을 만들어가는 이들에게는 필수적이고, 감상자에게도 즐거운 상상과 추리의 과정이 됩니다. 그리고는 그 감정을 일으킨 요소를 선택하여 표현하는 것, 아마도 이건 창작자(연주자나 작곡자 모두를 포함한)에게만 부여된 특권일 것입니다.
듣고, 느끼고, 판단하고, 선택하고, 표현하는 것은 무한히 반복됩니다. 스스로 표현한 결과물을 다시 듣고, 느끼고, 판단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 판단의 결과로 다음의 선택과 표현은 달라질 것입니다. 혹은 더욱 강화될 것입니다. 타인의 창작물을 듣고, 느끼고, 판단한 것은 나의 선택과 표현에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이런 경험을 반복적으로 쌓아온 이들은 선택의 순간이 주어졌을 때 고민의 시간이 줄어듭니다. 이미 여러 번 판단해 보았고, 그것을 통해 좋은 결과도 만나 보았고 그다지 좋지 않은 결과도 받아 들어보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저 그런 결과라고 해도 크게 문제는 없으며, 그다음에 다시 좋은 선택을 해내면 된다는 것을 체득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지만 듣고, 느끼고, 판단하는 것을 타인에게 위탁한 채 연습에만 매진해 온 학생들은 선택과 표현을 요구받을 때 “어렵네요.” 하고 대답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 어린 시절부터 듣고, 느끼고, 판단하고, 선택하고, 표현하는 것에 익숙해졌으면 합니다. (1)듣고 (2)느끼고 (3)판단하고 (4)선택하고 (5)표현하는 5단계, 제법 그럴듯 하지 않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