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아지를 키우는 중이다. '애니'와 함께한지는 이제 2달이 조금 넘어간다. 풀 재택을 하는 회사에 다니고 있다 보니, 눈에 자꾸 밟히는 도움 필요한 아이를 내가 맡아줄 수 없을까 하는 생각이 자주 들었다. 남양주에서 애견미용을 하시는 우리 엄마는 파양 당한 푸들 3마리를 키우고 있다. 임보에 앞서 엄마의 의견을 들어보면 좋을 것 같아 전화를 하던 날, 엄마가 키우던 푸들 1호 '애니'는 우리 집에 오기로 결정되었다.
"임보? 아무나 하는 거 아니다, 우리 집 애나 1달 동안 데리고 있어 봐."
그러네, 내 가까운 아이부터 챙겨보는 게 좋겠구나. 생각해보면 엄마도 아이 3마리를 돌보는 게 쉽지는 않을 것 같았다. 더군다나 몸 쓰는 애견 미용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놀아줄 아이들이 3마리라면 고됨도 3배겠지. 다행히 애니는 내가 잠시 엄마와 함께 살던 때 반년 정도 시간을 함께 보냈던 아이였다. 이번에 우리 집에서 잠시 1달간 지내더라도 무난하게 잘 지낼 수 있겠다 싶었다. 1달이라. 짧은 시간은 아니고 그렇다고 중간에 힘들더라도 버틸만한 시간이겠구나. 애니가 오기 전까지는 큰 감흥은 없었다. 인스타에서 보던 귀여운 강아지를 실물로 좀 더 자주 볼 수 있으려나 정도.
마침내 약속의 날이 왔고 엄마가 차를 끌고 애니와 우리 집에 왔다. 차에서 엄마가 내리고, 사람 만나 반가워 발발대는 애니가 내리고. 그리고 엄마가 뒷칸에 짐을 꺼내란다. 사료, 간식, 밥그릇, 배변패드, 미용도구, 개 샴푸&컨디셔너, 옷 몇 벌, 개목걸이 그리고 엄마가 직접 만든 화식(강아지 밥 같은 거다). 짐이 한가득이었다. 챙길게 이렇게 많아? 응 그럼 많지. 난 이사라도 오는 줄 알았네. 양손 가득 짐 봉투를 들고 집으로 들어오니, 또 신경 써야 할 것도 가득이다. 밥은 하루 1끼, 저녁에 한 번씩 화식 반통과 사료 반 컵. 간식은 너무 많이는 안되고. 빗질할 때는 엉킨 것은 슬리커로, 마무리는 콤빗으로 하루에 한 번씩 등등. 아나, 이거 잘할 수 있나.
강아지의 성격은 천차만별이다. MBTI 결과가 같더라도 사람의 성향이 서로 천차만별인 것처럼, 강아지도 '활발하다' 혹은 '소심하다'라는 말로 표현하기 힘든 개체마다 고유의 세밀한 성격을 지니고 있다. 예를 들면, 애니는 활발한 쪽보다는 소심한, 내향적인 강아지다. 그러나 자기주장은 강하다. 좋다 혹은 싫다의 의사표현이 확실하다. 싫은 산책길은 죽어도 안 가려고 줄을 당겨 버틴다. 그리고 변덕이 심하다. 날마다 컨디션이 달라서 간식을 줬을 때 리액션이 다르다. 어떤 날은 나와 눈도 안 마주치고 잠만 쿨쿨 자고, 어떤 날은 하루 종일 안아달라고 나를 쳐다본다. 우리 모두가 '인간'이라는 큰 카테고리로 묶기에는 개인의 성격이 너무나도 다른 것처럼 강아지가 그렇다. 강아지 '애니'는 유별나다. 관계의 재미는 이러한 다양한 성질의 개체가 모여 생기는 변수, 그리고 그것을 이해하는 과정에 있다. 애니와 지내는 시간은 예상 못한 일들을 마주하며 이 아이를 이해해가는 흥미로운 시간이다.
정말 신기한 점은 강아지가 생각보다 사람의 의사표현을 잘 알아듣는다는 점이다. 강아지와 의사소통에 있어 가장 기본 단위는 '좋아'와'아니'이다. 즉 긍정과 부정이다. 예를 들어 강아지에게 '기다려'라는 것을 가르쳐보자. 처음은 5초 기다리는 것을 목표로 강아지에게 간식을 주고 '기다려'를 한다. 기본적으로 강아지는 간식을 본능적으로 먹으려 하기 때문에 이것을 먹지 않는 것은 강아지의 '의도'이다. 강아지가 의도적으로 5초 동안 기다린다면 보상으로 '좋아' 긍정 피드백을 한다. 긍정 피드백은 물리적인 보상(간식)과 정신적인 보상(칭찬)을 함께 해야 한다. 중요한 점은 칭찬을 할 때 그 '톤'이 강아지가 듣기에 기쁜 톤이어야 한다. 쉽게 말하자면, 호들갑 떨면 된다. 강아지가 만약 '기다려'를 수행하지 못하고 간식을 먹으려 한다면 '아니'라고 부정한다. 부정 피드백은 단호해야 한다. 손으로 저지하는 제스처를 함께 하면 더욱 이해하기 쉽다. 이렇게 기다려 훈련을 통해 강아지는 '좋아'와 '아니'를 익힐 수 있다. '좋아', '아니'를 이해한 강아지는 이제 '기다려'보다 복잡한 행위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앉아'도 동일하다. 다만 '앉아'는 '기다려'와 다르게 강아지가 가만히 있다고 수행되지 않는다. 강아지가 실제로 '앉아'야 한다. 이는 주인의 가이드가 필요하다. '앉아'라고 말하고, 손으로 강제로 엉덩이를 살짝 눌러 앉는 자세로 만든다. 그리고 '좋아'라고 긍정한다. 그리고 반복한다. 이러면 강아지는 '앉아'라고 말했을 때 엉덩이를 낮춰 앉으면, '좋아'라는 피드백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학습한다. 이런 식으로 최근에 애니는 산책 가방에 '들어가'를 배웠다.
강아지는 규칙 없는 자유로움으로 행복해질 수 없다고 한다. 어떤 때는 주인과 잠시 떨어져야 하고, 하면 안 되는 것들을 하지 말아야 한다. 강아지가 하면 안 되는 것, 그리고 참아야 하는 것을 이해하기 위해 이 '좋아', '아니'를 학습해야 한다. 주인도 개인적인 시간과 공간이 필요할 수 있다. 무조건적으로 가깝다고 해서 이상적인 관계가 아닌 것처럼 강아지와 나도 적절한 거리, 규칙이 필요하다. 3달쯤 되니 이제는 애니와 나도 둘만의 규칙이 생긴 듯하다. 나는 애니의 기분과 컨디션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었고, 애니는 나와 잠시 떨어질 수 있는 참을성이 생겼다. 대견해.
그렇지만 역시 강아지를 키운다는 것은 많은 수고가 따른다. 기본적으로 강아지는 혼자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지 않다. 싸거나, 자거나. 그 외의 많은 것들은 주인의 도움이 필요하다. 특히 밥. 혼자 냉장고에서 화식 반통 꺼내고, 사료 봉투에서 종이컵 반 컵 분량만 덜어서 그릇에 잘 담아 챙겨 먹으면 얼마나 기특할까? (^_^)
그리고 빗질. 가끔 아이 아빠가 딸의 머리를 정성스럽게 빗고 땋아주는 걸 보면서 딸 판타지를 상상해보았는데, 애니 덕에 매일매일 판타지를 이루고 있다. 강아지 털 빗기는 3단계로 나뉜다. 1번 에센스 뿌리기. 이걸 뿌려야 털이 잘 빗기고 후에 잘 엉키지 않는다. 2번 슬리커. 슬리커는 논두렁의 벼처럼 넓은 판에 촘촘하게 빗살이 돋아있는 빗이다. 엉킨털을 이 슬리커로 풀어준다. 3번 콤빗. 이건 그냥 우리가 쓰는 꼬리빗처럼 생겼는데, 이걸로 빗어주면 마무리다. 그리고 털을 빗다 발바닥이나 배, 항문에 털이 많이 자라 있으면 클리퍼로 윙윙 밀어준다. 특히 발바닥에 털이 너무 많이 자라면 실내에서 잘 미끄러지고, 산책을 할 때 이물질이 많이 묻는다. 2주에 1번 하는 목욕도 쉽지는 않다. 아이도 도망가고, 내 디스크도 탈출하고.
그중 가장 시간이 많이 드는 일은 산책이다. 하루에 1번씩 점심시간 40~50분은 꼭 산책을 나간다. 짬이 안 나면 출근 전 아침에 산책을 나간다. 1주일이면 최소 6시간은 산책하는데 시간을 쓰는 셈이다. 그럼에도 산책은 강형욱 님이 말한 것처럼 강아지 하루 중 가장 중요한, 행복한 시간이다. 그렇게 저 텐션인 애니도 산책 가는 시간이 되면 신나서 펄쩍펄쩍 뛴다.
물론 기계적으로 산책을 한다고 해서 강아지가 행복하다고 볼 수는 없겠다. 강아지가 산책이 즐거운 이유 중 반은 주인과 함께 해서이다. 산책을 하지 않더라도 아이가 내 무관심한 태도에 상처받지 않게 대화하고 챙겨줄 필요가 있다. 강아지 입장에서 같이 늘 함께 하더라도 자기에게 애정을 표현해주지 않는다면 너무 속상하지 않을까? 자주 안아주고 표현하려 노력한다. 사실, 그냥 그렇게 된다.
강아지를 키운다는 건 정말 아이를 키우는 일과도 같다.(아마도) 물리적인 시간과 정성이 많이, 아주 많이 들어간다.
대상을 좋아한다고 늘 마음이 편하지는 않더라, 애니를 키우는 내 마음 한구석에는 늘 조마조마함이 있다. 애니와 나와의 관계는 양방향적이지만, 애니와 다름 사람의 관계는 일방적이고 이에 대한 책임은 오롯이 나에게 있다. 한 번은 내가 애니를 두고 오랜 시간 집을 비운적이 있다. 새벽에 집에 돌아오니 애니가 평소보다 더 격하 나를 맞아줬다. 그날은 미안해서 함께 침대에서 자고, (지금은 맨날 같이 잔다) 다음날 일어나자마자 산책을 나갔다. 그렇게 현관에 나가던 중 '개 안 짖게 해 주세요' 쪽지를 발견했다. 아, 어제 애니가 많이 짖었구나.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내가 애니랑 같이 살기 힘들 수도 있는 건가? 다시 엄마 집에 보내야 하나? 그날 바로 철창과 현관문 방음제를 샀다. 그리고 웹캠을 설치하고 애니가 혼자 있을 때 많이 짖는지 관찰했다. 결과적으로는 집에 나설 때 애니를 많이 안정시켜주고, 웹캠 마이크로 케어를 하다 보니 지금은 잘 짖지는 않는다. 잘 자고, 할 일을 한다. 물론 그래도 애니를 혼자 집에 두고 오는 것은 어쩔 수 없이 불안하다.
물론 함께 나들이를 가도 마음이 늘 편하지는 않다. 우리 집은 원룸촌에 있어 차도와 인도가 잘 구별되어 있지 않아, 길을 걸을 때는 줄을 짧게 잡고 한껏 예민해져 있다. (어이없는 부분은 나만 예민하고 애니는 차를 무서워하지 않는다. 이제껏 차들이 알아서 비켜가니 조심하지 않는 듯하다.) 애니와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에는 옆가방 형태의 산책 가방에 들려 이동한다. 우리나라 법규상 반려동물은 대중교통 이용 시 전신이 가려지도록 가방(혹은 케이지)에 들어가야 한다. 예를 들어 버스 이용 시 가방에 강아지가 얼굴을 내놓고 있으면 기사님께서 승차거부를 하실 수 있다.(탑승객 항의가 주된 이유다.) 때문에 애니가 멀리 이동할라치면 좁은 가방 내에서 몇십 분은 가만히 있어야 한다. 정말 정말 대견하게도 애니는 이동시간 뒤척임 없이 잘 참아내지만, 애니도 나도 아주 쾌적한 경험은 아니기 때문에 이동을 할라치면 정말 많은 부분은 고려할 수밖에 없다.
지난 주말에는 애인, 그리고 애니와 함께 한강공원 나들이를 갔다. 날씨도 너무 좋고 애니도 좋아해서 시간 가는 게 아쉬운 주말이었다. 해가 저물고 집에 갈 시간이 되어 아쉽지만 자리를 접고 애니를 안고 돌아가는 길, 공원에 있는 내내 들렸던 음악이 사실 주변에서 하던 큰 연주회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애인과 함께 신기해할 무렵 공연이 클라이맥스로 접어들며 불꽃놀이가 시작됐다. 이렇게 좋은 날씨의 한강공원에서 우연히 불꽃놀이라니 너무 낭만적이다. 펑- 펑-. 오들오들.
오들오들? 아차, 애니가 무서워하는구나. 불꽃놀이의 소리에 애니가 무서워할지 생각도 못했다. 애니를 달래 가며 지하철 입구로 종종걸음로 내려갔다. 폭죽 소리를 들은 많은 사람들이 한강 저녁의 불꽃놀이를 보기 위해 계단을 우르르 뛰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많은 인파 중에 계단을 내려가는 사람은 애니를 안은 나뿐이었다. 애니가 없었으면 나도 저 사람들처럼 뛰고 있었겠지? 애니를 책임지는 삶이 이전과 얼마나 다른지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모르는 것보다 배워야 할 것이 훨씬 더 많지만, 이 아이와 함께하는 삶이 이전보다 훨씬 더 행복할 거라는 생각이 든다. 며칠 전 심장사상충 예방약을 처방받기 위해 애니와 처음 동물병원에 방문했다. 가벼운 진료를 받으면서 애니의 귀 건강이 좋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청력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고, 귀가 습해서인지 귀지 같은 것이 많이 껴있어서 관리가 필요하단다. 내 아이인데 건강 이상을 미쳐 알아차리지 못한 것이 쑥스럽기도 하고, 아기 건강은 못 챙기면서 미용은 열심히 시켜놓은 허세 가득한 주인으로 보이는 게 약간 뻘쭘해서 '아, 얘가 원래 제 아이는 아닌데 어머니가 키우던 강아지고.. 그리고 어머니가 애견 미용일을 하셔서 미용이 잘되어있어요, 그런데 저는 데리고 산지 2~3달밖에 안돼서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주절주절..' 변명해버렸다.
가벼운 진료가 끝나고 심장사상충 검사를 진행하는 데에도 환경이 낯설어서인지 애니가 많이 불안해했다. 하나가 끝나면 안기고, 또 하나 끝나면 안기고.. 애니가 자꾸 안기는 걸 보더니 선생님께서 '애한테 잘해주셨나 봐요, 2~3달밖에 안됐는데, 주인을 엄청 의지하네요.'라고 말하셨다. 감동. 얘가 날 의지해주는구나. 누구에게 의지를 할 수 있을 때보다, 누가 날 의지해줄 때 더 큰 고마움을 느끼는 것을 곱슬 뭉치 덕에 경험하는구나. 낯선 환경에서 받는 검사가 무서웠겠지만 결국 채혈까지 한 번을 안 짖고 모든 일을 잘 이겨낸 애니가 너무 대견스러웠다. 그리고 만나는 사람마다 애니 자랑.
이번 주에 며칠간 집을 비우게 되어 애니와 함께 산 이후로 처음으로 애니를 엄마에게 다시 맡겼다. 오늘은 애니 없이 혼자 자야 한다. 어제저녁 나는 며칠간 이 녀석과 떨어져 지내는 게 괜히 마음이 이상해져서 괜히 더 가까이 붙어 앞발을 꼭 잡고 잠들었는데, 얘는 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잘 자더라. 애니가 없으니 허전하다. 돌아오면 더 잘해주고 칭찬해줘야겠다. 잘해보자 애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