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고 있는데 엄마가 대뜸 전화해서는 개명할 건데 이중 어떤 게 가장 괜찮냐 묻는다. 이게 꿈인지현실인지 몽롱해 하다가, 첫 번째랑 두 번째가 듣기 좋다 말했더니 자기도 세, 네 번째보다는 첫 번째가 좋다고 한다.
민하. 우리 엄마 이름이 민하구나, 이제. 거느릴 제에 검을 현을 쓰던 우리 엄마 이름을 할머니는 복이 없어 보인다며 마음에 안 들어 하셨다. 아마 엄마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바뀐 이름은 뜻풀이가 좋다고 한다. 어떤 게 좋으려나. 자세한 뜻풀이는 듣지못했다.
민하의 아들 이름은 성일이다. 이룰 성(成), 하나 일(一). 어렸을 때 나는 부모님에게 왜 나의 이름을 성백,성천이라고 짓지 않았는지 따졌다. 살면서 하나를 이룬다니, 너무 적다며. 기왕이면 좀 많이 이루게 이름의 숫자를 많이 해주면 좋지 않냐고 물었다.
아마도 내 이름을 지은 아빠는 이렇게 말했다. 살면서 하나라도 이루기가 어려운 것이 삶이라고. 하나만 이뤄도 넌 성공한 삶일 거야. 큰 하나를 이루렴. 어린 기억 속에 아빠는 늘 지혜로운 사람은 아니었지만, 상황대처를 잘했던 사람이었다. 능란한 대처 덕분에 어린 성일의 불만은 쉽게 해결됐다.
어른이 된 성일은 이름의 뜻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 한자 풀이가 쉬워 사람들이 의미를 예상하기 쉽다는 점은 마음에 든다. 이룰 성과 하나 일의 한자 획 수 대비가 큰 점도 좋다. 이름이랄게 별게 있나 싶기도 하다.
엄마와 전화를 끊으며, 이제 민하 엄마네라고 했다. 엄마는 그럼 너가 민하야? 라고 물었다. 생각해보니 그러네. 엄마도 한때는 아빠와 사람들에게 성일엄마라고 불리던 적이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자주보는 가족들이 적어지고, 모자를 함께 아는 사람들이 없어지면서 엄마는 성일엄마의 삶보다 제현으로서의 삶이 더 길었겠다. 성일엄마가 아닌 제현아, 라고 불리는 엄마의 삶은 어땠으려나. 민하라는 좋은 뜻에 맞게 좋은 시간이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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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고 물어보니 엄마의 제는 '제주도'에도 쓰이는 濟(건널 제)였다. 이 한자가 가진 뜻은 17개이고 거느린다는 의미는 안보인다. 그래, 이름이랄게 별게 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