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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민 Nov 18. 2024

변해버린 사람

나는 배낭 하나만 해서 계획 없이 혼자 한 곳에 오래 머무르는 여행을 하는 사람이었다. 그런 나의 여행은 2018년이 마지막이었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2018년 마지막 여행도 혼자 간 게 아니니까, 마지막 '나의 여행'은 언제였던지 사실 까마득하다. 결혼, 첫째 임신, 첫째 출산, 첫째 육아, 둘째 임신, 둘째 출산, 둘 육아의 사이클에 편입된 지 꽉 채워 사 년째. 몸도 마음도 너무 힘들었던 나는 지난가을쯤 남편에게 2박 3일 휴가를 요청했다.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지라 그 요청은 지금, 11월, 1박 2일의 일정으로 조정되었다. 출발 전날까지도 어디를 가야 할지 어디서 자야 할지 정하지 못했다. 당일 새벽이 되어서야 부산 가는 기차를 예매하고 숙소를 예약했다. 


2시가 넘어 잠드는 내 마음이 너무 이상했다. 나는 분명 혼자 잘 다녔던 사람인데 이제는 그럴 수 없는 사람이 되어버린 것만 같았다. 혼자 여행이 처음인, 연속극에 나오는 우리 사회가 보통으로 생각하는 그런 엄마가 된 기분이었다. 그래서 내내 뒤척이다 종달새처럼 일찍 일어나는 첫째와 함께 일어나느라 네 시간은 잤으려나. 곧 아이들에게서 잠깐 멀어진다는 생각이 들어서 열심히 놀어주었다. 그러다 어느새 기차시간이 다가왔다. 일하러 다녀오겠다는 나의 말에 첫째는 가지 말라고 눈물을 뚝뚝 흘리기 시작했다. 마음이 더 이상했다. 가면 안 될 곳으로 향하는 기분이었다. 잠깐 아, 내가 뭐 하는 거지. 아니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자고 식구들에게 이런 양해를 구하나, 아이 마음을 아프게 하나 싶었다. 그래도 나왔다. 


기차를 타고 부산역에 내려 낯선 곳을 마음껏 걸었다. 이른 시간, 아직 붐비기 전 도시의 한적함 사이를 걸어본 게 얼마만이지. 읽고 싶었던 책을 한 권 사고 바다로 향했다. 사이사이 빛나는 근데 자꾸 발이 푹푹 빠지는 모래사장을 걸었다. 왜인지 자꾸 지금 내 상황 같았다. 사이사이 빛나는 것, 부서져 닳아서 둥글둥글해진 조개껍데기들을 주웠다. 첫째가 좋아할 것 같았다. 작고 빛나는, 무늬를 가진 것들. 제각각 아름다운 것들, 내 삶에 패턴이 되었으면 하는 것들. 어쩌면 하나였을 것들. 그 기억을 잊은 채 떨어져 있는 것들. 나도 아이들도 먼 세월이 지나 우리의 우주가 끝나면 그렇게 흩어져 떠돌까. 자꾸 생각나는 보고 싶은 존재들이 있다는 건 커지는 기쁨만큼 그림자도 큰 끝을 떠올리게 하는 일이다.



모래사장에 찍힌 갈매기들의 발자국, 잡힐 듯 잡히지 않는 파도를 보고 온 내가 이야기하며 빛나는 조각을 쥔 손을 펴 보이면 아이는 어떤 표정을 지어줄까. 우린 그 조각으로 어떤 무늬를 만들 수 있을까. 이번 내 여행 최고의 기념품일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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