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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ck Dec 29. 2016

거:리의 거리 Street of Distance #04

아현동, 서울


만리동만큼 푹 빠진 골목 풍경이 있다. 아현동이다. 지금은 그 언덕 위로 새롭게 아파트가 들어섰지만, 여전히 좁은 골목 안에 서로 얽히고설켜 있는 주택들 사이로 주민들의 소리가 들린다.



@ 아현동, 2009.4

아현역 3번 출구를 나오면 아현초등학교가 보인다. 초등학교 건너편으로 아현시장이 있다. 학교와 시장이라는 두 공간이 만나는 시간은 주로 해질 무렵이다. 아이들도 어른들도 각자의 하루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시간.


시장을 지나는 길에 매대를 정리하고 계신 할머니 한 분을 만났다. 으레 시장 상인들의 퇴근이 그러하듯 오늘도 담담한 얼굴로 하루를 마감한다. 그 옆을 지나가는 한 아이의 뒷모습. 아이는 어떤 하루를 보냈을까. 시장의 천막 사이로 부서지는 따뜻한 빛이 아이와 나란히 걸어간다.



@ 아현동, 2009.4

시장을 지나 구부러진 골목을 걷는다. 걷다 보면 계단을 만난다. 한쪽엔 재개발 공사 중 가림막이, 다른 한쪽엔 사람이 살지 않는 듯한 집들이, 계단 끝에는 철로 만든 네모난 난간이 있었다. 내 앞에 가방을 메고 힘차게 계단 언덕을 올라가던 아이는 계단 끝에 다다르자 그 속으로 들어간다. 마치 자연스럽게 정해진 행선지로 향하듯, 어느 좋은 곳으로 떠나는 문을 열 듯.



@ 아현동, 2009.4

집으로 돌아오는 손주들을 기다리는 것일까. 할머니들이 집 앞 골목에 돗자리를 펴고 옹기종기 모여 앉아 있다. 저 멀리 떨어지는 해를 보며 노인들이 사는 이야기가 펼쳐진다. 골목 안 풍경은 여전히 따뜻했다. 그래서인지 그 무렵 내 삶은 온통 골목 사진으로 가득 차 있었다.



Camera : Leica M3

Lens : Summicron M 35mm F2 1st

Film : FOMAPAN 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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