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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체다 Apr 03. 2022

영화 [레벤느망]

2022.04.03 명필름아트센터

​영화 [레벤느망]

감독: 오드리 디완

출연: 아나마리아 바토로메이


마음을 단단히 먹고 영화관에 들어섰지만 충격적이었다.

소설 원작 영화인 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작가의 자전적 에세이가 원작이었다. 책 제목도 [사건]이다.

영화 역시 현실적이다. ‘사건’ 그 자체이다. 여성이라면 누구든 늘 벗어날 수 없는 임신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가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1940년생. 대학생으로 1960년대를 살던 ‘안’. 낙태가 불법인 시대를 살며, 과거 얼마나 많은 여성들이 제도 아래 고통 받고 스러져갔는지를 영화는 우리 눈 앞에 생생하게 펼쳐보인다. 한편 지금 2022년을 사는 우리도, 과거와는 많이 달라졌다고 해도 여전히 같은 고민과 고통을 감내하고 산다. 영화 초반에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 프랑스 영화라는 데에서 오는 선입견이랄까, 영화의 모든 아날로그한 느낌 (그들의 복장, 펜으로 필기를 하는 모습, 공간 분위기, 필름의 색감 등등)이 프랑스 영화의 특성이라고 생각했다. 오히려 요즘 아름답다고 하는 유행과도 맞닿는 레트로함이 있어서 영화 초반까지는 현대를 그린 영화인 줄 착각했다. 중반에 안이 병원을 찾으며 그녀의 출생연도가 불리자 과거 시대의 이야기인 것을 깨달았다. 그만큼 현재의 이야기라고 느낄 만큼 현실감있게 다가왔던 건, 여전히 지금도 여성에게는 벗어날 수 없는 공포와 굴레가 원치 않는 임신이기 때문일 것이다.


​소설 소개 글을 알라딘에서 찾아 보았더니 더 명확하다.

작가는, 섹스를 할 때는 자신도 남자와 다를 바 없다고 느꼈지만
임신을 하고 나서야 자신이 “여자라는 사실”을 절절히 깨닫게 되었다고 회고한다.
-[사건] 알라딘 책소개 중-


섹스의 즐거움에 대한 욕망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질 수 밖에 없는데, 그 너머를 생각하면 여자와 남자는 죽었다 깨어나도 모를 다른 길에 서 있다. 섹스를 하기 전이나 후에 늘 고민하는 지점은 임신하면 어떡하지에 대한 고민일 것이다. 피임기구와 약을 쉽게 구할 수 있는 시대를 살면서도, 만반의 준비를 하고 방어를 하고서도 혹시 티끌만한 확률에 걸려 임신하면 어쩌지?라는 생각을 수십번 수백번 하는 게 여자인데. 매체, 영화나 드라마, 음악, 예술 어디서든 사랑과 섹스를 쉽게 또는 휘황찬란 아름답게 이야기한다. 그 뒤에 인생의 항로가 바뀔만큼 커다란 고민과 난관을 오롯이 겪는 것은 오직 여자다.

지금도 이러한데, 과거 얼마나 많은 이들이 고통받고 소리내어 외치지도 울부짖지도 못하고 심하게는 목숨을 잃었을까. 착잡해졌다.


​‘여자가 집에만 있는 병’ 에 걸렸었다고 교수님께 말하는 안.

병원 침대에 누워 의사에게 말하는 안.

‘나중에 언젠가는 아이를 낳고 싶어요. (하지만 지금은 아니에요) 지금 낳으면 아이를 원망할 것 같아요. (아이를) 사랑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고요.’

그것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여전히 유효한 대답이다. 누구도 아이를 낳아 행복하게 잘 키울 수 있는 제도와 사회적 분위기를 만들어주지 않고서, ‘낳을 때가 되면 낳아야지.’라고 말한다. 낳기만 하면 갑자기 아이를 잘 키울 여자는 없다. 몸이 부서져라 육체적, 정신적 고통을 겪으며 아이를 낳으면 이제 또 키울 일이 남아있다. 단순히 결혼에서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서막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오롯이 모든 고통은 홀로 짊어져야 하는.


​이 영화를 보는 관객은 이미 관심이 있어 본 것이겠지만, 영화라는 점에서 에세이보다는 진입 장벽이 좀 낮지 않을까? 잘 모르겠다. 아마 많은 이들이 볼 대중적인 영화는 아니지만 많은 사람들이 보고 알았으면 좋겠다.


​어디를 갔고 어떻게 시간이 흐르고의 연결이 모호하게 장소가 뛰어넘는 편집도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시간경과는 자막으로 짚어주며 시간의 흐름을 명확하게 보여준다. 영화 내내 인물들은 아무도 소리지르지 않지만 잔잔한 화면 가운데 현실, ‘사건’이 가장 강렬하고 충격적으로 다가왔고 자주 양 관자놀이에 손을 올려붙이고 긴장하며 혹은 탄식하며 봤다. 스포일러라 더 얘긴 안하겠지만 안이 마지막에 듣는 대사도 그전에 누군가에게 들은 말과 연결되고, 임팩트가 있다. 화면에 비치는 안의 그림자 속 모습이나 창문 햇살을 받은 옆 얼굴이나 자주 보이는 뒷모습에서도 많은 게 느껴졌다. 영화의 많은 장면들이 낭비 없이 잘 축약하고 정제하여 포인트를 강렬하게 짚으며 보여준다는 느낌, 세련된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무엇보다 그런 영화적 감상은 현실이라는 무게 앞에 짓눌린다.


​배우 아나마리아 바토로메이의 창백하지만 단단한 그 얼굴이 좋았다. 실재했던 사건은 그 자체만으로도 큰 힘을 갖지만, 그것을 우리의 현실로 아프게 다가오게 하는 것은 결국 감독과 배우의 역할이 크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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