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임인년을 맞이하며
#2022년에 거는 기대
2022년에는 제대로 된 ‘위드 코로나’ 시대를 맞이할 수 있을까? 기대가 크다.
새해에는 부디 누구도 미워하지 않고(이건 내가 쌓은 덕의 내공에 따라 어느 정도 가능할 수도 있다),
누구에게서도 시기와 질투를 받지 않았으면(이건 컨트롤이 절대 불가능하므로 재야에 은둔하지 않는 한 성취가 어렵다) 하는 바람이다. 어제와 오늘의 태양이 다르지 않듯이 바뀌지 않는 게 세상 인심이라고 해도 장삼이사는 할 말이 없다.
소싯적에(지금 생각해보면 세상 물정 모르던 시절이었음) 올곧게 살다보면 누군가의 인생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인내하고 배려하는 삶을 살면 가능할 거라고 생각했다.
시간이 흘러 세상과 사람이 진보하고 진화하더라도 그것이 인간 세상의 발전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세상 일이라는 게 대비해도 언제 무슨 일이 터질지 모른다. 예상하지 못한 돌발 상황만큼 무서운 게 없다. 사람도 마찬가지.
오늘 힘들어도 더 나은 내일로 가기 위해서는 오늘을 보내야 한다.
오늘은 더 나은 내일의 시작이라는 긍정과 희망을 가져야 한다.
환경을 탓하지 마라. 남 탓도 하지마라. 모든 게 내 탓이다.
어릴 적에 해마다 새해 전날 새벽에 어머니는 근처 절에 가서 새벽기도를 하셨다. 고등학교 때도, 대학갔을 때도, 군대에 있을 때도. 아마 결혼을 했을 때도 그 기도는 멈추지 않았을 것이다. 어느덧 나이가 들어 거동이 불편하면서 그 기도를 멈추신 듯 하지만 자식 잘되기를 바라는 기도는 지금도 이어지고 있을 것이다.
코로나가 터지던 해 설날에도 어머니는 내게 부적을 쥐어주시면서 하나는 차에 숨겨두고, 또 하나는 항상 품고 다니라고 하셨다. 남 눈에 띄거나 눈밖에 나지 않도록 자세를 낮추고자 했던 것도 있지만 여태 큰 사고 없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큰 이유는 어머니의 기도와 부적 덕분이 아닐까 싶다.
큰 행복은 없어도 소소하게 베풀며 살아갈 수 있으니 그 또한 행복이 아닐까.
작년 말에 긴 연휴 동안 방청소도 하고 등산이라도 하면서 마음도 비우려고 했으나 실패했다. 팔자에도 없는 감투를 쓴 탓이다. 왕관까지는 아니지만 감투를 쓴 자, 그 무게를 견디라고 했다.
감투를 쓴다는 것은 자신의 의사와 무관하게 살벌한 권력 게임을 감당해야 한다는 것을 알기에 많이 망설였다. 하지만 나를 믿어주는 분들의 응원과 나를 시험해볼 수 있는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라는 생각에 수락했다.
원래 내 것이 아니므로 언제든 내려놓을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다. ‘너보다 잘할 수 있겠다’는 시선을 느끼면 그 순간 넘겨줘야지,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나는 영리하고 날카롭게 잇속을 챙기기보다는 무던하게 삶에 감사하며 좋아하는 사람들과 맛난 음식 먹으며 좋은 얘기하며 사는 것이 행복이라고 생각한다.
살면 얼마나 살 것이며 언제 치고 들어올지 모르는 강호에서 영악한 사람들 사이에서 살다가는 십중팔구 제 명에 못살 것이다. 지금까지 그랬듯 얼마 남지 않은 직장생활은 알아도 모른 척, 있어도 없는 척하며 모자란 듯 덤덤하게 살아가자.
백신이 코로나 바이러스 뿐만 아니라 나태해지고 계산하려는 이기적인 나의 마음도 막아주면 좋겠다. 건강, 사랑, 취업, 결혼...새해에 이런 소망을 빈다던데 나의 소망은 무엇일까 생각해 본다.
2022년의 내 꿈은 소박하지만 나의 조직이 추구하는 거대한 가치가 이루어지고, 나와 함께 하는 사람들의 꿈과 희망이 실현되는 데 기여할 수 있으면 좋겠다.
힘들고 어려울수록 다가올 미래를 긍정하고 현재에 최선을 다하는 긍정적인 사람들이 성공한다고 믿는다.
내가 검은 호랑이해를 기대하는 이유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2022년 1월 5일 이상헌