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4.07
안방에 있는 엄마의 핸드폰 벨이 울렸다. 아빠와 엄마는 나이 탓에 귀가 어두워져 큰 소리여야 들으시기에 전화 온다고 알려드렸다. 엄마는 070(스팸전화)일 거라고 했다. 이 시간에 맞춰 늘 ‘안부 인사’ 전화가 온다고 했다. 받더니 ‘어~ 잘 지내니?’ 라고 하시는 엄마. 알고보니 동생이었다… (그렇다 이렇게 부모님께 전화를 안하는 나와 동생이다.)
전화의 이유는 결혼 준비 중인 동생이 상견례 날짜를 언제쯤 할까 하는데 괜찮냐는 내용이었다. 상견례 이후엔 엄마와 시어머니의 한복을 대여하러 가자는 얘기도.
거실에 있던 내게 아빠가 말한다. 너는 어떻게 생각하니? 이미 엄마에게 전해 들어서 아는 내용이긴 한데, 얼마전 아빠가 오랜만에 친구분을 만났는데 둘째딸의 결혼 소식을 전하니 친구분이 예단, 예물, 하다못해 시부모님께 양복 한 벌 안 해드리는 게 말이 되냐는 의문을 가지셨다는 거다. 아빠는 솔깃해서 집에 돌아와 엄마한테 전했고, 엄마도 딱히 그런 생각이 없다가 혼란스러워져 동생에게 말했나보다. 동생은 왜 그런 ‘옛날 사고방식’을 듣고 휩쓸리냐며 듣지 않으려 했다나. 엄마가 그때 내게 의견을 물어봤을 때도, 오늘 아빠가 내게 의견을 물어볼 때도 내 대답은 같았다. 왜 꼭 해줘야하지? 각자 자기 부모님께 알아서 해드리면 되는 거 아닌가? 왜 상대편에 해주고 다시 또 어떻게 보답을 받나 고민할 상황을 만들지?
원래 동생은 결혼식을 올리지 않고 가족끼리 식사를 하는 자리만 만들 생각이었다. 하지만 처음 동생과 동생 남자친구분, 우리 엄마, 아빠, 그리고 내가 같이 만난 자리에서 결혼식을 올리지 않을 계획이라는 얘길 들은 아빠는 난처함을 토로했다. 그래도 결혼식을 안 올리는 건 아니지 않나? 여자라면 결혼식 드레스나 아름다운 순간을 남기고 싶은 로망이 있지 않나? 라는 것이다.
나는 동생의 허례허식 없고 일하거나 소소한 취미 외에는 집에 늘어져있기를 좋아하는 만사 귀찮아하는 성격이라는 걸 알기에 결혼식도 부담스러울 것이라는 느낌이 왔다. 나나 동생이나 뭐 인싸도 아니고 조용한 스타일이라 도대체 그 많은 하객들을 어떻게 불러모을지 고민했으리라 충분히 이해가 됐다.
아무튼 동생 남편될 분은 그 자리에서 현명하게(?) 자기들 뜻대로 할 생각은 전혀 없으며 결혼식을 올리겠다고 했다.
집에 돌아와 아빠의 이야길 들어보니 아빠의 속마음은 따로 있었다. 오랜 친구들 다섯명? 열 명은 결혼식에 뛰어올 거라는 심산. 식사만 하는 자리를 만들어도 어떻게든 찾아와 축하해줄 거라는 것. 그간 뿌린 돈이 너무 많다는 것. 뭐 그런 이유였다….
그날 그러면 안됐지만 나도 모르게 처음으로 아빠한테 짜증을 냈다. 다음날 죄송했다고 사과하긴 했지만… 그건 아빠 좋자고 결혼식 올리라는 거 아니냐고. 어찌됐든 동생은 결혼식을 올리기로 결심했고 당연히 스몰 웨딩은 알뜰하고 합리적인 걸 추구하는 동생 성격에 보통의 대중적인 웨딩보다 돈이 많이 들 거라 선택지 바깥이었던 것 같다. 그렇다고 디자인을 전공해서 재능과 열의가 넘쳤던 내 친구의 사례처럼 정말 소규모로 자기가 음식 업체를 선정해서 부르고, 버진 로드를 꾸미고 결혼식 장식을 만들어 달고 현수막을 주문해 걸고 할 기력과 의욕이 없는 동생인 걸 너무 잘 알기에, 동생의 선택은 일반적인 웨딩이었고 그 많은 하객을 부를 수도 없을 텐데 지불해야하는 비용이 아까워 한번은 엄마에게 푸념을 한 모양이었다.
오늘도 엄마에게 회사 일도 바쁜데 결혼 준비까지 너무 힘들어서 빨리 결혼식이 지나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나. 그러나 저번에도 이번에도 아빠의 한결같은 대답. ‘그럼 그냥 결혼식 하지 말자고 해~!’
하지만 저 말이 빈말이라는 걸 나는 안다. 휴… 모르겠다. 나는 사실 그날 아빠에게 화를 내며 이제 나는 내 결혼식도 아니고 동생의 결혼식인데 더 이상 의견을 내지 않겠다며 선언했었다. 하지만 자꾸만 옛날의 사고방식으로 말하는 아빠와, 그렇지 않지만 주변 얘기를 듣고 휩쓸려가는 엄마에게 그게 왜 필요하냐며 항변한다. 회사 때문에 자취를 한지 오래인 동생은 집에서의 내 고충을 알까 모르겠다.
언젠가 아빠 세대의 생각이 궁금해서 회사에 아빠보단 조금 젊으신 연령대인 분께 조언을 구했더니 부모님이 원하는대로 들어드려야 한다는 답이 돌아왔다.
결국 부모님의 뜻을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는 것 같다. 나 역시 아빠를 이해하진 못하지만 다를 수 있다는 걸 받아들이는 중이다. 게다가 나는 결혼 가망이나 생각이 없기에 자녀들 중 하나뿐인 결혼식을 아빠 자신의 이벤트로 만들고 싶은 욕심? 도 어느정도 뭔지 알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새삼 우리 부모님과의 세대차를 느끼며, 그간 얘기해오시던 진보적인 사고와는 다르게 내 자식의 일이 되니 또 다르구나 싶다.
동생은 현명하니 잘 헤쳐나갈 것이다. 평소 연락도 거의 않는 우리 가족이기에, 그저 이렇게 글을 쓰며 멀리서 응원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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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엄마는 다시 전화를 걸어 동생에게 아빠와 시아버지의 양복을 어찌할 지를 물어봤고 양복은 맞추자는 답변이 돌아왔다. 엄마와 시어머니의 한복을 대여한다기에 ‘구매’가 아니라 ‘대여’라는 점에서 의아해했던 아빠가 또 양복 여부를 저렇게 들으니 아무말 않으신다. 나이가 들면 어린아이 같아진다고들 했던가. 아니다. 일생 한 번일 이벤트에 솔직하시니 좋은 건가. 전체를 들으니 한복은 다시 입을 일이 거의 없으니 대여하고 양복은 나름대로 활용도가 있으니 구매하려는구나 싶어 현명하다 싶었다. 나가 으면 다 사려고 했겠지. 아무튼 나는 못하겠다. 방관자에 가까운 내가 이렇게 듣는 것만으로도 피곤하다니. 그래서일까 요즘 결혼한 친구, 아이를 낳고 잘 키우고 있는 친구들을 보면 경외감이 든다. 다들 내 인생 선배다.
* 사진은 얼마 전 본 [사울 레이터] 전시회에서 찍은 사진 작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