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소소영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즈옹 Mar 15. 2024

<악마는프라다를입는다>가 주는 어떤 안락함들에 대하여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데이빗 프랭클, 2006

  * 사진출처 : 네이버 영화


  요즘 집에서 혼자 식사를 할 때면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를 틀어놓는다. 메릴 스트립이 직장에서 독설을 날리며 사람들 피를 말리는 모습이나 앤 해서웨이가 그 장단에 맞춰서 우왕좌왕하며 고생을 하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 나는 일종의 안락함을 느낀다. 주인공의 마음에 공감하지 못하는 비정한 소시오패스라서 그런 건 아니고, 18년 전의 영상이 주는 그때는 세련되었지만, 지금은 예스러운 부분들 때문이다. 

  이를테면, 살짝 노란 빛이 도는 조명들과 지금과는 확연히 다른 취향의 세트 디자인 그리고 소품으로 등장하는 옷들의 유행 같은 것. 그리고 여기에 앳된 배우들의 모습이 더해지면 영화는 어떤 시절을 밀봉해 담고 있는 듯한 기분을 들게 만든다. 감독도 배우도 그리고 그걸 보는 어느 누구도 붙잡지 못했던 시절을. 

  필름으로만 무언가가 기록되던 때에는 그조차 풍화된다는 것에 아련한 마음을 가지기도 했지만, ‘디지털’로 ‘리마스터’를 하는 요즘에는 시절을 영구적으로 담아냈다고 봐도 무방하지 않을까. 매체가 진화할 때마다 계속해서 리마스터 해나가면 되는 일이니까. 어쨌거나 그렇게 밀봉된 시절은 2024년 3월의 어느 날 혼자 식사를 하고 있는 나에게 실시간 전송되어 2006년의 화려하게 조작되고 편집된 일부를 보여준다. 공간 그리고 시간에서까지 멀리 떨어져버린 나는 이제 이 영화의 거의 모든 면모에서부터 자유롭다. 

  하지만 나는 비정한 소시오패스는 아니기 때문에 사건으로부터는 자유롭지 못하다. 여전히 취업은 힘들고, 과도한 지시를 하는 상사의 요구를 참아내며 본인을 깎아내 노동한 것에 대한 정당한 보상을 받지 못하며 사회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주변에 왕왕 있다. 영화 속에서 유일하게 풍화되지 않은 요소가 있다면 이 지점이지 않을까. 그래도 영화에는 준비된 해피엔딩이 있다. 18년 동안 좀처럼 변하지 않은 노동 현실과는 전혀 다른, 행복한 결말이 영화에서 현실을 발라내 내가 편안하게 메릴 스트립의 갑질과 앤 해서웨이의 을의 삶을 웃어넘길 수 있게 한다. 그렇게 오늘도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가 주는 이런저런 안락함 사이에서 식사를 마쳤다. 

매거진의 이전글 나의 양심은 얼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