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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즈옹 Jan 05. 2020

신의 그늘

<신의 은총으로>, 프랑소와 오종, 2020. 

  가톨릭을 독실하게 믿으며, 아내와 다섯 명의 자녀들과 함께 신앙생활을 이어가고 있어가고 있는 ‘알렉상드르’(멜빌 푸포)는 모범적인 남편이자 아버지로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알렉상드르는 자신의 종교에게 꼭 받아야 할 대답이 있다. 그래서 그는 바르바랭 추기경에게 편지를 쓴다. 어렸을 적 자신을 성적으로 학대한 프레나 신부가 왜 아직도 아이들 곁에서 미사를 보고 있는지, 그리고 어째서 성직을 박탈당하지 않았는지 묻는다. 이렇게 알렉상드르는 30년의 침묵을 깨고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그 목소리는 또 다른 침묵들을 깨나가기 시작한다.

  아내와 딸들과 함께 단란하게 가정을 꾸려나가고 있는 ‘프랑수와’(드니 메노세)도 알렉상드르와 같이 아동시절에 프레나 신부에게 성 학대를 당했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그는 그 일로 종교를 믿지 않게 되었으며, 종교와 멀어져 있던 그는 ‘당연하게도’ 프레나 신부가 파직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종교 내에서의 처벌을 요구하던 알렉상드르가 종교 내부의 지지부진한 움직임을 참지 못하고 검찰에 고소를 걸었을 때, 프랑수와는 알게 되었다. 프레나 신부가 여전히 아이들 곁에 있다는 사실을. 그리고 가톨릭을 등지고 살았던 그는 알렉상드르보다 강경하고 대외적으로 이 일을 퍼뜨리기 시작한다. 성 학대를 당했던 당시 부모님과 리옹 교구가 이 문제를 두고 나눴던 편지들을 언론에 공개하는 것을 시작으로 종교 밖에서 종교 안으로 진실을 요구하는 압박을 가한다. 

  활동력 있는 프랑수아를 중심으로 알렉상드르를 비롯한 프레나 신부에게 성 학대를 입은 이들이 모여 ‘라 파롤 리베레 (해방된 목소리)’를 결성한다. 그곳에 ‘에마뉘엘’ (스완 아르라우드)가 찾아온다. 그는 자살하지 않고 살아 있는 사람들 중에서 프레나 신부에게 가장 큰 학대를 당했던 소년들 중 하나로, 그의 삶은 앞의 두 사람과는 다르게 위태롭다. 그 사건을 마주할 때마다 간질발작을 일으키고, 프레나 신부의 학대의 영향으로 성기가 휘는 성기만곡증을 앓고 있으며, 그의 연애관계도 서로를 붙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해치는 방식으로 유지되고 있다. 영화는 알렉상드르의 담담하고 냉정한 목소리, 프랑수와의 강경하고 단단한 목소리, 그리고 어릴 적 상처로 인해 여전히 흔들리고 있는 에마뉘엘의 작은 목소리까지 진실을 바라는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부드럽게 연결해낸다. 다양한 모습으로 각기 다른 목소리로 그들은 하나의 말을 한다. 가톨릭교회는 아동들이 신부에 의해 성학대를 당했다는 진실을 받아들이고, ‘행동하라’라고. 

  하지만 바르바랭 추기경은 기자들 앞에서 30년간 은폐되어온 프레나 신부의 아동 성학대 사건에 대해 이렇게 발언한다.     


“신의 은총으로 공소시효도 지났습니다.” 

    

  기자들은 야유가 섞인 탄식을 내뱉는다. 이 한 마디로 ‘신’은 나락에 떨어졌다. 피해자들이 진실의 빛을 밝힐 때마다 그들은 신의 그늘로 숨어들었다. 그들이 신의 그늘 속으로 숨어 자취를 감추려할 때마다 드러나는 것은 지극히 인간적인 그들의 어두운 단면들뿐이다. 그늘 속에서 그림자들은 완벽하게 모습을 감출 수 있다. 다만 그것은 빛이 있기 전의 일이다. 빛이 그늘을 들춰낼 때, 추악한 것들이 숨어들 자리는 더 이상 없다. 

  피해자들이 진실의 빛을 들었을 때, 드러난 것은 바르바랭 추기경과 프레나 신부를 중심으로 한 돈과 신자들로 묶인 관계였다. 이 관계는 신성을 논하기에는 너무나 속물적이다. 인간적인, 인간적이다 못해 속물적인 관계가 신성은 물론이거니와 진실, 그리고 사람을 모두 더럽히고 있었다. 하지만, 가톨릭교회는 물론, 바티칸까지 이 일에 대해 쉬쉬하는 현실을 마주한 영화 속 ‘라 파롤 리베레’의 에마뉘엘의 흔들리는 눈이 닿은 성당의 모습은 마지막 구원을 바라는 것처럼 보인다. 오직 진실만을 바라는 그들의 마음이 닿기에 성당은 너무나 높은 곳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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