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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Bs Sep 23. 2020

[OB'sDiary] 나의 라임 오렌지 고양이 01

너와 나를 가족으로 만들어준 서툰 판단과 우연

중고등학생 때는 학원이나 야자를 마치고 늦은 시간에 집에 돌아왔을 때 나를 반겨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게 참 슬펐더랬다. 하루의 끝에서 바라본 우리 집 창문은 늘 검은색이었다. 맞벌이를 하시는 부모님은 늦게 들어오실 때가 많았기 때문에 불이 꺼진 집에 혼자 돌아와 괜히 온 방에 불을 켜고 군것질을 하며 돌아다니곤 했다. 우리 엄마도 다른 엄마들처럼 집에 있었으면 좋겠다는 철 모르는 생각은 일찌감치 접어야 했던 내게 가장 간절했던 건 '강아지'였다. 내가 아무리 늦게 돌아와도 언제나 문 앞까지 꼬리를 흔들며 뛰쳐나와 나를 반겨줄 강아지. 그래서 초등학생 때부터 강아지를 키우자고 졸라댔다. 하지만 그렇게 비어 있는 시간이 많은 집에서 강아지는 어떻게 키울 수 있었겠는가. 그래서 다짐했다. 대학생이 되면 꼭 강아지를 키우겠다고. 대학생이 되면 시간도 많아지고, 아르바이트도 해서 강아지 양육 비용도 전부 책임질 수 있을 줄 알았지 뭐야.


드디어 대학교 입시가 끝나고 이제 할 일은 입학만 남았던 시절, 나는 엄마에게 선전포고를 했다. 강아지를 키울 거라고. 대신 엄마가 입양비만 내달라고. 엄마는 동의도 거절도 하지 않으셨다. 그럴 때는 엄마를 설득해서 동의하게 만들면 된다는 걸 알고 있었던 나는 무작정 강아지 입양 카페를 뒤지기 시작했다. 털이 보송한 포메라니안을 너무 키우고 싶었다. 하얗고 작은 털 뭉치가 뽈뽈뽈 돌아다니는 걸 볼 때마다 심장을 움켜쥐며 생각했었다. 꼭 저 포메라니안을 키우고 말겠다고. 그러나 그 '하얗고 작은 털 뭉치'는 너무 '비쌌다'. 요즘도 동물을 '분양'한다고 표현하며 금액을 매겨 값어치를 따지는 입양 문화가 남아 있긴 하지만, 그때는 '입양'이라는 표현을 쓰는 사람이 지금보다 더 적던 때였다. 나의 동물권 감수성도 딱 그 정도여서, 내게 가장 중요한 기준은 미모와 나이였다. 무조건 예쁘고 작고 어리고 건강할 것. 그래서 아무리 포메라니안이 비싸다고 해도 내가 원하는 조건을 갖춘 강아지를 찾는 것을 포기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입양 카페를 몇 날 며칠 뒤지던 나는 결국 하루아침에 강아지를 포기하고 고양이 게시판을 들락날락거리게 된다. 이유는 정말 단순했다. 고양이는 싼데도 예쁜 아이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나의 희망사항이 '예쁘고 어리고 작은 포메라니안'에서 '예쁘고 어리고 작은 고양이'로 바뀐 것이다.


지금의 나로서는 창피해서 입 밖으로 꺼낼 수도 없는 말이지만, 그때의 솔직한 이유는 정말 그랬다. 무조건 예쁜 아이만을 데려오고 싶은데 50만 원이나 되는 거금을 지불할 수는 없어서 고양이에게도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때마침 내가 가장 좋아하던 아이돌이 고양이를 기르기 시작해 고양이에 대한 편견이 사라지기도 했던 시기였다. 나는 원래 이유 없이 고양이를 싫어해 고양이가 어떻게 생겼는지 자세히 들여다볼 생각도 하지 않았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내 오빠의 트위터에 낯선 고양이가 올라오기 시작했고 그 고양이가 정말 말 그대로 미친 듯이 귀여워버렸던 것이다. 그 이후 내 안에서 차츰 낮아진 고양이에 대한 벽은, 입양 카페의 고양이 게시판에서 지금은 나의 가족이 된 한 노란 아깽이의 사진을 마주친 순간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우연히 클릭한 글 속에 태어난 지 2달 남짓 된 아깽이의 사진이 네다섯 장 있었다. 그중에 세 장은 얼굴을 잘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초점이 흐려진 사진이었다. 사진 아래엔 보호자의 글이 짤막히 적혀 있었다. "너무 빠르게 움직여서 사진을 제대로 찍을 수가 없네요." 나는 흔들린 사진 속에서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있는 아깽이를 보자마자 생각했다. 얘를 데려와야겠다. 얼굴과 색깔, 무늬 등이 예뻐 보이긴 했지만 확신할 수는 없었다. 제대로 나온 사진이 거의 없었다. 그렇게 까다롭게 외모를 고르던 나는 온데간데없고 그저 사진 한 장 제대로 찍을 수 없을 정도로 활동적인 저 고양이가 건강한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는 사실이 마음에 들어 입양을 결심하게 된 것이다. 바로 보호자에게 연락을 해서 약속을 잡았다. 마음이 급해서 그때 가장 빠르게 만날 수 있는 날인 1월 2일에 고양이를 데리러 가기로 했다. 입양비는 9만 원. 사실 고양이는 4만 원이었는데, 9만 원을 내면 고양이가 쓰던 화장실과 먹던 사료를 준다고 했다. 엄마를 겨우 설득해 9만 원을 챙겨 들고 혼자 버스를 타고 안양으로 갔다. 버스를 타고 가는 40분 남짓한 시간이 내 인생에서 그 어떤 불안도 긴장도 없이 가장 기분 좋게 설렜던 시간이었다.


약속 장소에 도착해 보호자를 기다린 지 몇 분쯤 지났을까. 고양이 소리와 함께 그가 나타났다. 내 또래 같았다. 곧 군대에 가야 해서 고양이를 보낸다며 자신의 까까머리를 머쓱하게 만졌다. 군대에 갈 놈이 고양이는 왜 입양했냐고 물어보고 싶었지만 참았다. 작은 가방에 담겨 나온 고양이는 연신 삐약삐약 울어댔다. 정말 너무 예쁘고 사랑스러웠다. 아, 아기 고양이란 이런 것이구나. 애교가 없다고 엄마 아빠에게 타박을 들을 정도로 무뚝뚝한 내 입에서 절로 우쭈쭈 소리가 나왔다. 그 작고 예쁜 아이를 조심스레 품에 안아 들고 보호자에게 이름과 생일을 물었다. 그런데 까까머리 보호자는 이름도 새로 지어주라고 했고, 생일도 모른다고 했다. 10월 말쯤에 태어난 것으로만 알고 있다고. 엄마 아빠는 어떤 고양이냐고 했더니 그것도 모른다고 했다. 이렇게 우는 거 보니까 살짝 미안하다는 말을 덧붙이며. 아마 얼떨결에 고양이를 떠맡게 돼 어쩔 줄을 모른 채 데리고만 있었던 것 같다.(그래도 지금 생각하니 길에 내버리지 않고 입양 카페에 손수 글을 올려 입양을 보내준 것만도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까까머리 보호자는 내게 딱 한 가지 부탁을 했다. 집에 가면 몇 시간 혹은 며칠 동안 숨어 있을 수도 있는데 억지로 꺼내지 말아달라고. 적응이 되면 알아서 나올 거라고.


그렇게 보호자와 헤어진 후, 나는 택시에 고양이 화장실과 사료를 싣고 고양이를 품에 안은 채 집으로 돌아왔다. 고양이는 가는 내내 쉬지 않고 울었다. 삐약삐약. 먕먕. 매옹매옹. 가는 도중에 엄마의 전화를 받았는데, 엄마는 전화를 받자마자 이렇게 말씀하셨다. "오고 있어? 어머 이거 고양이 소리야? 어머 애기야~!" 내가 고양이를 데리러 갈 때만 해도 탐탁지 않아하셨던 엄마는 아기 고양이의 우렁찬 목소리 한 방에 고양이를 '애기'로 받아들이셨다. 드디어 집 앞에 도착했을 때, 엄마는 버선발로 달려 나와 "어머 우리 애기 왔어~"라며 고양이를 반겨주셨다. 엄마와 함께 고양이를 집에 들여놓고 짐을 옮겼다. 너무 긴장됐다. 고양이가 어디로 숨어버리진 않을까. 무서워서 울진 않을까.


고양이는 우리 집에 도착하자마자 삐약거리며 온 집안을 탐험했다. 느릿하고 조심스러운 걸음걸이로 세상의 모든 것을 경계하며 집안 곳곳을 살폈다. 5분이나 흘렀을까. 새 집 탐방을 벌써 끝낸 것인지 경계하는 발걸음도 잦아들고 울음소리도 멎었다. 햄스터를 키울 때 햄스터가 두루마리 휴지심을 좋아했던 게 기억이 나서,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내 방을 두리번거리고 있는 고양이에게 휴지심을 굴려줬더니 그 휴지심을 안고 구르고 난리를 치며 혼자 신나게 놀았다. 어쩔 줄 몰라하며 혼자 점프하고 뛰어다니며 놀다가 뒤로 넘어져 엉덩방아를 찧기도 했다. 그 모습을 엄마와 함께 바라보며 어찌나 웃었는지. 전부 기억난다. 우리 집에 저렇게 사랑스러운 속도로 적응해준 저 작은 아기 고양이가 어찌나 대견하고 고마웠는지.


가족이 되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고양이가 휴지심을 안고 굴렀을 때, 그 모습을 보며 엄마와 내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처럼 웃었을 때, 단지 그 한 순간이었다.


1kg이 채 되지 않았던 노란 아기 고양이




- 2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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