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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양저, 춘추전국 시대 최초의 병법가

사마양저, 춘추전국 시대 최초의 병법가

고대 중국 춘추시대 말기 동쪽의 강국 제나라는

제경공(齊景公)의 치세 때 비록 제환공 때만큼 성대하지는 못하나 동방의 패자를 자처했다.

아무리 뛰어난 신하가 곁에서 보필할지라도 군주 자신이 뛰어나지 못하면 일정한 한계를 드러낼 수밖에 없다.

군주와 신하는 손바닥이 마주쳐 소리가 나는 것처럼 서로 호흡이 맞아떨어져야만 한다.

제나라가 대국이 된 데에는 당대의 명신인 안영(晏嬰)의 보필 못지않게

당대 최고의 병법가인 사마양저의 보필이 큰 기여를 했다.

재상 안영이 경공에게 양저를 추천했다. <<사기>> 〈사마양저열전〉은 안영이 그를 천거하게 된 배경을 이같이 기록해놓았다.

"그는 진씨의 서얼(庶孼)입니다. 그러나 문장에 뛰어나 응대사령에 능하고, 무예 또한 뛰어나 적에게 위엄을 떨치는 데 능합니다. 한번 불러서 시험해보도록 하십시오."

경공이 양저를 불러 군사문제를 나눠 보니 마음에 들어 즉시 장군으로 삼았다.

양저는 하루아침에 장수에 오른 자신의 명을 누구도 듣지 않으리라는 결론을 내리고 경공을 찾아가 건의했다.

“저는 이렇다 할 기반이 없으니 백성의 존경을 받으면서도 경공이 총애하는 분을 감군(監軍) 자리에 내세우면 자신이 곁에서 잘 보필하겠습니다.”

이에 경공은 장가(莊賈)라는 사람을 추천했다.

사마양저가 장군에 임명된 지 얼마 안 되어 연(燕)나라와 진(晉)나라 연합군이 제나라의 북변을 침공했다.

양저는 장가와 다음 날 정오에 군문(軍門)에서 만나기로 약조했다.

이튿날 양저는 군영에 먼저 가 장가를 기다렸다. 그러나 장가는 저녁 때가 돼서야 거들먹거리는 모습으로 나타났다.

양저가 늦은 이유를 추궁하자 장가는 대부들과 송별연 때문에 늦었다고 둘러댔다.

《사기》 <사마양저열전>에 그날의 정황이 전한다.

“장수란 명령을 받은 그날부터 집을 잊고, 군영에 이르러 군령이 확정되면 친척을 잊으며,북을 치며 공격할 때에는 자신을 잊어버려야 합니다. 지금 적들이 쳐들어와 나라가 들끓고 병사들은 국경에서 뜨거운 햇살과 비바람을 맞고 있습니다. 왕께서는 편히 잠자리에 들지 못하고 음식을 드셔도 단맛을 느끼지 못합니다. 백성의 목숨이 모두 당신에게 달려 있거늘 송별회라는 말이 뭡니까.”

그러고는 즉시 군 법무관인 군정(軍正)에게 군법대로 처리하도록 하니 목을 베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제서야 장가는 상황의 심각성을 알고 급히 사람을 시켜 경공에게 사면을 요청했다.

그러나 경공의 사자가 들이닥치기 전에 장가는 처단돼 장가의 목은 군영에 내걸렸다.

얼마 후 경공이 보낸 사자가 장가를 사면하라는 부절을 가지고 말을 달려 군영 안으로 들어왔다.

사면을 청하는 그에게 양저는 “장수가 군영에 있을 때에는 왕의 명령도 받들지 않을 수 있소.”라고 일침을 가하고는

군영 안에서 말을 달린 그에게 군법에 따라 목을 베어야 한다는 군정의 말을 전했다.

이 말을 들은 사자가 몸을 벌벌 떨자 양저는 짐짓 “그는 왕의 사자이니 죽일 수는 없지 않은가”라고 하면서

그의 마부와 수레 왼쪽의 곁나무, 왼쪽 곁말의 목을 베어 본보기로 삼았다.

양저는 사자를 보내 경공에게 전말을 보고하도록 한 뒤 싸움터로 나갔다.

진군 도중 우물가에 영채를 차린 뒤 양저는 냉소적인 병사들을 몸소 보살피며 그들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고

병사의 식사와 막사를 일일이 점검해 질병과 치료 여부 등을 살폈다.

장군용 군량을 풀어 병사를 먹이고, 군량을 병사와 똑같이 나눈 뒤 식사량은 가장 병약한 자의 수준에 맞추었다.

사흘 후 출발하려 하자 병사들이 서로 전쟁터에 나가겠다고 다짐했다.

진나라 군사가 이 소문을 듣고 이내 철수했다. 연나라 군사도 황급히 황하를 건너 철군했다.

양저는 그들을 추격해 예전의 땅을 되찾고 대사마(大司馬)로 승진했으며 백성들의 존경을 받았다.

아무리 뛰어난 신하가 곁에서 보필할지라도 군주 자신이 뛰어나지 못하면 일정한 한계를 드러낼 수밖에 없다.

군주와 신하는 손바닥이 마주쳐 소리가 나는 것처럼 서로 호흡이 맞아떨어져야만 한다.

《안자춘추》에도 사마양저의 뛰어난 면모를 짐작하게 해주는 일화가 실려 있다.

제경공이 궁중에 모든 희첩(姬妾)을 모아놓고 술을 마셨다.

밤이 제법 깊었는데도 흥이 나지 않자 제경공이 문득 좌우에 이같이 명했다.

“술과 음식을 안영의 집으로 옮기도록 하라. 내가 가서 그와 함께 이 밤을 즐길 것이다.”

안영은 제경공이 온다는 소식을 듣고 급히 관복을 입고 대문 밖으로 나갔다.

이미 대문 밖에는 어가(御駕)가가 당도해 있었다. 안영이 황망히 앞으로 나가 영접했다.

“과인이 혼자 좋은 술과 음악을 즐길 수 없어 함께 즐기기 위해 온 것이오.”

안영이 정색했다.

“청컨대 나라에 관한 일과 다른 나라 제후에 관한 일이라면 신과 상의하십시오.

군주의 주변에 좋은 술과 음악을 즐길 수 있는 사람이 많을 터이니 신은 관여하고 싶지 않습니다.”

제경공이 크게 무안해 하며 곧 어가를 돌려 사마양저의 집으로 갔다.

사마양저는 제경공이 온다는 소식을 듣고 곧 갑옷을 입고 대문 밖에 나가 제경공을 영접했다.

“무릇 적군을 막고 역적을 죽이는 일만은 신을 불러 상의하십시오.

좋은 술과 음악을 함께 즐길 수 있는 사람은 군주 주변에도 많습니다. 어찌 갑옷을 입은 신하가 필요하겠습니까?”

제경공이 크게 무안해 하며 어쩔 줄 몰라 하자 좌우에서 물었다.

“이만 궁으로 돌아가시겠습니까?”

“어찌 그냥 돌아갈 수 있겠는가? 대부 양구거의 집으로 가자.”

양구거는 제경공이 온다는 소식을 듣고 대로까지 나가 제경공을 영접했다.

제경공은 양구거의 집으로 들어가 관과 겉옷을 벗고 함께 술과 음악을 즐겼다.

새벽닭이 운 뒤에야 비로소 궁으로 돌아갔다. 이튿날 안영과 사마양저가 함께 궁으로 들어가 말했다.

“앞으로는 밤중에 신들의 집을 찾아와 술을 즐기는 일이 없도록 하십시오.”

제경공이 두 사람을 칭송했다.

“그대 두 사람이 없었다면 과인이 어찌 나라를 다스릴 수 있겠소!

그러나 양구거 같은 사람마저 없다면 과인은 무료해서 어찌하겠소?

과인은 그대들의 직무를 방해하지 않을 터이니 그대들도 과인을 너무 간섭치 마시오.”

안영과 사마양저가 제나라의 두 기둥으로 활약했음을 짐작하게 해주는 일화다.

이 일화는 뛰어난 신하에게 국정을 맡기고 군주가 베개를 높이 베고 자는

이른바 고침이와(高枕而臥)의 전제조건인 명장현상(名將賢相)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주인공은 안영과 사마양저다.

제나라가 제경공 때에 들어와 진나라와 어깨를 나란히 하며 중원의 패권을 다툴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공적인 영역에서 뛰어난 면모를 보여주던 두 사람이 있기에 가능했음을 짐작하게 해준다.

안영과 같은 현상(賢相)이 비록 드물기는 하지만 전혀 없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당시까지만 해도 사마양저와 같은 병법이 뛰어난 명장(名將)은 존재하지 않았다.

최소한 손무가 등장하기 전까지만 해도 병법가로 불릴 만한 사람은 사마양저가 유일했다.

그는 춘추전국시대를 통틀어 가장 먼저 출현했던 병가의 시조에 해당한다.

안영에 사마양저까지 만난 제경공으로서는 커다란 행운을 만났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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