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팀을 만들기 위한 팀원의 노력
세상 많은 사람들이 리더가 되라고 한다. 동의한다. 리더형 인재가 이 시장에서 살아남기 더욱 유리할 것이다. 리더는 누군가 감투를 씌워주고 임명식을 거행한다 해서 만들어지지 않는다. 직급이라기보다는 자격 그 자체다. 그에 걸맞은 책임감과 실력이 검증될 때 비로소 그 자격이 생긴다. 그 자격을 위해 우리는 아마 평생을 노력해야 할지 모르겠다. 아쉽게도 우리 모두는 당장 리더가 되기 어렵다. 대부분은 어느 리더의 팀원으로써 일을 시작한다. 그렇다면 그 과정에서 팀원으로써 우린 어떤 것을 목표로 세워 볼 수 있을까? 좋은 팀원이 되는 연습을 통해서 좋은 리더가 되는 방법을 고민해보자.
예전에는 일 잘함과 불친절함(싸가지 없음) 공존할 수 있다고 믿었다. 베토벤 바이러스에 나오는 김명민이나 위플래시의 대머리 아저씨처럼, 팀원에게 쌍욕하고 가스 라이팅 하며 만들어낸 성과가 이제 더이상 멋지지 않다.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하기 시작하면, 그 잘못의 크기와 상관없이 우리는 결국 부조리에 마주하게 된다. 부조리로 만들어낸 성과는 지속 불가능하다.
팀원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면서 높은 성과를 내는 리더가 정말 좋은 리더라 생각한다. 마찬가지로 좋은 팀이란 서로 신뢰하는 관계 안에서 높은 성과를 내는 팀일 것 같다. 좋은 팀을 만들기 위해 우리 모두가 당장 내일부터 불타는 열정맨이 되긴 어렵지만, 내일 출근 후 하나씩 시도해볼 만한 일들을 소개해보려 한다. 쉬운 일부터 천천히 웜업 해보자.
내가 회사나 팀에 얼마큼 기여하고 있는지 성과지표를 기준으로 객관적으로 판단해보자. 건강한 팀 문화를 위한 첫걸음은 팀원 모두가 부족함 없이 자기 할 일을 잘하는 것이다. 팀원 간의 실력차는 분명 존재하지만, 최소 기준에 못 미치는 팀원은 개선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내가 팀이 원하는 기준을 충족하고 있는지, 부족하다면 어떤 점을 개선해야 하는지 객관적으로 파악해야 한다. 이제까지 우리가 나의 실력이라고 생각한 포트폴리오 사이트에서 받은 좋아요 수나 주변 사람들의 인정, 학점 등은 회사의 기여도와 크게 상관없을 수 있다.
새로운 기준이 필요하다.
1. 학생 시절부터 주변 사람들에게 일을 잘한다는 이야기를 곧 잘 듣는다. 그러나 성과평과가 늘 만족스럽지 못하다. 억울하다.
2. 나는 주어진 업무를 충분히 해냈다고 생각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팀 리더의 개입이 심해진다. 리더는 날 왜 이렇게 믿지 못할까? 섭섭하다.
3. 회사가 목표를 달성했지만, 내가 기여한 성과는 가시적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어쨌든 목표는 달성했으니 잘했다고 믿는다. 난 최고.
잘못된 기준으로 인해 객관적 판단되지 않을 때의 상황은 상상만 해도 정말 아찔하다.
성과지표 좁히기
대부분의 회사는 성과지표를 가지고 있다. 문제는 회사의 목표와 내 성과의 관계를 파악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플랫폼 서비스를 운영하는 대형 기업이 1분기 목표를 앱 다운로드 1,000만로 잡았고, 이를 달성했다고 하더라도 UX 디자이너 1명이 1,000만 다운로드에 어느 만큼 기여했는지를 알기 어렵다. 1,000만 다운로드라는 목표 달성은 1명의 디자이너뿐만 아니라 다양한 팀의 기여가 합쳐져 만들어진 결과이기 때문이다. 즉, 1,000만 다운로드를 위해 UX 디자이너가 기여할 수 있는 성과지표가 어떤 것인지 세밀하게 설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처음은 내가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ex. 다운로드 유도 랜딩페이지 개선)의 전환율을 설정해보고, 이 목표를 점진적으로 늘려나간다(ex. 앱 설치 Flow 개선). 정량적인 지표 설정이 어렵다면, 타사 대비 좋은 회원 가입 경험 개선과 같은 정성적인 지표 설정도 가능하다. 중요한 점은 내가 기여한 바가 명확하게 드러나는 범위로 목표를 설정하는 것이다. 이렇게 설정한 목표와 결과를 기준으로 내가 이 팀에 얼마큼 기여하고 있는지를 쉽게 판단해볼 수 있다.
MVP의 MVP
성과지표를 만들더라도 원하는 아이디어를 실현하기 어려울 때가 많다. 전체 팀의 우선순위와 맞지 않다면 개발 진행도 어려울뿐더러, 본인도 새로운 아이디어에 시간을 투자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본인의 열의에 따라 워라벨을 조금 포기하는 것도 방법이겠지만, 추천하는 것은 실현 가능한 수준의 가장 작은 단위의 MVP를 진행해보는 것이다. 가능하다면 타 팀의 (주로 개발) 리소스가 들지 않는 방향으로 계획해보자. MVP의 아웃풋 형태는 꼭 프로덕트나 서비스 업데이트가 아니어도 된다. UX가이드나 PPT와 같은 기획문서여도 좋다. 목표는 팀이 가진 우선순위를 변경하고 해당 프로젝트에 리소스를 더욱 투입할 수 있을 만큼 팀원을 설득하는 것이다. 이렇게 작게나마 성과를 증명할 수 있다면 팀의 목표와 나의 목표를 조금씩 맞춰나갈 수 있다.
디자이너라면 서비스의 UI 업데이트가 필요 없는 이미지 교체만으로 지표를 높일 수 있는 실험을 진행해보길 권장한다. 예를 들어 랜딩페이지의 이미지 혹은 배너, 광고 이미지 등이 있겠다. 이미지 교체만으로 이전 대비 결과를 체크해볼 수 있다.
요즘은 비교적 공과 사를 구분해, 워라벨이 잘 지켜지는 분위기다. 그러나 좋은 시너지를 내기 위해서는 오로지 공적인 관계만으론 어려울 때가 많다.(사실 그게 가능한가 싶다.) 적당히 느슨한 유대관계는 업무에 도움이 된다. 경직된 관계에서는 업무 소통에 있어서도 많은 비용이 들어간다. 더 정리해서 말을 해야 하고, 러프한 아이디어는 감추게 된다. 상대방에게 정확한 의견을 전달하기 위해 정제하는 시간이 길어진다. 이는 확실한 진입장벽이다. 캐주얼한 관계는 상대적으로 더 정리되지 않은 의견을 이야기하기 쉽다. 의견을 정리하는 시간이 줄어들면서 업무적 소통 빈도수도 활발해진다. 이러한 소통 방식은 작업 시간을 극단적으로 단축시키지는 않지만, 보다 높은 제품 퀄리티를 만드는데 도움이 된다. 리더와 느슨한 유대관계를 만들어보길 권장한다.
팀장님, 정기 미팅해요
우선은 리더와의 소통 빈도수를 높여보자. 별다른 일이 없더라도 리더와 주기적으로 미팅을 갖자. 2주일에 한번 혹은 1달에 한 번도 좋다. 미팅이 주기적으로 있으면 업무 이야기를 할 수도 있고, 쉽게 꺼내기 어려운 고민들도 별도의 시간을 잡지 않고 자연스럽게 이야기해볼 수 있다. (적어도 갑자기 개인면담 요청해서 서로 어색해지는 상황은 없어진다.)
처음에 정기 미팅을 요청하는 것이 어려울 수 있지만, 오히려 리더가 팀원에게 이 것을 요청하기 더 어려울 수 있다. 소통을 싫어하는 리더는 흔치 않다. 리더가 바빠서 주기적이 미팅을 하기 어렵다면 시간을 조율하면 된다.
막상 정기 미팅을 시작해보았는데 마땅한 주제가 없다면 회사 업무가 아닌 커리어 상담을 시도해보는 것도 좋다. 팀원의 성장을 싫어하는 리더는 없다. 커리어의 단기/장기적인 목표를 이야기해보는 것으로 자연스럽게, 평소에 몰랐던 리더의 업무 사고방식을 알 수도 있고, 운이 좋다면 바로 써먹을 수 있는 팁을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도전비용, 신뢰 자산
리더와의 신뢰관계를 쌓는 것을 강조하는 이유는 어떤 도전을 시도할 때에 이에 들어가는 비용(위험)을 절감하기 위해서이다. 성장하기 위해서는 익숙한 일이 아닌 어려운 일을 도전해야 하고, 도전에는 실패의 위험이 따른다. 따라서 이를 허가하는 리더에게도 동일한 위험이 따른다. 리더의 입장에서는 조금 더 검증된, 즉 신뢰할 수 있는 사람에게 일을 맡기고 싶을 것 같다. 대상이 뭘 잘하는지, 요즘 어떤 생각인지 모르는 상태에서 어떤 점을 믿고 일을 맡길 수 있을까? 특히나 그 일이 평소 업무보다 더욱 어려운 일이라면?
때문에 평소에 리더와의 관계에서 신뢰 자산을 쌓는 것은 중요하다. 신뢰 자산은 업무적 성과로도 쌓을 수 있지만, 내가 어떤 것을 원하고 고민하는지 등을 이야기하면서 쌓일 수 있다. 명확한 공과사를 구분 짓기보다 자신에게 맞는 공과 사 균형을 찾아 관계를 만들어 가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쓸데없는 이야기를 해보자
리더뿐만 아니라 팀에서도 소통 진입장벽을 낮추는 것은 중요하다. 학생 시절 레크리에이션 시간에 간단한 협업 스트레칭을 하는 것처럼 미팅 도입부에 업무와 상관없는 캐주얼한 주제를 이야기해보자. 요즘의 날씨나 내가 어제 재밌게 본 넷플릭스 시리즈로 하하호호 얘기하고 나면 무거운 업무 이야기도 조금은 가볍게 느껴질 수 있다. 물론 필자도 주제를 쥐어짜느라 '내가 무슨 이야길 하는 거지'라는 생각이 들지만 멈출 수가 없어 말을 이어가는 민망한 순간이 많다.
지속 가능한 성과를 위해서 오너십을 갖는 것은 너무나도 중요하다. 같은 일이더라도 내가 이 일을 주도적으로 하는지 수동적으로 하는지에 따라 느끼는 재미가 확연히 다르기 때문이다. 울면서 일하기에는 하루 중 일하는 시간이 너무 많다.
의사결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자
오너십을 높이기 위해서는 조직의 의사결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모든 팀원이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수평구조의 조직은 더 좋은 퍼포먼스를 낸다. 슈퍼컴퓨터는 일반 컴퓨터를 여러 대 연결시키는 것으로 만들 수 있다고 한다. 중요한 점은 이 컴퓨터를 직렬이 아닌 병렬연결해야 성능을 슈퍼컴퓨터 수준으로 끌어올릴 수 있다고 한다.
컴퓨터 하나를 팀원 한 명이라고 했을 때 팀 의사결정 순간도 이와 비슷하다. 상위 결정권자가 실무자에게 직렬로 내리꽂는 방식은 좋은 결과물을 내기 어렵다. 이 구조에서는 아래에 위치한 실무자들이 업무에 대한 이해도나, 거시적인 관점이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떨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오너십이 자연스럽게 감소한다.
수평구조를 가진 조직은 모든 참여인원이 프로젝트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 때문에 시간이 지날수록 각자의 제품 이해도가 높아진다. 자연스럽게 오너십도 높아진다. 조직의 문화는 조직장이 정한다고 해서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 속에서 움직이는 팀원 한 명 한 명이 같은 방향성을 가질 때 하나의 문화(정체성)가 만들어진다. 적극적인 참여로, 조직이 수평구조가 되도록 만들어보자. 더 높은 퀄리티의 제품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 추가적으로 덧붙이자면 수직구조에서의 장점도 있다. 하지만 회사의 덩치가 커지면서 의사결정이 필요한 데스크의 개수가 많아질 때 문제가 발생한다. 소수의 상위 결정권자가 의사 결정할 수 있는 개수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리더 일 뺏기
어떤 '상태'가 되고 싶다면 이미 그것을 이룬 것처럼 행동하자. 리더가 되고 싶다면 리더의 일을 하자. 리더가 의사 결정했던 데스크들 중 내가 의사 결정해볼 수 있는 지점이 있다면 과감하게 진행해보자. 허락보다는 용서를.
그럼 리더가 하고 있는 일을 내가 한다고 해서, 리더가 그만큼 더 쉴 수 있을까? 아니다. 건강한 조직이라면 발생한 여유만큼 리더는 더욱 상위 의사결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게 된다. 결과적으로 팀이 소화할 수 있는 범위가 더 넓어진다.
앞서 말한 것처럼 리더란 자격이다. 때문에 자격을 위한 노력은 시작과 끝없이 꾸준히 이루어져야 한다. 이상적인 리더가 되기 위해서는 그에 대한 자질을 스스로 검증해보고 가늠해볼 시간이 필요하다. 리더가 되기 전부터 내 자질을 검증해보자. 검증과 동시에 성장도 기대할 수 있다.
그러나 아무리 봐도 리더의 인성이 터져있고, 회사에는 내 실력 검증을 위한 여지도 없으며, 내가 오너십을 발휘해도 팀원들이 그저 시큰둥하다면? 떠나야 한다.
수직이동 말고 수평이동
나와 회사가 서로의 성장을 도울 수 없다면, 그 관계를 지속할 필요는 없다. 앞서 소개한 3가지 항목은 회사 내에서 수직상승(성장) 하기 위한 방법이지만, 이 상황에서는 수평이동(이직)을 하는 게 맞다. 물론 어떤 회사나 팀이든 끈기 있게 노력한다면, 언젠가는 더 좋은 방향으로 발전시킬 수 있다. 데이터 드리븐 방식도 정착시키고, 또 성숙한 피드백 문화도 만들어볼 수 있다. 문제는 '우리가 그럴 필요가 있을까'라는 점이다. 이러한 노력에는 회사가 주는 보상보다도 더 많은 수고가 들어간다. 회사의 이익과 나의 성장을 잘 저울질할 필요가 있다.
어딘가에 분명 좋은 리더는 존재한다
괴팍한 성격의 리더와 일하는 친구들이 술자리에서 종종 '성격이 저 모양이어서, 일을 잘하나 봐'라는 이야기를 종종 한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모나지 않은 성격으로도 리더 일을 잘할 수 있다. 오히려 팀원과의 관계가 좋을수록 더 좋은 리더가 된다고 생각한다. 팀원과의 소통 과정에서 친절한 태도는 팀원의 발산을 돕는다. 이 과정은 더 탁월한 의사결정을 낳는다. 같은 시간과 인원이더라도 발산된 아이디어의 총합에 따라 최종 의사결정 퀄리티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운 좋게도 나는 짧은 경력기간 동안 몇 명의 호인들을 만났다. 물론 그들이 누군가에게는 호인이 아닐 수 도 있다. 나의 리더가 호인인지, 호랑이인지(혹은 호구인지)는 나와의 관계에 의해 정의된다. 그렇기에 나는 세상 모두가 자신의 호인을 언젠간 만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어딘가는 있다. 절망하지 말자.
우린 다 중요하니까, 아자!
팀원이 바라는 이상적인 리더의 모습은 알기 쉽다. 그러나 리더가 바라는 팀원은 어떤 모습인지 말하기 어려운 듯하다. 아마 꼰대라는 단어가 이런 대화를 더욱 힘들게 만드는 듯하다. 우리가 하는 대부분의 일들은 혼자보다 여럿일 때 더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다. 좋은 디자인도 그렇다. 협업이 원활할수록 더 좋은 디자인(제품)이 나올 가능성이 높아진다. 협업이 원활한 팀에는 좋은 리더와 좋은 팀원이 존재한다. 이 둘의 가치는 어느 하나가 더 중요하거나, 덜 중요하지 않다. 두 가지 모두 필수적이다. 이 글을 읽는 모두가 중요한 일원이다. 그리고 이 글을 읽은 모두가 내일 조금 더 나은 업무시간을 보내길 바란다. 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