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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일공원 Jan 01. 2023

30살 디자이너의 2022년 회고

일/루틴/사랑

브런치에 올리는 2번째 회고. 늘 다사다난 하지만, 올해는 일 외에도 나를 지탱하는 큰 기둥을 여러 개 세울 수 있었다. 1개의 큰 기둥으로 이루어진 건축물도 물론 멋지겠지만, 여러 개의 기둥으로 만들어진 안정적인 사람이 되고 싶다. 그래서 지붕도 올리고, 주변 사람들이 편하게 머무르다 갈 수 있는 공간과 같은 사람이 되었으면 한다. 올해에 가장 바뀌 점은 주목하는 대상이 나 외에 타인에게로 까지 확장되었다는 점이었다.

물론 그럼에도 '일'은 나의 가장 큰 기둥 중 하나이다. '일' 그리고 나를 받치는 또 다른 기둥인 '루틴'과 '사랑'에 대해 차례대로 회고해보려 한다.


시니어 프로덕트 디자이너

올해 1분기에 쿠팡의 시니어 프로덕트 디자이너로 프로모션 했다. 작년까지만 해도 스스로 주니어 디자이너라고 생각해서 클럽하우스에서 비슷한 주제로 사람들과 이야기를 했던 기억이 있는데 예상보다 빠르게 시니어 직함을 달게 되었다. 다양한 정의가 있겠지만, 시니어의 정의는 A-Z까지 스스로 업무를 모두 해결할 수 있고, 더 나은 해결책을 제안하는 사람이라 생각한다. 무엇보다 기쁜 점은 A-Z라는 폭이 넓고, 더 나은 해결책에 대한 기준이 높은 현 회사에서 시니어로 인정받았다는 점이겠다. 사실 3년 차에 시니어로 프로모션 했다는 점이 스스로 뿌듯한 점 중 하나였는데, 오히려 주변에서는 연차와 실력을 별개라는 태도가 일반적이어서 오히려 머쓱했던 것이 기억난다.

승진 기념 애니랑 촛불도 불었다


더 큰 프로젝트

며칠 전 사내에 셀프 리뷰가 있어 1년간 진행한 프로젝트를 쭉 훑어봤다. 정말 이것저것 많이도 했구나 싶었다. 특히 올해에는 큰 프로젝트를 많이 맡으면서도 중간중간 1개 티켓단위의 프로젝트도 많이 진행했었는데, 그 '큰' 프로젝트가 워낙 스트레스였어서 다른 개선들은 잊고 있었다.

나에게 큰 스트레스 중 하나였던 프로젝트 중 하나는 '함께 주문' 런칭이었다. 한정적인 배달파트너에 비해 높은 주문 건, 그리고 사용자가 배달비와 최소 주문비에 대해 느끼는 부담을 낮추기 위해 쿠팡이츠에 새로운 주문방식을 만들고자 했다. 대략적인 키워드만 논의된 상태에서 오프라인 사이드의 프로세스까지 간단히 제안했는데, 해당 제안이 많은 동의를 얻어 실제 런칭까지 이어질 수 있었다. 다만 예상한 것보다 많은 리소스를 필요로 했고 작업기간이 길어지면서 나를 포함한 여러 팀원분께서 고생하셨다. 이전에 진행했던 다른 프로젝트와 확연히 큰 사이즈로 실수도 많이 하고 어설펐지만, 모두가 끝까지 붙잡고 피쳐를 완성시킨 덕에 다행히 잘 런칭할 수 있었다.

높은 권한이 있어야 큰 프로젝트도 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직접 큰 프로젝트를 진행해보면서 팀원에게 권한을 맡기는 팀 문화에 감동했다. 또 프로젝트를 완료하는 과정에서 서비스에 대한 오너십도 더 높아졌다.


높은 오너십

오너십이 높다는 것은 큰 강점 중 하나다.(사실 요즘은 이게 가장 중요한 것 같다.) 물론 오너십을 갖게끔 장려하는 좋은 문화를 가진 팀을 만나는 것은 운의 영역이라 느껴질 정도로 어려운 일이다. 다행히 난 운이 좋았다. 일이 내 전부는 아니지만 확실히 일은 나를 이루는 큰 요소 중 하나이다. 그리고 난 나의 것을 잘 해내고 싶다는 마음이 강하다. 오너십이 높은 사람의 장점은 스트레스 역치가 높아 빠르게 성장할 수 있다는 점이다.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 너무 많은 업무량, 높은 기준 등이 가져오는 스트레스도 그 근본적 이유가 나와 연결되어있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면, 어쨌든 그 일을 해나갈 수 있다. 오너십은 그 대상과 나와의 관계가 얼마나 밀접한지를 말한다.

쿠팡 커넥트 디자인 행사에 쓰일 영상에 인터뷰어로 참여했다


빠른 의사결정

쿠팡이츠와 같은 커머스 서비스는 완벽한 목표점이 있기보다는, 발생하는 다양한 문제와 요건들을 해결해나가는 유기적인 과정의 연속이다. 이전에 비주얼을 디자인하던 과정을 1개의 멋진 마스터피스를 만들어가는 과정으로 이해했다면, 현재 프로덕트를 디자인하는 느낌은 살아있는 유기체를 가꿔가는 느낌이다. 서비스의 성숙도에 따라, 결에 따라 디자인을 하는 방식이 천지차이이다.

결과물자체가 시간의 영향을 받는 것뿐만 아니라, 팀의 특성상 여러 사람의 의사를 한데 모으고 다음 단계로 빠르게 의사결정을 해야 하기 때문에 시간은 늘 중요하다. 제시간에 좋은 결과물을 내는 것이 중요하다. 다행히도 난 약간의 스트레스가 동반된 환경에서 더 높은 집중력을 내는 편이다. 오히려 환경이 리치할수록 효율이 떨어지는 것도 같다. 미팅이나 스크럼에서 발생하는 작은 논의 순간순간에서 가장 좋은 의사결정을 하는 것이 팀 전체에 미치는 영향을 체감하다 보니, 에너지를 더 쏟아야 하는 지점이 분명해지는 듯하다. 더 높은 리더가 되면서 실무에서 멀어졌을 때 어떤 식으로 팀에 기여할 수 있을까 고민하던 해답이 이 능력에 있겠구나 깨닫게 되었다. 실무를 잘 해낼 수 있는 팀원들의 실력이 기반되었을 때, 팀 리더의 작은 의사결정 하나하나가 쌓여 전체 팀의 결과물을 좌우한다.


루틴

가능하다면 극단적으로 큰 1개 강점을 지닌 사람보다는, 단단한 여러 개의 강점을 고르게 가진 사람이 되고 싶다. 늘 균형이 중요하다. 특히나 다양한 루틴이 성공적으로 유지되었을 때 일의 효율도 올라갔다. 루틴이 가장 큰 효과를 발휘할 때는, 주로 마음이나 컨디션이 좋지 않을 때이다. 일상이 비일상적으로 바뀌었을 때 일상으로 복귀하는 가장 방법은 당연히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일상이란 게 무엇일까? 쉽게 정의 내리기 어렵다. 루틴은 이런 일상들을 하루에 1시간씩 운동하기, 점심시간에 산책하기, 아침에 전화 영어 하기등으로 정의 내려 준다.


운동

가장 접근하기 쉬운 루틴은 운동이다. 나이가 30대로 접어들면서 주변 친구들도 운동을 억지로 하는 사람들이 많이 생겼다. 운동의 중요성을 나열하자면 건강, 미용 등 수도 없겠지만, 나는 루틴으로써의 운동 중요성을 말하고 싶다. 주 5회 정도 운동을 해온 것도 2년 반이 됐다. 딱히 바디프로필을 찍는다거나 목표 몸무게등이 있지는 않고 그냥 꾸준히 하고 있다. (그래서 몸이 안 좋은 건가 싶다..) 스포츠 선수들이 경기에 임하기에 앞서 진행하는 루틴처럼 헬스장에 가서 무겁게 밀고 당기다 보면, 몸도 다음 일과를 잘 헤쳐나갈 힘을 얻곤 한다. 최근에는 주로 저녁에 운동을 나가는데, 퇴근하고 소진되었던 힘이 운동을 하다 보면 다시 돌아온다. 신기한 일이다.

목적이 없어서 그런지 무게는 정말 잘 늘지 않는다(..)


산책

올해 3월 애니(반려견)와 함께 산 이후로 폭우가 올 때를 제외하곤 매일같이 산책을 나가고 있다. 다행히도 원래 매일같이 운동을 가서 산책이 크게 귀찮은 일은 아니다. 물론 귀찮을 때가 종종 있긴 하지만, 산책 준비에 방방 뛰는 애니 모습을 보면 도저히 안 나갈 수가 없다. 산책은 강아지의 가장 큰 행복 중 하나인데, 그게 나 때문에 사라질 수는 없으니까. 강형욱 님이 강아지에게 진 산책빚은 평생 못 갚는다고 한다. 물론 빚지는 게 싫어서 안나 가는 건 아니고, 나가면 나름의 활기를 얻는다. 평일엔 주로 점심시간에 간단히 점심을 먹고 애니와 동네를 산책한다. 애니가 자주 갔던 길을 계속 가는 것을 싫어해서 2달 간격으로 새로운 길을 찾는다. 4~5년 정도 지낸 동네인데 구석구석 가다 보면 모르던 길을 찾기도 한다.

장마대비 구매한 강아지 우비


영어

영어는 정말 나의 미친 약점 중 하나였고, 시작점이 낮은 만큼 올해 가장 성장한 것 같다. 나는 특히나 다른 사람들이 모두 하는 수능 공부도 열심히 하지 않은 터라(..) 더 기본기가 없는 상태였고, 영어를 해야 하는 상황이면 도망치기 바빴었다. 영어와는 거리가 먼 생활을 하다가 현회사에 와서는 업무의 많은 부분은 영어로 소화해야 하는 경우가 생겨서, 미루고 미루다 영어공부를 올해 9월 쯔음부터 시작했다. 처음은 주말학원으로 시작했는데, 배우기보다는 조금 더 영어를 자주 사용해야 할 것 같아 전화영어를 시작했다. 주 3회 아침에 20분씩 전화영어를 하는데, 일어나자마자 영어로 대화하는 게 부담스러워서 스크립트도 좀 듣고 복습도 해야 하다 보니 실제로 영어를 하기 전 30분 정도는 더 영어에 시간을 쏟게 된다. 그 외에 수업이 없는 날에도 숙제가 있어서 작문과 듣기를 하다 보면 결국 일주일간 하루를 제외하곤 늘 영어를 조금씩은 하고 있다. 가장 크게 성과로 느꼈던 것은 이번 방콕 여행에서 사람들과 간단한 의사소통하고, 캐주얼톡도 할 수 있었다는 점이었다. 정말 감개무량.

 

사랑

애니

지금도 내 무릎 위에 있는 애니는 정말 올해 나의 MVP다. 2022년 동안 많은 성장과 이벤트가 있었지만 그 모든 것들이 가볍게 느껴질 정도로 애니가 주는 무게감은 현재 나의 삶에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간간히 쓰는 글에도 항상 애니 얘기를 하게 되고, 사진첩이나 인스타 피드만 보더라도 애니의 비중이 적어도 70%는 할애하는 듯하다. 애니와 지내며 가장 크게 얻은 것은 사랑과 상실이다. 이 아이와 함께하면서 누군가를 이렇게 열심히 가까이서 사랑할 수 있구나 느끼면서 행복하다가도, 이 행복이 유한하다는 것을 느끼며 곧 상실을 구체적으로 상상하게 되었다. 강아지의 시간은 참 빨리 간다. 이제 7살이 애니가 조금만 더 어려서 2살이면 얼마나 좋을까? 그럼 더 같이 있을 수 있을 텐 데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 아이와 느끼는 행복이 유한하다는 것을 느끼면서, 내 삶에 대한 행복의 길이도 조금 더 확실히 체감할 수 있게 됐다. 먼 미래를 생각하면 역시 아쉽지만, 하루하루 이 아이가 행복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다. 애니와 함께하면서 새로운 관계에서 생긴 기쁨도 나를 행복하게 만들지만, 새로운 관계로 인해 기존의 관점도 많이 변했다. 정말 고마운 아이다.

춥거나 긴장하면 콧물이 폭포처럼 내린다


가족

애니는 사실 엄마가 키우던 강아지다. 애니가 1살 때 파양당한 것을 엄마가 5년간 키우다가 나에게로 왔다. 애니의 주인은 엄마와 나, 2명인 셈이다. 해서 애니를 돌보게 되면서 엄마와 더 가까운 관계가 되었다. 애니가 처음에 왔을 때는 강아지를 어떻게 보살펴야 하는지 물어봤고, 애니를 돌보는 것이 익숙해지면서 일주일에 몇 번은 애니의 사진을 보내면서 서로의 안부를 묻는다. 애니덕에 가족 관계도 좋아졌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과 떨어져 지내다 보니 가족에 대한 의미가 크지 않았고, 가정에 대한 이미지도 쉽게 그릴 수 없었다. 그러나 집에 돌아왔을 때 늘 나를 반겨주는 애니, 그리고 여자친구와 애니와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가정이라는 형태가 어떤 것인지 조금은 알 것도 같다. 앞으로도 이 관계를 더 구체화하고 단단히 만들어가려 한다. 그리고 나뿐만이 아닌 내 주변의 사람들이 이런 사랑을 느꼈으면 한다. 물론 그 가까이에는 가족이 포함되어 있고, 그 멀리로 친구들과 동료들을 포함한 많은 사람들과의 관계를 더 잘 돌보려 한다.

셋이 찍은 사진은 생각보다 없더라. 2023년에는 더 많이 찍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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