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겹한겹 기록하기
당연히 머리를 기르는 데에 거창한 이유가 있는 것도 아니다. 예능에서 우연히 본 연예인이 장발로 이미지 변신을 했고 그 모습이 꽤 근사했다. 나도 해볼까 해서 3주면 한 번씩 짧게 다듬던 옆머리와 뒷머리를 자르지 않고 버틴 지 벌써 6개월. 슬슬 주변에서 머리가 긴 내 모습을 인지하기 시작했다.
뭘 왜 기르나. 염색은 왜 하고, 파마는 왜 하는 건데. 그냥 장발해보는 거야. 사실 머리 기르면서 가장 귀찮은 건 머리 말리는 것도 아니고, 거지 존을 극복하는 인내의 시간도 아니다. 주변 반응이 참 귀찮다. 원래 잔소리를 정말 극도로 싫어하고, 칭찬도 아니면서 가타부타 어쩌다 뭐라고 하는 말들. 좀 별로다. (평가할 거면 칭찬을 하란 말이야.~) 머리를 길러야겠다고 결심을 한 뒤, 장발이 되기까지는 얼마나 걸리는지 과정이 궁금해서 몇 가지 블로그 글과 유튜브 영상을 찾아봤다. 대부분 콘텐츠가 거지 존을 극복하는 팁뿐만이 아니라 주변 사람들의 반응에 대한 이야기가 꼭 포함되어 있었다. 그렇다. 남자가 머리를 기르는 것은 무언가 눈에 튀는 일이다. 물론 그만큼 강한 개성을 부여하기도 하지만, 글쎄, 그 개성도 개인의 개성이라고 할 만큼 특별한 아이덴티티인지도 잘 모르겠다.
타투도 비슷한 경험이었다. 내 타투를 처음 보는 사람들이면 한두 마디씩 툭툭 던지곤 한다. 이제는 너무 익숙하지만, 이 디자인은 어떤것 같다(보통 별로라는 맥락의), 왜 한 거냐 등등 귀찮은 말들. 아, 정말~.
반대로 처음 타투를 봤을 때(혹은 길어진 머리를 봤을 때) 무던히 넘어가거나, 진심으로 마음에 들어 하는 반응을 들었을 때 왠지 모를 감사함이 느껴진다.
생각해보니 장발은 어쨌든 눈에 띄는 특징이다. 대상을 지칭하기에도 좋고. 하지만 누구나 시간과 인내만 있다면 얻을 수 있는 특징이다 보니 주변에서 장발스타일의 남자를 쉽게 찾을 수 있다. 나도 배우 김지훈님을 보고 장발을 해볼까 처음 생각했던 것 처럼 다른 사람들도 비슷한가 보다. 김지훈 배우님이 머리를 길러왔던 과정을 보여주며 장발 방법을 소개하는 영상도 보이고, 미용실에서 머리를 했을 때도 비슷한 이유로 머리를 기르려 하는 남자 손님이 많아졌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더불어 코로나 때문에 만날 사람이 적어 잔소리를 들을 기회도 줄었다니, 참 마음속 깊이 장발을 꿈꿔온 남자들에게 좋은 핑계가 많이도 생겼다. 결국 나 말고도 많은 사람들이 이미 장발을 했거나 혹은 장발을 할 예정이어서 딱히 튀는 스타일이라는 생각이 들지도 않는다. 하여튼 나도 딱히 큰 이유는 없고 남들이 느끼는 만큼의 매력을 느껴서 머리를 길러보기로 했다. 마음에 안 들면 확 잘라버리면 되고.
머리를 기른지 6개월 차 딱 거지존에 돌입한듯하다. 나도 이 거지존에서 머리를 정리하는 게 힘들 것 같아서 머리를 기를지에 대한 고민을 참 많이 했는데 막상 길러보니 괜찮다. 유튜브에 스타일링 방법도 많고, 외출 준비에 5-10분 정도 더 투자하면 어느 정도 멀쩡한 상태가 된다. 반대로 투자 안 하면 바로 추노다. 생각해보니 아직 상대적으로 머리가 짧을때도 이정도 정성이 들어가는데 머리가 완전한 장발이 된다면 모발 관리라든지, 말리는 시간 등.. 더 수고가 많이 들어갈 듯하다. 때문에 지금 단계에서부터 관리가 힘들다면 더 머리가 길어졌을 때는 당연히 더욱 힘들듯 하다.
열심히 정리하기를 하긴 하지만, 외출시간이 길어지면 머리카락들이 통제를 벗어나기 시작한다. 나의 경우에는 앞머리나 옆머리보다 상대적으로 뒷머리가 더 길어 보인다. 게다가 뒷머리가 양쪽으로 뻗치고 있다. 비가 와서 습한 날이면 영락없이 자갈치다. 앞모습은 멀쩡한데 뒤에 가짜 머리를 붙인 것 같은 요상한 꼴이 된다.
장발도 아니고 뒷머리가 약간 길어 보이는 덥수룩 자갈치머리긴 한데 그래도 5~6년간 유지해온 가르마 스타일을 이제는 확실히 벗어난 것 같아서 뿌듯하기도 하고 나름 리프레쉬가 된다. 역시 사람들이 한두 마디씩 하는 상황은 피곤하긴 하지만 바뀐 스타일에 대해서 긍정적인 반응을 들을 때면 역시 기분이 좋다.
그러니까, 나는 잔소리가 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